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축제의 이상과 현실

HOW TO PLAY

이상

안녕? 난 이상이라고 해. 혹시 ‘대학 축제가 원래는 이랬지’ 아니면 ‘이래야 대학축제지’ 하는 기분에 잠시나마 젖고 싶니? 그렇다면 ‘이상’의 이야기를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 밝고 유쾌한 대학 축제의 로망을 예쁘게 그려보았으니, 마음껏 즐겨 줘!

현실

안녕? 난 현실(現實)이야. 혹시 ‘결국 대학 축제란 이 모양이지’ 아니면 ‘대학 축제 솔직히 이렇잖아?’ 하는 생각을 바꿀 수가 없니? 자책하지 마. 네 기분 충분히 이해해. 널 위해 ‘현실’의 이야기를 준비했어. 너도 공감해 줬으면 좋겠어.

 

1. 우리 모두의 장터 / 대기업 배불리기

이상

오늘따라 학교가 달라 보였다. 광장이며 건물 사이 곳곳에 작고 아기자기한 부스가 펼쳐져 있었다. 캔들, 꽃다발, 팔찌, 목걸이, 잼, 과일청… 학생들이 직접 만든 갖가지 것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냈다. 깨끗하게 쓴 교재와 문제집, 더 이상 입지 않는 옷과 신발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다.

파는 사람은 재능을 뽐내면서 용돈을 벌고, 사는 사람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물품들을 가질 수 있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너도나도 좋은 화기애애한 장터였다. 이상은 미술 동아리 부스를 찾아가 작은 헤나를 받았다. 손목에 새긴 별의 값은 젊은 예술가들의 전시회 개최를 위해 쓰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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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트럭과 그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현실은 의아했다. 대체 뭔가 싶어 가까이 가 보니 한 화장품 업체에서 “돌려돌려 돌림판” 어쩌구를 하고 있다. 샘플을 증정한다기에 냉큼 줄을 섰는데 업체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고 직원에게 확인을 받아야 했다. 새로 나온 화장품이 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학교 밖을 나가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학생을 위한 공간을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씁쓸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협찬이 없으면 축제 자금 마련이 어렵다는 이야기에 군말 않았다. 연예인을 부르려면 거금이 필요하니까.

 

2. 먹방 대잔치 / 호구: 뜻밖의 연금술

이상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듣고 나왔더니?깜짝 놀랐다. 건물 밖을 나서니 심심했던 캠퍼스는 복작거렸고 여기저기서 맛있는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시원한 칵테일, 아이스크림 와플 등을 손에 든 채 즐겁게 웃고 있었다.

밖에서 사 먹자면 밥 한 끼 값이 드는 것들인데 학교 안에서 싸고 가볍게 먹을 수 있다니 놀라웠다. 축제는 먹거리 축제인 모양이었다. 이상은 친구들과 함께 이것저것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축제 기분을 만끽했다.


현실

3시간짜리 전공과목 2개를 연달아 듣는 바람에 끼니를 챙겨 먹지 못했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9시간을 버틴 끝에야 강의실을 뛰쳐나올 수 있었다.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한 캠퍼스는 곳곳에 주점이 펼쳐져 마치 야시장 같았다. 현실은 배도 채우고 술도 마실 겸 친구들과 함께 학과 주점을 찾았다. 후배가 계란말이를 태워서 신나게 말아먹는 광경을 목격했지만 일단 기다려봤다.

잠시 후 나온 음식은 거의 연금술에 실패한 뒤 남겨진 부산물처럼 보였다. 겉보기에만 그럴까 싶어 입에 넣어보았지만 맛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6,000원짜리 계란말이에선 달걀 껍데기가 씹혔고 8,000원짜리 골뱅이 무침에서 골뱅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럴 바엔 집에서 치킨이나 시켜먹을 걸 그랬다. 눈치 없는 과대는 선배 핑계를 대며 술 한 병 더 팔아달란다.

 

3. 남녀노소 하하 호호 / 축제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이상

캠퍼스엔 학생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상이 자주 가던 식당의 주인 부부, 옆집 할아버지, 학교 끝나고 놀러 온 초등학생 등 남녀노소가 모여들었다. 자취방이 빽빽하게 들어선 학교 주변은 사실상 편의시설이나 문화시설이 열악했다. 하지만 축제 기간만큼은 대학생과 상관없이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 모두가 즐길 거리를 누릴 수 있었다. 우리끼리도 좋지만 지역주민과 어우러져 함께 하니 기쁨과 보람은 두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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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배가 차지 않아 고민하다가 결국 학교 앞 닭갈비집으로 갔다. 정성스럽게 닭갈비를 볶아주시던 아주머니가 고마워 괜히 축제 기간이니 시간이 나시면 학교에 놀러 오시라고 말을 붙였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축제라는 단어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젊은이들끼리 즐겁게 노는 데 나이 든 사람이 끼기엔 눈치 보일 뿐더러 딱히 즐길 만한 것도 없다고.

