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몸이 좋지 않아서 약국에 갔죠
사실 나는 무섭도록 끈질긴 병을 앓고 있다
그 병은… 의미 있게 바쁘지 않으면 못 버티는 병이다. 유난스러워 보이지만 제법 심각하다. 이 병의 시작이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으나, 적어도 3년 이상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심지어 실제로 증상도 있다.
1-1.? 어찌 되었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2.? 만약 뭐든 안 한다면 처음엔 머리가, 나중엔 몸이 아프게 된다.
2-1.? 시간이 조금이라도 뜨면 뭐라도 해야만 한다.
2-2.? 만약 짧은 시간이라도 가만히 있으면 괜히 온 몸이 간지럽다
3-1.? 집에서 뒹굴거리면 안 된다.
3-2.? 만약 집에만 있을 시에는 답답해서 숨을 못 쉰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 것도 안 하면 누가 혼이라도 내냐고. 요 3년간 바쁘게 시간을 보냈으니, 하루쯤이야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겠냐고. 나도 마음만 같아서는 그냥 가만히 침대에 누운 채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옆에는 먹을 것들을 잔뜩 쌓아놓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버리고 싶다.
소위 ‘집순이’라 불리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하루종일 누워서 TV를 보기도 하고,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고픈 배를 채우기도 하며, 심지어 며칠 동안이나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도 하던데 말이다.?하지만 그게 안 되는 거다. 이러다가는 정말 큰일날 것 같았다.
곱씹어보자,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건 아니다. 하루 종일 딩가딩가 피아노를 치기도 했고, 좋아하는 과일을 실컷 먹으며 뒹굴뒹굴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숙제야 내일 하는 거지 뭐. 어린 나에겐 그냥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게 더 중요 했으니까.
하지만 생일 케이크의 촛불이 늘어갈수록, 학교와 학원에 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하루쯤 아무 것도 안하고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내신 성적과 선행학습이라는 괴물들은 잠시나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스무살이 됐다. 고등학교 시절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우리를 사정없이 잡아끌던 지독한 관성은 여전했다. 이대로 있으면 도태되는 ?기분이야. 친구들은 그런 말을 했다. ?A는 유럽 여행을 갔고, B는 인강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몇 년에 걸친 습관이 어디 쉽게 가겠는가. 남들과 다를 것 없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도서관에 자격증 관련 책을 펴고 앉아 있았다. 놀랍게도 도서관에 앉아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으니 뒤쳐지진 않겠구나, 도태되지는 않겠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혹사시켜 가며 첫 여름방학을 보냈다.
그 이후로는 더했다. 잠시도 쉬지 않았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착취해가며 부지런히 할 일들을 찾아다녔다. 매일매일 학교에 가기 위해 일부러 공강을 만들지 않았고, 혹여 쉬는 날에도 의무적으로 취미를 즐겼다. 하루쯤은 집에 가만히 붙어있어 보고도 싶었지만, 그럴 시간에 밖으로 나가 더 많은 경험을 만들어내고, 더 풍부한 지식을 향유해야 할 것만 같았다.
다시 돌아온 방학은 두 배로 힘들었다. 일부러 타지 생활을 몇 달 간 하고, 남들 다 가는 해외 봉사도 다녀왔다. 몇 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하루 만에 왕복하며 쌓이는 여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았으니까. 도리어 지금 내가 하는 것이 혹시 부족하지는 않을까, 라는 공포가 더 컸다.
초조함은 우울함으로 이름을 바꿨다. 혹시라도 몸이 좋지 않아 조금 늦게 하루를 시작하게 되면 마치 세상이 망하는 기분이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창문을 향한 채로 우울의 끝에 치달아 가만히 누워 있다가, 목 끝 까지 밀려오는 울음을 꾸역꾸역 삼키면서 참았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한 내가 한심하고, 바보 같고, 모든 것이 허무했다.
선생님 그래서 어쩌면 좋을까요
어느 날 문득,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내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를 갉아먹다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싶은 마음을 꾸역꾸역 눌러가며, 이 악물고 버텨가며, 다만 ‘무언가를 했다’는 안식과 위안을 받으려 굳이 의미 없는 것들을 하는 스스로를 참기 힘들었다.
그러다 결심했다. 다른 노력을 조금씩 하기로.
1. 빡빡하게 채워둬야 직성이 풀리던 스케줄러를 멀리했다.
정말 기억해야 하는 일정들을 제외하고, 절대로 미리 채워두지 않았다.
다만 느지막이 일어나 졸린 눈을 비벼가며 ‘오늘 할 것’들을
메모지에 간단히 적는 것으로 계획을 대신했다.
결과 : 하루는 조금 느려 졌지만, 진지하게 딴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2. 당장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했다.
마감해야 하는 글을 쓰다 가도, 영화가 보고 싶으면 영화관을 갔다.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면 색색의 펜을 들고 좋아하는 것들을 그렸다
피아노가 치고 싶으면 바로 등을 돌려 피아노 앞에 앉았다.
결과 :?조금 쫓겨가며 해야할 일을 마무리 하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3. 심심함을 만끽하기로 했다.
전에는 잠깐 짬이 나는 30분이 아까워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바쁜 일정 중에 찾아오는 순간의 심심함을 그대로 즐기기로 했다.
몇 번이고 돌려본 영화의 대사를 읊어가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식으로.
‘뭘 할까’ 하며 드는 생각도 조금 더 기쁜 마음으로 고민 했더니 한결 술술 풀리는 것 같았다.
결과 : 심심함은 여유였다. 좀 더 차분하게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도태를 의미하겠지. 숨을 쉬는 만큼의 결과물을 보여야 하고, 매일매일 뭔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무능하게 취급되는 사회 분위기를 이해한다. 다만, 궁금하다. 그런 분위기에 떠밀려 우리는 의미 없는 성과만을 내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닐까?
놀랍게도, 마음을 고쳐 먹은 뒤에도 나는 그렇게 뒤처지지 않았다.
대신 좀 더 신중하게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이점을 발견했을 뿐.
혹시 나와 같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다.?하루의 10을 온전히 채우려 노력했다면, 우선은 6 - 7 정도만 채워보자. 나머지 시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다. 뜨거운 여름 태양보다 더 뜨거운 일상을 식히며, 하루쯤은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는 느긋함을 공부하자. 그렇게 내 목을 조르던 관성에 이별을 고하는 법을 연습하자.
거친 노동을 좋아하고 빠른 자, 새로운 자, 낯선 자에게 마음이 가는 모든 이들아, 너희는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너희의 부지런함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려는 의지이며 도피다. 너희가 삶을 더 믿는다면 순간에 몸을 던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내실이 부족해서 기다리지도 못한다. 심지어 게으름을 부리지도 못하는구나!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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