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활에 대해 한 말씀] ② ‘농알못’이 묻고 ‘농잘알’이 답하다
안 가봐서 그러는데 그거 진짜로 그래요?
사실 나는 ‘농알못’이다.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농활에 참여해본 적도,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여름을 매순간 증오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들은 농활을 하기 위해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씩이나 농촌으로 떠나 이런저런 활동을 하려 하는 걸까? 쾌적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갖다놓고 몇 시간씩 버티고 있어도 이렇게나 더운데.
대체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또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걸까? 그런 궁금증, 그리고 주변에서 주워 들은 농활에 대한 각종 소문들. 이번 기회에 알아보고 싶었다. “농민학생연대활동”을 둘러싼 소문들이 실제 농활과는 얼마나 비슷한지, 아니면 그게 논밭을 굴러본 적도 없는 도시 사람의 재수 없는 망상과 오해 덩어리인지를.
그래서, 올해로 어느새 농활 4년 차가 된 ‘농잘알’ 에디터에게 물었다. 농활을 둘러싼 진실 혹은 거짓.
대담자 소개
▲ 김정원. 질문하는 쪽. 농활을 글로만 배움.
▲ 황유라. 답변하는 쪽. 농활을 몸으로만 배움.
Q1. 농활은 인사이더들만의 또 하나의 잔치일 뿐이다?
지금은 친교의 목적으로 농활을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평소에 많이 참여했던 사람들 혹은 집행부 위주로 많이 가게 되고, 그들도 본의 아니게 자기들끼리 가는 여행 혹은 봉사처럼 여기게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1학년 때, 아싸임에도 불구하고 학과 농활을 가 보고 싶어서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들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하는 게 좀 힘들었다. 이후에 그 농활은 안 가게 됐다.
Q2. 농활에서는 조금도 쉴 수 없다?
그렇게 힘들고 바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몸 대신 머리에게 여유를 준다고 해야 할까. 하염없이 풀을 베다가 탁 트인 산과 하늘을 바라보면 정신이 맑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매일 MSG가 들어간 자극적인 음식만 먹다가 자연의 풍미가 가득한 음식을 한 입 먹는 순간 ‘이거지!’를 외치게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물론 이런 마음을 못 느끼고 친구들이 재밌대서 쭐레쭐레 따라왔다가 그저 억울해하는 ‘애들’도 있다. 그건 그냥 농활이 그 친구들에게 안 맞는 거다.
Q3. 농사일 중 휴대폰 사용 문제가 심각하다?
사실 일하는 시간보다는 쉬는 시간이 더 문제다. 3년 전만 해도 내가 가던 마을의 회관에 와이파이가 없었는데, 작년에 생기고 나서부터는 편하면서도 확실히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점심 먹고 3시까지는 너무 뜨거워서 쉬는데, 예전에는 그때 다같이 이야기를 하거나 근처 냇가에 갈 때가 많았던 것이 지금은 다들 누워 자기 폰만 보고 있기 바쁘다. 주민 분이 함께 술 마시자고 놀러 오셨는데도 다들 그러고 있던 적도 있다. 쉬는 시간 중에까지 잔소리하는 선배는 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뒀지만, 되게 당황스러웠다.
Q4. 총화는 일과를 마친 후 벌어지는 전쟁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온종일 함께 일하고, 먹고 자다 보면 싸우거나 속상해질 때도 많다. 특히 농활을 이끌고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걸 많이 봤는데, 이때 틀어진 사이는 졸업까지도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몸이 힘든 상황에서 우리끼리만 있으니 더 예민해지는 거다. 진행될수록 자기만 생각하게 되는 상황이 올 때가 많은데 단체 생활이라는 걸 잊지 말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Q5. ‘삼시세끼’ 속 요리의 재미를 실제로 느낄 수 있다?
잘 나가는 메뉴를 꼽아보자면, 밤에 술을 자주 마신다면 김치찌개나 계란국 같은 국 종류가 아침에 필수다. 재료는 많이 들지 않으면서도 속이 풀리니까. 아침은 새참으로 먹고 올 때가 많기 때문에, 점심은 시원한 국수나 간단한 메뉴가 좋다. 저녁엔 다들 배가 고프기 때문에 제육볶음이나 찜닭 같은 고기 요리를 많이 한다. 주민 분들을 초대하는 마을 잔치 메뉴로는 파전이나 김치전을 많이 굽는데, 나눠 먹자며 이런저런 음식을 들고 오실 때에는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주민 분들이 진짜 많이 챙겨주시는 건 새참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Q6. 와서까지도 그곳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다?
한 농민 분은 나에게 어떤 농활에서 자신들을 다치지 않는 작업장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한 학생들이 있었다며 기분 나쁨을 내비치신 적도 있다. 자기들이 오겠다고 해놓고, 우리가 와달라고 사정한 사람들처럼 굴 때는 농활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신다고 했다. 내 삶의 공간에 이방인을 초대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데,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로 접근하고 있는지 신중히 고민하고 농활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7. 농활 한 번이면 누군가와는 말도 안 되게 친해질 수 있다던데?
나도 1학년 때 동아리에 정을 붙인 결정적 시기가 농활이었다. 고학년이 돼서 바쁜 지금도 평소에는 동아리에 신경을 못 쓰지만, 마음 먹고 농활에 참여하면 1학년 후배들과도 확 친해지는 계기가 돼서 좋다. 학교생활로 돌아와 그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지는 이후의 노력에 어느 정도 달려 있겠지만, 농활이 좋은 관계의 초석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예전만 같지 못하다고 해도, 농활은 지금도 여전히 제도권 내의 대학이 여름마다 가지는 가장 큰 연례행사다. “요즘이야 의미가 다 퇴색돼 버렸지”, “농활은 운동권이나 가는 거 아니냐”?같은 ‘뒷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20대가 학교 농활이나 연합 농활, 대안 농활 등에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일문일답을 진행하며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혹시 당신이 농활을 망설이는 사람이었는데 이걸 다 읽은 지금 농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더 생긴다면, 지금이라도 농활을 신청하거나 다음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준비해 두길 바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으니, 당신이야말로 일생에 한 번은 농활을 경험해 보아야 할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도 살짝 흥미가 생기기는 했지만, 이젠 그러고 싶어도 다음 농활 선발대 출발 날짜보다 졸업식이 더 가까운 학번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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