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이륜차일 뿐이야
나도..나도 자전거 탈거야!
요즘 자전거 전용도로가 제법 깔리면서 ‘나도 교통 체증과 운동 부족에서 벗어나게 자전거 하나 구해서 에코라이프 좀 해볼까?’ 하는 라이더 워너비들이 많은 모양이던데, 여러분 들어봐라. 그거 힙스터와 미디어가 당신에게 주입한 아주 못 된 환상임. 자전거는 절대 낭만과 여유의 상징이 아님. 특히 일상생활에서 자전거 주행이란 시지프스의 고행일 뿐.
자전거 한 대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노래를 부르고 다녔더니 그걸 보다 못한 학교 동기가 부친의 고물상에 중고 자전거가 하나 있으니 가져가라고 연락함. 근데 그 고물상은 과천에 있음. 내 집은 하남시에 있음. 결국 그날 인덕원-사당-왕십리-천호-집앞 버스정류장까지 접이식도 안 되는 그걸 지하철과 버스로 싣고 옴. 그리고 이 거리를 이동하는 내내 사람들이 다 쳐다봄. 1-1번 승강장에서 자전거 갖고 열차 기다리다가 열차에 끌고 들어가서 자전거 고정 안전벨트 채워 본 적 있음? 개풀 고정 하나도 안 됨.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건지 알 수가 음슴.
무엇보다 진짜 개 후달림. 세상 모든 CCTV가 나만 보는 것 같고 나랑 내 자전거가 세상 빈 자리 다 뺏는 것 같고 자전거 레일 없는 계단은 또 왜 이렇게 많냐 싶음. 그걸 끌고 천호역 6번출구 계단 올라가다가 한번 빡치고 거의 꽉 찬 저상버스 뒷문으로 자전거 들이밀면서 탈 때 또 한번 빡쳐서 진짜 집어던질 뻔함.
어디 한 번 라이더의 삶을 느껴보자
그래 뭐 어쨌거나 나도 자전거가 생겼다. 학교나 회사 끝나고 바이크 헬맷 딱 쓰고 전조등 번쩍이며 귀가하는 사람들처럼 해보려고 한강으로 출격함. 어땠을 것 같음? 아름다운 서울을 외치면서 첫 라이딩을 무사히 마쳤을리가 없지. 개 빡쳤음. 일단 가도 가도 집이 안 나옴. 평소 타고 가는 그 버스가 족히 수십 대는 앞질러 지나감.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한참 더 밟아야 집에 간다는 거. 시원은 개뿔 등줄기에 땀 질질 나고 개 더움.
그리고 그냥 지나다닐 때 분명히 평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구간들이 알고 보니 오르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 거기다 자전거 전용도로? 아무 쓸모없음. 무슨 마음의소리 캐릭터 얼굴도 아니고 길 끝마다 90도로 턱이 져 있어서 바퀴 터지기 딱 좋음. 그리고 자전거 다니라고 만든 길에 지나가던 행인1은 기본이고 리어카와 오토바이와 유모차 심지어는 쓰레기차까지 튀어나옴.
그렇게 죽을둥살둥 집에 도착해서 자전거 세우고 나면 너님의 둔부가 막 땅으로 고꾸라지려고 할 텐데 그거 일으켜서 현관문까지 가야 자전거 귀가가 끝남. 시원함 기분좋음 그딴거 없고 그저 1마력도 안 되는 1인력의 이륜차를 끌고다닌 것뿐임.
아 그러니깐 타지 말래도 그러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전거 한 번 타겠다는 당신. 그래 뭐 이제 엄마 말도 잘 안 듣는 다 큰 애들한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자전거 고르는 팁이나 하나 주겠다.
가격별 회사별로 무슨 자전거가 무슨 옵션이 있네 없네 하면서 천년만년 따지고 앉아있는 당신. 다 필요없고 지갑 사정 되는대로 그냥 아무거나 사셈. 심지어 갤럭시S3를 36개월 할부로 사시면 고급자전거도 드려요! 뭐 이런 것도 괜찮다. 정 찝찝하면? 아니면 가격비교 사이트 판매인기 1순위라는 거 주문하던가. 왜냐??소위 말하는 메이커와 옵션질은 좀 타봐야 당신이 체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일단 타라, 그리고 페달을 밟아라. 당신에겐 그게 더욱 필요한 옵션이다.
물론 쇼바가 뭔지 하이브리드가 뭔지 정도의 기초지식은 알아두면 좋긴 한데 너님이 경륜선수나 MTB 동호회원이 아닌 이상 그거 안다고 실제로 탈 자전거 찾는데 도움 주는거 한개도 음슴. 그래서 걍 20만원쯤 들고 동네 자전거포 가서 최신 모델 하나 달라고 하는 행동력이 필요한거다. 참, 발매년도는 좀 중요함. 까딱 잘못하면 나처럼 부품 없다고 자전거 수리를 못 해준다는 거지같은 사태가 터짐.
그리고 대부분 동네 자전거포 사장님들은 ‘~팔이’ 족속이 아니라서 보통 정직하게 추천해 주고, 페달 안장 핸들 바퀴 체인 프레임 있으면 너님이 탈 수 있는 자전거가 맞으니까 뭘 권해주건 믿고 사셈. 어차피 너님은 그 자전거 갖고 낭만 여유 녹색성장 이딴거 못 찾음.
어차피 너님을 기다리는 건 그저 빨간불과 전방 방해물이 안 튀어나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죽어라고 이륜차를 밟고 또 밟는 시지프스의 고행일 뿐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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