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중계로 듣지 못한 리우 이야기
올림픽 성화가 리우의 밤을 밝히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개막 전부터 '최악의 올림픽'이 될거란 우려를 받았던 이번 올림픽. 치안 불안 및 주정부의 재정 파탄까지 온갖 악재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큰 사고 없이 종료되었다.
세계인의 축제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현지 사람들이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올림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안 되는 영어로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포착한 '리우올림픽'을 향한 현지의 시선들을 지금부터 전하고자 한다.
리우와의 첫 만남
리우에 도착한 뒤, 현지를 그저 둘러보려 할 때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워낙 치안이 불안하다는 말이 많았으니까. 다행히 믿을 만한 지인에게 안전한 가이드를 소개 받아 시내를 돌아볼 수 있었다. 필자의 숙소는 리우 올림픽을 위해 새롭게 조성된 '바하 올림픽 파크' 인근이다. 대부분 경기가 이곳 바하 지역에서 열린다. 바하 지역은 신도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깨끗하고 잘 정돈된 동네다.
그러나 유명한 관광지가 모여 있는 코파카바나 해변과 구시가지와는 30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90년대 일산과 분당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경기장과 선수들, 취재진이 모여 있는만큼 이곳에서 '치안 불안'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거리마다 군인과 경찰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배치되어 있었으니까.
가이드와 함께 시내를 둘러보러 자동차를 타고 구시가지 부근으로 이동했다. 10여 분을 달릴 때까지는 어디서든 올림픽 현수막이 보였고, 옷차림도 올림픽에 맞춘 사람들도 눈에 자주 띄었다. 그렇게 10분을 달려 바하 지역을 벗어나자, 조금씩 '다른 풍경'이 눈에 담기기 시작했다.
우선 해변. 리우 시 중심에 우뚝 선 거대한 바위산 아래로 긴 터널을 통과하니, 푸른 빛의 해변이 눈부시게 펼쳐졌다. 웃통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성들, 수영복 차림의 여성들. 바하 지역보다는 확실히 자유롭고 들썩이는 분위기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막연히 떠올린 '정열의 브라질' 모습과 가장 비슷한 풍경이었다.
거기서 20여 분을 또 달렸을까. 심각한 교통체증으로 아직 목적지인 구시가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가이드는 "올림픽 기간 동안 1차선을 올림픽 차량을 위한 전용차로로 만든 도로가 많아져서, 안 그래도 심했던 교통 체증이 최악의 상황이 됐다"고 불평했다.
그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이, 눈 앞에는 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파벨라. 언론에서 '위험의 상징'으로 귀가 아프도록 말하던 달동네 빈민촌이었다. 리우에만 수천 곳이 있다는 파벨라를 멀리서 바라본 풍경은 역설적으로 아름다웠다. 물론 그 안에서는 가난과 질병과 무법으로 치열한 삶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겠지만.
단 몇 시간 자동차로 둘러봤을 뿐인데, 이 도시의 색깔은 이 정도로 천차만별이었다.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섞여 사는 도시. 이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올림픽'과 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하게 듣고 싶었다. 가이드를 통해 어렵게 올림픽 위원회 직원 한 명을 소개받았다.
지난 1년간 최전선에서 올림픽을 준비한, 리우 올림픽 식품 운용팀에서 일하는 리안드로(Leandro, 33) 씨의 이야기를 먼저 전한다.
열심히 준비했으나 어쩔 수 없는?'근본적' 한계
리안드로를 만나자마자 먼저 농담반 진담반으로 물어봤다. "식품 담당이랬는데, 한국 취재진들에게 전해들은 얘기로(필자는 공식 취재증이 없어 리안드로가 공급하는 식품을 맛볼 기회가 없다) 음식이 너무 맛없다고 한다. 어찌된 건가?"
한없이 사람 좋은 웃음을 하던 첫인상의 리안드로는,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재정 때문이다. 얼음도, 음식도 부족하다. 예산이 적으니 좋은 음식을 공급할 수가 없다. 어제는 올림픽 파크 내 식당의 기계 한 대가 작동을 멈췄다. 개막식 전부터 음식 물량 예상을 잘못한 것도 문제고, 총체적으로 문제가 많다."
그는 각종 문제 해결을 위해 출근 시간도 두 시간이나 앞당겨졌다고 했다. 그가 담당하는 음식 부분 외에, 전반적인 올림픽에 대한 평가도 부탁했다. 그는 "리우 시가 원래부터 안고 있던 문제들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더 훤히 드러났다"고 대답했다.
"이곳 바하 지역에 올림픽 파크를 만들어놓고, 개막식은 30km 떨어진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다. 말이 안 된다. 개막식이 다른 곳에서 열리는 이유는 교통문제가 가장 크다. 한꺼번에 몰리는 차량을 바하 올림픽 파크가 수용하기 힘들다는 거다. 리우 시가 안고 있는 교통문제가 개막식 장소 선정 때부터 드러난 거다. 또 경기가 너무 다양한 지역에서 열리는 것도 문제다. 리우 시는 워낙 넓은데다 교통체증이 심각해서 이렇게 경기장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다양한 경기를 구경하기 힘들다."