게다가 밤에는 커다란 폭죽 소리와 화려한 조명, 취객들의 고성방가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현실 또한 공모전 준비를 위해 일찍 귀가했을 때 소음 때문에 서러웠던 기억이 있었다. 축제라고 모두가 즐거운 건 아니었다.

 

4. 진정 즐길 줄 아는 챔피언 / 속 터지고 돈 터지고

이상

이상은 지금이 꿈이 아닐까 싶었다. 평소 좋아하던 가수가 그의 눈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뛰어난 성량과 매력적인 음색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빵빵하게 울리는 음향에 가슴이 덩달아 쿵쾅거렸다. 눈부신 조명과 관객의 함성 덕에 흥분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가수는 적극적인 호응에 기분이 좋았던지 앙코르를 세 곡이나 열창했다. 거의 미니콘서트 수준이었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정신없이 몸을 흔들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괜히 사람들이 콘서트에 놀러 가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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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싶었다. 연예인이 왔다기에 얼굴이나 볼까 해서 근처를 어슬렁거렸더니 이미 군중 한복판에 껴있었다. 누군가 현실의 발을 밟았고 뒤에서는 그를 계속 앞으로 밀어냈다. 저 멀리 작게 어떤 사람의 형상이 보이긴 했지만 커다란 스피커에서 웅웅 울리는 소리로는 대체 누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뻥 소리가 나더니 폭죽이 터졌다. 현실이 모르는 사이 공연은 절정에 이른 모양이었다. 그의 머릿속엔 “여러분의 등록금이 터지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스쳐 갔다.

 

5. 설레는 만남 / 동물의 왕국

이상

이상은 목을 축이기 위해 주점으로 향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즐기는 안주는 꿀맛이었다. 공연의 열기가 식지 않은 터라 모두가 조금씩 상기돼 있었다. 이상은 친구와 함께 가수의 무대가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를 떠들어댔다. 그때 옆 테이블에 앉은 여성이 합석을 제안했다.

그녀 역시 그 가수를 좋아한다고 했었고, 오늘 공연에 대해 공감한다고 했다. 옆에는 다른 여성이 수줍게 웃고 있었다. 한 테이블에 앉게 된 네 사람은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처음 만났음에도 어색하지 않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종종 함께 이야기하자 약속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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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하루를 보냈더니 술이 고팠다. 그는 아까 맛없는 음식을 던져줬던 학과 주점 대신 다른 곳을 찾았다. 신입생처럼 보이는 어린 여학생들이 독특한 의상을 입고 술을 나르고 있었다. 치파오, 버니걸, 간호사복 등 핼러윈 파티를 방불케 했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 움직였다. 여러 개의 눈은 일제히 특정 신체 부위로 향했다.

현실은 자신의 여동생이 저런 시선을 받는다면 화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옆에서 작게 휘파람 부는 친구와 불편해지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친구는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의 치마가 얼마나 짧은지를 이야기하며 함께 술을 마시자고 보챘다. 현실은 내키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깨기 싫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서빙 중인 학생에게 옆 테이블을 가리키며 넌지시 귓속말을 건넸다.

 

6. 지식의 상아탑 / 쓰레기 하치장

이상

축제는 끝났고 학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신나게 놀고 취했던 어제는 없었던 일 인양 깨끗하고 조용했다. 이상은 수업을 들은 뒤 팀원들과 함께 발표 준비에 열을 올렸다. 곧 제출해야 하는 소논문을 위해 도서관에 갔더니 햇볕이 잘 드는 좋은 자리엔 이미 다른 학생이 공부 중이었다.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는 새 나라의 대학생들이란 이런 모습인가 싶었다. 이상은 수업시간에 잠깐 졸았던 것을 반성하며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현실

현실은 어제의 여파로 거의 폐인이 돼 있었다. 정신없이 섞어 마셨던 소주, 맥주, 막걸리는 숙취로 돌아와 현실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눈을 감았다 뜨니 수업은 끝나 있었다. 주점이 열렸던 자리엔 각종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고 잔디밭엔 지난밤 취객들의 토사물이 부침개처럼 널려있었다. 그걸 정신없이 쪼아 먹는 비둘기들을 보며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만 정신을 놓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친구들 모두 고개를 흔들며 숙취해소 음료를 들이켰다. 축제가 끝난 뒤의 현실은 시궁창에 가까웠다.

 

결론

꿈도 희망도 없으니 다 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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