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 나만 말 걸기 힘들어요?

살다 보면 가끔 말을 걸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버스에서 이상형을 만났다거나, 우연히 나와 취미가 같은 사람을 발견했다거나. 허나 실제로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다. 이유는 단순하다. 부끄럽잖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건다는 게. 당연한 침묵을 내 손으로 깨버린다는 게.

그러나 용기 내서 꺼낸 말 한 마디가 ?제법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혹은 인연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또 어떠한가. 그때 못한 말 한마디에 오래도록 아쉬워하기 보다, 건네고 싶은 말을 전해주고 마음 가벼운 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고민된다고? 그래서 준비했다.
그 고민의 순간을 겪었던 트웬티스 타임라인 에디터 5인의 이야기.

 

말 한번 ?나눠본 적 없다가, 그냥 툭 던져봤더니... (by. 자인)?

학내 특별자치기구(이하 특기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학교는 인준이 나면 ‘특기구실’이라는 이름으로 방을 하나 준다. 당시 인준이 난 곳은 총 넷. 다만 방이 두 개라 다른 특기구와 방을 나눠 쓰는 상태였다.?사실 여기나 저기나 인원도 약간 겹치고, 이 사람 친구가 저 사람 친구인 꼴이라 같이 써도 딱히 불편할 건 없었다. 그렇게 서로 통성명도 하고, 그러다 친해지면 번호도 교환하다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곤 했다.

그 와중에 얼굴은 아는데 인사하긴 애매하고, 같이 있을 기회도 없고, 게다가 표정의 디폴트 값이 ‘심각한 무표정’으로 설정된 사람이라 먼저 말 걸어보기도 참 애매한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말이라도 걸어보자니 할 말이 하나도 떠오르질 않았다.?‘저기요!’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러다 아무 말도 못 이어나가면… 나를… 이상하게 보겠지…?

커지는 고민이여… ⓒ웹툰 ‘우바우’

그렇다고 졸업할 때까지, 이대로 아는 것도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닌 사이로 지내고 싶진 않았다.?눈치로 보니 나랑 동기/동갑인 것 같은데. ?그래, 언젠간 친구가 되리라. ?이렇게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여전히 말을 걸어볼 만한 기회도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성별도 다르다 보니 왠지 낯을 가리게 되는, 그런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어느 날, 다같이 포이동 문화제에 갈 일이 있었다. 딱히 그렇게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우리 그룹과 그 사람이 속해있는 그룹이 함께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처음 간 문화제는 예상보다 신나고 즐거웠다. 나랑 다른 친구는 흥에 겨워 팔짝팔짝거리며 뛰어다녔다. 그렇게 마구 날뛰다 보니, 저 앞에 혼자 걸어가고 있는 그 사람이 보였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나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기여! 우리 말 놓을래여??! ㅎㅎ히ㅣㅣㅎ!”

그토록 기다려온 순간이 이렇게 #망했어요

…그동안 머리에 그려온 시나리오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대뜸 말 놓자는 그 말이 우리의 처음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도 정말 이상했다. 마구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그 사람은 묘한 표정을 잠시 짓다가 쿨하게 “그래!” 라고 답하고는 가던 길을 갔다. 나도 친구와 “와아!” 하며 다시 어디론가 뛰어갔다.

정말 웃기게도 한 마디 하고 나니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이후로는 마주칠때마다 말을 걸었고, 그러다 되도 않는 헛소리를 하며 수다를 떨다가, 어쩌다 보니 작곡했다던 노래도 같이 듣게 됐다. 그 와중에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러 멀리멀리 놀러도 갔고, 그러다 보니… 눈이 맞아버렸다.

그러니 여러분, 말 걸기가 애매한 사이라고 그대로 애매하게 지내버리지 말아요.
그것이 무엇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니까!

적이다! 사격 개시!

 

당신에게 말을 건네자,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었다 (by.세림)

스물둘의 7월, 처음으로 떠난 태국 배낭여행. 혼자 간 여행이긴 했지만 그렇게 재미있다는 카오산 로드(방콕 여행자 거리)의 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함께 갈 친구를 찾자’는 생각으로 게스트하우스 거실로 나갔고, 그곳에 삼삼오오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건넸다.

“저랑 같이 클럽 가실래요?!”

