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마저 기어이 ‘카지노’가 들어설 것인가
로망이었던 홍대앞, 점점 싫어진 홍대앞
서울에 처음 발 딛은 2월, 입학도 하기 전에 기숙사에 짐부터 풀고 홍대에 갔다. 아직도 그때 난생 처음 보았던 버스킹을 기억한다. 홍대 놀이터에서, 긴 노란색 치마를 입고 숏컷트를 한 언니가 홀로 서서 통기타를 치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했고 그걸 홀린 듯 보았던 기억. 지방에 살던 내게 ‘홍대앞’은 그 자체로 ‘예술’이고 ‘아름다운 음악’이었으며 ‘신기한 카페’였다.
하지만 2013년 그 즈음의 홍대는 이미 내 마음 속의 공간이 아니었다. 거리는 방문객과 너저분한 전단지들로 넘쳤다. 큰 캐리어를 끄는 관광객들이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구석에 숨어 있는 카페들은 애써 찾아 들어가야 했고 당장 눈에 보이는 건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 음식점, 의류 매장들 뿐이었다. 나는 빠르게 홍대앞에 질려갔다. 가끔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보러 클럽 빵이나 언플러그드, 제비다방, 벨로주에 드나들기도 했지만 화려하고 시끄러운 홍대보다는 조금 떨어진 합정이나 망원이 더 좋아졌다.
그 무렵 다큐멘터리 <파티51>을 봤다. ‘두리반’이라는 홍대의 음식점이자 문화 공간이 임대료 인상을 견디지 못해 쫓게나게 되자, 51팀의 홍대 인디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며 그곳을 지켜낸 과정이 담겼다. 두리반처럼 홍대 인근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공간을 가꾸어 놓으면 점차 사람들이 몰렸고, 유명해져서 ‘장사’가 되면 건물주들은 당연하다는 듯 임대료를 올렸다. 저항할 법률은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두리반”들이 그동안 수없이 내쫓겼다.?지금은 두리반 사태로부터 5년이 지났고, 참 걱정스러운 추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젠 심지어 카지노와 호텔을?
그런데 올해에는 젠트리피케이션 정도가 아니라, 무려 홍대앞에 카지노가 생기는 일이 결정될 뻔했다고 한다. 마포구에서 계획 중인 “마포 홍대 관광특구” 가안이 서울시의 승인을 받느니 마느니 하다가, 지난 11월 24일부로 ‘올해는 추진 중지’ 결정이 났던 것이다. 여기서 마포 홍대 관광특구란, 이름 그대로 동교동, 상수동, 합정동 일부를 포함하는 ‘홍대앞’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지역을 명동이나 이태원처럼 관광에 특화된 특구 지역으로 지정해서, 관광객을 더 유치하고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마포구의 계산은 이렇다. 홍대 지역을 거점으로 지정해서 집중 육성하면 관광객이 많이 올 것이고, 그러면 마포가 서울의 대표 문화관광 지구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쎄 그게 정말 그렇게 될까? 이건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와 상권을 망치고 그래서 관광을 망치는 일이다. 관광특구 지정으로 관광객이 몰리면 임대료가 상승하고 홍대에 그나마 남아있던 예술/문화 공간들이 두리반처럼 거점을 옮길 게 분명하다. 그러면 대체,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무엇을 구경하고 관광하러 홍대앞에 오겠는가?
여전히 남아 있는 좁은 골목길, 라이브 클럽들, 특색 있는 소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 주민들이 모여 문화를 나누는 카페… 이런 공간들이 빚어내는 독특한 공기가 바로 ‘홍대앞’이고, 그 공간들은 단지 관광만을 위해 육성된 곳들이 아니었다. 한때 홍대앞을 절실히 그리워했던 입장에서 자신 있게 변호할 수 있다. 그 홍대앞 느낌, 각자가 ‘홍대앞’ 하면 떠올리는 그 개성이 관광특구 지정 이후로도 살아 있을까? 홍대역 2번 출구를 나왔을 때 본 풍경이 명동역 2번 출구와 비슷해질까 봐 그게 두렵다.
3년 전 보았던 젠트리피케이션 다큐 영화 <파티 51>의 정용택 감독이 홍대 관광특구 사업에 대해 내놓은 의견은 바로 이 부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홍대 앞 문화예술의 산소호흡기가 떼일 모양이다.
아마 몇 년 후에 홍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호텔, 쇼핑몰, 면세점,
화장품 가게, 술집밖에 없을 것이다.
