“죄송합니다, 취재하지 못하고 왔습니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둘러보기 시작한 그곳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이 사건을 추모하러 온 일반 20대들을 현장에서 인터뷰하고 그 발언과 사진들을 모아 리얼타임 페이스북 콘텐츠로?내보낼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총 10번의 취재 요청 중 4번은 말 한 번 제대로 못 전해 보고 거절, 3번은 정중한 거절, 3번의 요청만이 받아들여져서 그나마도 녹취만 간신히 얻고 사진은 단 한 장도 얻지 못했습니다. 녹취 속 답변마저도, 모두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민 인터뷰가 어려운 현장은 처음이었습니다.

5번째인가 6번째 거절을 당하고 나서, 김어진 에디터와 조현익 에디터는?근처 카페로 도망치듯 들어가 앉았습니다. 일단 좀 진정해요. 알았어미안해내가당황하면좀그래. 뭐가 문제일까. 너도 느꼈어? 네. 아 이거 이렇게 다룰 게 아닌 거 같은데. 맞아요. 차라리 이렇게 하시죠. 그래? 나도 그 생각 했어. 다른 대안은 없을까? 거짓말 좀 보태서 30분간 머리를 쥐어짠 다음 편집장과 통화했고, 그 대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제 저녁과 오늘에 걸쳐 여러분께 보내 드립니다.
강남역 10번 출구 취재 후기입니다.

 

다른 사태와 전혀 비슷하지 않았고

실례를 무릅쓰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보통 보이는 풍경이 있습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경찰 병력이 하다못해 1개 분대라도 배치되고, 추모 장소에서 10m 이상 떨어진 곳에서는 항상 이상한 사람과 추모객 사이의 시비가 붙어 소란스럽곤 합니다. 그곳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한시름 덜었다는 듯 대화를 시작하죠. 그런데 이곳은 그런 풍경부터가 다른 사태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일단 경찰이 없었고, 대화도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고성의 삿대질은커녕 함부로 웃는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적막했습니다.?인터뷰이 구해야 한다고 돌아다닐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잠시 멈추어서 가만히 보니,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하더군요. 시설관리공단에서 나오신 담당자 분이 가끔 ‘여기에 붙이시라, 길 터 주시라’ 안내하는 것 말고는 지금까지?‘흔히 있어 왔던 또 하나의 사건’의 현장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잠시 이어폰을 꽂고 소리를 켜서 한번 들어 보세요. 이게 강남사거리가 맞는지 말입니다.

인터뷰를 요청하고 거절받으면서, 이 현장에 있으면서 느꼈던 사람들의 감정은 여러 가지가 섞여 있었습니다. “이거 녹음 파일 어디 올리실 거 아니죠?” 같은 질문에서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고, 평범한 트탐라 명함을 그렇게나 꼼꼼히 살펴보는 모습에서는?칼날 같은 경계심을 보았습니다. 어떤 집회 장소도 이렇게까지 긴장감이 흐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취재하기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 압도적인 고요함과 적막함 속에서, 한 가지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볍게 보아넘긴 사태들과는 다르며, 조금도 웃기지 않고, 재잘재잘 떠들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인터뷰와 사진이겠습니까. 차라리 분노와 곡소리와 한탄이 왁자하게 뒤섞여서 시끄럽기라도 했다면 덜 참담했을 텐데, 그런 생각까지 해 봤더랬습니다.

 

전혀 다른 두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며

길거리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질문 중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여기 와 보니 어떠신가요?’ 조금 뻔한 질문이었는데, 어떤 인터뷰이께서 “아무래도 여성 분들이 더 많이 오신 거 같아요, 이게 확실히 여자들에게 심각한 문제니까”라고 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조현익 에디터도 김어진 에디터도, 고개는 끄덕이고 있었지만 속으론 조금 갸웃했다고 합니다. ‘음, 남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와 있는 거 같은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것은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인터뷰이는 여성이었고, 두 에디터는 남자였거든요. 다시 한 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뭔지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같은 땅에 살긴 하지만, 전혀 겹치지 않는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참극과 쇼크를 빚어낸 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암 촘스키에 따르면,?“모두가 떠드는 지금까지의 명제를 그대로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별나라에서 온 듯한 진실을 말하거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어 장의 A4용지에 메시지를 인쇄해서 붙인 다음, 인터뷰 요청을 즉각적으로 뿌리치는 분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붙인 메시지는 대략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여성혐오가 사람을 죽인 사건이며, 이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진실에 훨씬 가깝고 차분하고 조리 있었지만, 카메라 앞에서 ‘세줄요약’을 해서 쉽게 되풀이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이야기였던 거지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모두가 하던 대로 하고 모두가 말하는 명제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세상이 있었습니다. 뭐가 있었나 보다 하고 재빠르게 지나쳐 카페로 들어가 회의를 하는 사람들,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까 덩달아 줄을 서서 ‘명복을 빕니다’만 적고 지나가는 사람들, “이런 걸로 남성을 일반화하지 마라 메퇘지들아”라는 쪽지까지. (그것은 지금 “댓.글.박.제” 인쇄물 밑에 박제돼 있습니다.) 심지어, 저희가 철수한 뒤여서 저희는 못 보았습니다만, ‘천안함 용사의 명복을 빕니다’ 운운하는 조롱조의 화환도 왔다더군요.