그러다, 방에서 혼자 남아 있는 여자가 보였다.?아무한테나 말도 잘 걸지만 또 누가 소외되는 건 참지 못하는 쓸데없는 오지랖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 사람이 마음에 걸렸다. 왠지 내가 그 사람을 외롭게 만든 느낌이랄까. 괜히 미안한 마음에 ‘혹시 같이 가실래요?’ 말을 걸었고, 그녀는 ‘오늘 기차를 타고 도착해서 쉬어야 할 것 같다’라며 게스트하우스의 방 안에 혼자 남았다.?그때부터 그녀에게 관심이 갔다.

이렇게 날 대한건 니가 처음이야...ⓒ최고의연인

그녀는 여행자의 상징인 몇 가닥 땋은 머리에 보헤미안스러운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하루 이틀 여행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도 앳돼 보이는 얼굴과 하얀 피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그녀는 꽤 단단한 사람 같았다. 친해지고 싶은데 어제의 기억이 생각나 쉽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녀의 주위를 서성이며 조심스레 다시 말을 걸었다. 다시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그녀는 생각보다 더 놀라운 사람이었다. 16살에 ‘On the Road’라는 책을 읽고 방콕의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 로드가 너무 가고 싶었다는 그녀. 그녀는 눈물이 날 만큼 여행이 가고 싶어 적금을 깨고 방콕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경험이 너무 행복해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계속 돈을 모아 20대가 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도 나름 꽤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 이상의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 사람과 꼭 친해지고 싶었다. 뭔가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어차피 별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기에 ATM 기기를 찾으러 시내로 나간다는 그녀에게 나도 시내에 가고 싶다며 따라나섰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따라 현지 버스를 타고, 버스 안에서 그녀에게 배운 태국어로 길을 묻고, 같이 거리 구경을 하고, 그녀가 데려간 거리 맛집에서 처음으로 ‘뿌팟퐁 커리’(게 커리)를 먹었다. 그때까지 ‘관광객’으로만 다니던 나는 그녀를 따라다니며 처음으로 진짜 현지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이후 내가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가 되도록 도와주었다.

그제서야 진짜 태국을 느낄 수 있었다 ⓒ웹툰 ‘연애혁명’

그렇게 나보다 어렸던 그녀를 난 참 많이 좋아하고 존경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은 겨우 2일이었지만 우리는 ‘꼭 다시 만나자’며 연락처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몇 개월이 흘러 다시 태국이 그리워질 때쯤 난 그녀에게 연락을 건넸다. 지금도 우리는 서로 안부를 묻는다. 아직도 그녀는 나에게 ‘첫 여행’의 추억이고, 내가 만난 길 위의 첫 여행자며, 여행이 그리워질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람이다.

첫 여행에서 그녀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고 아직도 생각한다. 늘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지고 있어서 난 참 행복하다. 만약 내가 첫날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둘쨋날 그녀를 따라 다니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행자’가 되는 법을 끝까지 알 수 없었을 지 모른다.

때로 ‘이 사람 정말 친해지고 싶다’는 직감이 들 때는,
직감을 따라 최선을 다해 상대에게 다가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 사람이 내 평생의 행복으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HOW I MET MY BEST ONLINE FRIEND (by. 형기)

싸이월드가 모두를 묶어주던 그 시절, 내가 시작한 것은 트위터였다.?모르는 사람은 팔로잉하지 않았다. 원래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선팔이니 맞팔이니 하며 모르는 사람과 어색하게 친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추천 계정’ 정도만 확인해보는 정도였고, 타임라인은 그저 내 친구들의 소식이면 그만이었다.

어느 날, 한 계정에 유독 눈길이 갔다. 프로필을 보니 나와 동갑, 바로 옆 학교 학생이었다. 어쩐지 말을 걸고 싶었다. 뭐라 보내야 수상하지 않을까? 혹시?가벼운 수작이나 부리는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나. 길에서 번호 한 번 물을 줄 모르던 소심한 내가, 온라인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한참을 끙끙거린 끝에 겨우 한 마디를 보냈다.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선팔’하고 간다고.

내가 해냈다구!!!!