그의 대답에는 대부분 "교통문제"가 공통분모처럼 끼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리우 시민이 느끼는 불편의 최전선이 뭔지 얼핏 알 수 있었다. 리안드로에게 좋았던 점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문제는 많지만, 난 여전히 이 올림픽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하나만 말하라면 개막식을 들겠다. 장소는 비록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멋진 개막식을 치렀다. 브라질의 다양성을 잘 보여줬다. 파벨라(빈민촌) 등 어쩌면 부끄럽게 보일 수 있는 부분도 우리는 솔직하게 내세웠다. 개막식을 보며 브라질 사람으로서 뿌듯했다."
올림픽 탓에 더?불안해진 치안
두 번째 이야기는 우연하게 시작됐다. 리안드로에게 또 다른 브라질 사람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자, 며칠 뒤 그의 집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했다. 리안드로의 집은 ?리우 외곽에 있는 동네였는데, 마치 TV에서 봤던 우리나라 80년대 풍경을 연상하게 했다. 앞마당에서 간단한 음식도 먹으며 홈 파티를 즐기듯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리안드로 말로는 "브라질 사람들은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는 걸 즐긴다"고 한다.
어쨌든 그곳에서 만난 리안드로의 친구, 웰링턴(Wellington)의 얘기를 다음으로 전한다.
그는 연극배우였고, 리우 올림픽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선을 보여줬다.
"리우 시민들은 대부분 올림픽을 반기지 않는다. 올림픽 때문에 생활이 더 나빠졌다. 예컨대 이 동네는 최근 들어 급격히 치안이 나빠졌다. 리우 시장이 올림픽을 대비해 주요 관광지인 코파카바나 해변과 이파네마 해변 등 지역의 치안을 강화했다. 그렇다면 강도와 소매치기가 없어졌을까? 아니다. 그들이 우리 동네처럼 치안이 주목받지 못하는 곳으로 왔다. 우리 동네는 올림픽 기간에도 관광객이 오지 않는다. 대신 불청객만 늘어났다."
'치안의 풍선효과'라고 해야 할까. 근본적인 치안 대책이 아닌 올림픽을 위한 보여주기식 치안 대책이 멀쩡하게 다른 곳에 잘 살던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한 셈이다. 그는 말을 더 이어갔다.
"올림픽이 끝나면 군인들이 철수할 것이고, 치안 불안은 더 커질 것이다. 그뿐 아니다. 리우에는 큰 병원도, 경찰서도, 학교도 부족하다. 그런데 올림픽을 위해, 긴급 재정이 올림픽 관련 건물을 짓고 인력을 늘리는 쪽으로 투입됐다. 물가까지 올랐다. 올림픽은 곧 끝난다. 그 후 우리 삶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브라질이 해냈다는 자부심
웰링턴의 열변에 주변 친구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싶었다. 올림픽 파크 메인 광장을 찾았다. 올림픽을 보기 위해 온 리우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몇몇 사람과 얘기를 나눴는데, 그 중 영어 인터뷰가 가능했던 28살 타시스(Thasis)의 말을 전한다. 그녀는 많은 우려 속에도 "올림픽을 치르는 게 옳았다"고 말했다.
"내가 사는 곳은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멀지 않은 동네다. 평소 바하 지역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오려면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런데 올림픽을 맞아 새로운 도시 고속버스 시스템인 BRT(전용도로로 달리는 시내버스)가 개통됐다. 덕분에 이곳까지 오는 시간이 절반 이상 단축됐다. 올림픽이 열리지 않았으면 이런 게 만들어졌을까? 올림픽이 열려서 리우 시민이 얻은 혜택도 분명히 많다."
그녀에게 전 세계의 부정적인 시선과 우려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멋진 개막식을 치렀다. 큰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세계는 우리를 향해 나쁜 시선을 보냈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고 대답했다. 그녀의 표정에 자긍심이 묻어났다.
올림픽 이후에도, 리우에서의 삶은 계속된다
17일 간의 축제는 어느새 끝이 났다. 이 '광란의 열일곱 밤'으로 리우 시의 모든 문제가 긍정적으로 해결될 리는 없다. 인터뷰에 응해준 시민들의 우려처럼 올림픽 후유증이 미래의 리우를 지독하게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 우려 속에도 올림픽 성화는 리우의 밤을 밝히고 있다. 그것만큼은 되돌릴 수도, 변하지도 않는 사실이다.
리우 시민과 위정자들은 이제 이 올림픽의 유산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하고, 그들의 자긍심은 오래도록 유지하는 일이, 아름다움과 위험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이 '미친 매력'의 도시에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현지 시민들 인터뷰를 매듭지으며, 문득 10년 후의 이 도시의 모습이 몹시 궁금해졌다.
이번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에게 그 때 찾아가 다시 묻고 싶다. 2026년의?리우는, 어떠하냐고.
국가대표에도 '마이너리티'가 있습니다.
비인기종목 선수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
리우행 비행기에 몸을 싣지조차 못한 선수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려 합니다.
그들의 땀을 고스란히 담겠습니다.
강연주 에디터의 스토리 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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