안 되는 “육성”을 왜 하는 것일까
명동 얘기가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자면, 정말 가고 싶은 느낌이 있던 ‘핫플레이스’에서 졸지에 사람 구경 하는 곳이 되어 버린 과거의 ‘관광특구’ 사례들이 있다. 명동이 꼭 그렇다. 이 지역이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래, ‘명동성당’으로 대표되던 원래의 묘한 특색은 갈수록 사라져 버렸고 기념품 가게와 오만 잡다한 “한식”을 다 파는 단체 관광객 전용 식당 그리고 ‘유커’들만이 넘치게 되었다. 10년 전 27개소밖에 없던 명동 내 화장품 매장은 이제 143개소에 이른다.
그보다 훨씬 앞서 1980년대에 관광특구로 지정되었고 최근 3년 사이에는 경리단길 등이 ‘핫’해진 이태원은 어떨까. 올해 7월 건물주 싸이와의 오랜 싸움을 끝으로 사라진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점은 당시 건물값이 30억에서 130억까지 뛰었다. 이곳의 디렉터였던?최소연씨가 홍대 관광특구 사업에 관해서 마포FM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밝힌 의견을 잠시 그대로 옮겨 본다.
이태원 경리단길도 관광특구 지정 이후로 많이 변해서,
원주민들은 ‘동네 망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술집들이 많이 생겼고
세탁소, 꽃집, 책방 등의 일상생활을 위한 공간은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다 떠나 버렸다.
관광특구 사업은 이태원에서 이미 망했다고
결론이 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업을 홍대가 하려 한다는 것이
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이러니 당사자들은 오죽 답답하겠는가. ‘전면 백지화론’이 나오는 이유다. 관광특구대책위에서 발언한 노동당 서울시당 김상철 위원장은 0에서부터 다시 홍대만의 관광 행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광특구 지정 요건 중 하나인 ‘연간 관광객 50만명’을 만든 것이 누구냐, 자생적으로 노력한 해당 지역 주민 아니냐, 그러니 구에서는 일방적인 강행이 아니라 그 주민들과의 대화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관광특구를 하고 싶으면, 지역적 특색에 맞게 해야 할 것이라며.
과연 ‘대화’는 가능할까
그런데 그게 과연 잘 될까, 홍대를 관광특구로 지정하면 내 마음 속 홍대의 특색이 마침내 파괴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는 또 있다. 마포구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관광특구 지정 관련 계획에 따르면, “호텔업 시설에 대한 카지노 허가”가 가능해지며, 심지어는 호텔업 경영자가 “연간 60일 이내 공개공지에서 공연 및 음식”을 제공하는 것도 권장될 예정이다. 처음 얘기한 ‘올해 홍대앞에 카지노를 짓는 결정이 날 뻔했다’라는 말은 바로 이 부분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하○트 호텔, 신○호텔 같은 것이 홍대앞에 생길 수 있고 카지노 광고 붙은 리무진 버스가 그 앞으로 드나드는 미래도 가능하다는 말이고, 그 호텔 옆 공터에서 버스킹을 하려면 호텔 홍보과에 허락을 받아야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상상해 보라. 높은 호텔과 카지노가 들어선 홍대, 당신은 정녕 그곳을 홍대앞이라 부르며 가고 싶은가? 홍대앞문화연구네트워크 정진세 씨는 이렇게 말한다.
홍대앞이 고층건물화, 쇼핑타운화 되면
오히려 주민과 방문객의 보행권과 조망권을 잃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걸어다닐 좁은 골목길과 낮은 건물이 있어,
그것들이 (홍대앞의) 예술적 감수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새삼스러운 지적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홍대를 만든 문화예술 종사자와 관계자들, 주민들의 입장과 걱정, 홍대앞의 미래에 대한 구상 등 들어 봐야 할 이야기는 아직 한참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포구청은 ‘카지노’, ‘호텔’을 언급한 당초의 사업 계획에서 뭔가를 바꾼 적이 없는 상황이다. 단지 연구 용역 보고서를 아직 내지 않았고 ‘올해는 중지’라는 입장을 전화상으로 고지하였을 뿐이다. 대책위가 “구청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정리한 이유다.
라이브클럽 빵 김영등 대표가 지난 10월 19일 관광특구 대책위 간담회에서 ‘문화의 파괴’를 걱정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홍대앞 다니는 사람치고 “빵”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곳 대표라는 분이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말씀하시면 이제는 진지하게 걱정이 되는 것이다. 홍대마저 기어이 ‘죽은 상권’ 으로 전락할 것인가. 대화와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남은 낭만마저 온갖 브랜드의 간판에 눌려 멀리 쫓겨나기 전에.
라이브클럽 운영자로서도, 주민으로서도
홍대는 ‘음악도시’라고 부르고 싶다.
이 소중한 문화적 자원을 지킬 대책을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젠트리피케이션이 홍대 문화를 모두 파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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