 

아직 한동안은 이 참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잠시 다른 출구로 나가 끼니를 때우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계단 출구를 찾아가고 있는데, 이제 막 계단을 오르려는 한 여성 행인이 핸드백을 치마 뒤로 들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 강남역 10번 출구를 말입니다. 10번 출구로 나오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습니다. 출구 외벽 유리에 붙은 “여자라서 죽었다” 메시지들, 그리고 그 유리 천장 아래 여성화 광고 모델로 등장해 요염하게 웃고 있는 걸그룹 멤버들.

‘그러게 평소에 조심을 좀 하지’, ‘이뻐서 그러는데 사진 좀 찍자’, ‘이것들이 날 무시하네? 본때를 보여주지’ 등등,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향한 혐오스럽고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사고방식들이, 그렇게나 일상적이고 흔한 것이 되어 여기저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오직 그 사고방식 하나 때문에 유명을 달리한 분을 추도하는 구간에서까지 그 폭력의 자취와 흔적들을 발견하고 만 것인데, 생각할수록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잠시 후 7시부터 일부 단체가 출구 근방에서 집회와 자유발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집회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가라앉은 분위기였습니다. 어떤 자유발언자도 운다거나 목청을 높이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어쩌면, 이 자리에 나온 모든 분들이 감정에 북받쳐 나왔다기보다는, 이미 이성적으로 “나도 이제 죽었구나”라는 냉정하고 처참한 판단을 내렸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여전히 그곳은 굳게 다문 입술, 무거운 침묵, 메시지들을 응시하는 눈빛들로만 가득했습니다. 무섭다, 무서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공포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날 이곳에 굉장히 많은 방송국?취재진이 들렀습니다. 저희가 본 것만 해도 jTBC,?연합뉴스, MBN, SBS, YTN, 심지어 KBS 뉴스도 취재차량을 동원해서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들은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 일을 흔한 사건사고 다루듯 하고 있었습니다. 장비를 다루는 스탭 분들은 먼 곳을 바라보며 허무한 미소를 띠고 있을 뿐이었고, 기자들은 카메라맨 옆에서 아주 엷게 웃는 얼굴로 기계처럼 묻고 있었습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래서 ‘취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만 물러가자 싶었을 때,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발견했습니다. 세 번째로 음성인터뷰를 허락해 주신 인터뷰이 분을, 방금 뵈었던 10번 출구 추모 게시판의 언저리에서요. 그러니까 장장 1시간째 같은 장소에 머물러 계셨던 것이죠. 사실, 지금까지의 사진과 영상들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특히 여성들이 묵묵히 서서, 복잡한 심경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추도 메시지 하나하나를 읽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여기 머무르게 하는가요. 왜 그분은 변변한 벤치 하나 없는 강남사거리 한복판을 그렇게 오래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할 말이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왜 그 말은 인터뷰가 아닌, 절절히 써내려간 편지와 인쇄물로밖에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게밖에 나오지 못하는 말이, 이렇게나 단시간에, 이렇게나 참담한 침묵 속에서 쏟아져나오는 것은 왜일까요. 이?메시지들이, 오랫동안 뭔가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고 숨죽여 살던 약한 사람들의 기나긴 진술서처럼 보인 것은 왜일까요.

그래서 차마 그곳을 ‘취재’해 자르고 붙여 쓸 수가 없었습니다. 서서 읽고 보고 듣다가, ‘이제 대체 뭘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에서 멈추어야만 했습니다. 여성에의 혐오, 나아가서 여러 혐오당하고 있는 약자들에 대한 이 넘쳐나는 폭력을, 대체 어떻게 해야 없애나갈 수 있는가? 솔직히 그것은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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