나의 말 못할 망설임을 알아준 건지, 그 친구 A는 나의 그 말에 ‘맞팔’로 화답했다.?같은 지역, 같은 학번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우리는 금방 편안해졌고, 매일같이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함께 아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메리트였다. 말이 퍼질까 봐 하지 못했던 서로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눴던 ‘수다’는 당시 나에겐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말하기 힘든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그만큼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어디에도 손을 뻗지 못하던 내게, A는 충분한 버팀목이었다. 온라인을 넘어, 공강이면 커피 한 잔을 놓고 얘기하며 힘을 얻었다. 챙겨주는 사람도 없던 생일날엔 케이크를 사 들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로 혼자 찾아오기도 했던 일은, 내가 보낸 가장 행복한 생일 중 하나로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많이 기뻤습니다 ⓒMBC ‘무한도전’

여전히 나는 A를 만난다. 이번에는 늘 만나던 학교 앞 카페가 아닌 강남이었고, 처음으로 커피 대신 소주를 함께 마셨다. 학교를 벗어나고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위치는 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무게의 고민을 토해내고, 서로에게 따뜻한 말과 웃음을 건네고 있다.

만약 그날 망설임에 선팔 멘션을 걸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궁금하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일들 (by. 찬영)

혼자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나와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반가운 일이다. 할 줄 아는 외국어가 “하우 알 유”, “아이 엠 코리안”이 전부라면 더욱 그렇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지난 1월이었나. 베트남 공항에서 택시를 잡다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혼자 여행하는 게 좋다는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서, 홧김에 베트남 하노이 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걱정 말라며 딱 한 가지만 조심하라고 했다. 사기 택시. 그렇다.?베트남에는 사기 택시가 많다. 목적지까지 빙빙 돌아가면서 요금을 더 받는 것이다. 회사 중에 ‘마일린(MAILLINH)'과 ’비나선(VINASUN) ‘ 말고는 믿을 만한 게 없는데, 그마저도 사칭이 많아서 잘 알아봐야 한다고 한다.

네이버로 예습을 했다. 색깔만 잘 보면 될 것 같았다. 마일린은 초록색, 비나선은 하얀색. 좋아, 어려운 거 없네…는 무슨. 택시 정류장으로 나가보니 죄다 초록색 아니면 하얀색이었다. 안내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아이 원트 마일린, 아이 원트 비나선”이라고 백날 외쳐봤자 아무 택시나 타라고 권유할 뿐이었다. 불안함에 일단 물러선 뒤 다른 택시를 기다렸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찍소리도 못할 그런 상황… ⓒ웹툰 ‘우바우’

가방은 무겁고 날씨는 후끈하고. 더 기다리다간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른거렸다. 그래서 아무 택시로 발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어디서 우리말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새어나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국인 두 명이 있었다. 분명 처음 본 사람일 텐데 왠지 낯이 익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아까 내 바로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분들이었다. 5분 남짓 지켜본 결과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나와 비슷한 상황 같았다. 그래서 고민했다. 같이 가자고 해볼까.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 아 모르겠다.

“저기요……. 혹시 한국인이세요?”

말을 건네는 동안 긴장해서 목 근육이 뻣뻣해졌다. 그들은 잠시 정적이었다가, 네-라고 대답했다. 나는 긴장이 조금 풀린 목으로 속마음을 마저 뱉었다. 어디로 가세요, 엇 저도 거기로 가는데.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택시 잡고 가시겠어요? 돈도 아끼고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우리는 같이 택시를 탔다. 그 안에서 나이를 묻고, 사는 곳을 묻고, 여행 떠나온 이유를 묻고, 취미를 묻고. 어색한 공기를 거둬내기 위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제법 친해졌다. 이번엔 그 사람들이 먼저 말했다.

“우리 하노이 머무는 동안 같이 놀아요!”

씐나게!!

이를 계기로 하노이에 머무는 3일 동안 그 사람들과 여행했다. 호안끼엠 호수를 따라 걸으면서 동네 사람들을 구경하고, 분짜 맛집을 찾다가 길을 잃어보고, 맥주 골목에서 “건배!”를 외치다 쪽팔려서 우리끼리 킥킥거리기도 하고, 하롱베이에서 찍은 발랄한 사진까지. 모두 그 사람들과 함께 한 일들이다.?혼자 떠나는 여행이 왜 좋은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아는 사람들과 왔더라면, 혹은 내가 공항에서 말을 걸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런 기억들은 없었겠지.

이제 여행을 가면 말 걸고 싶은 사람에게 쉽게 말을 잘 건다.
그때와 같은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면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by.소현)

나는 내가 말로 쉽게 상처 주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또 나와 끔찍하게 자주 마주치는 포교인 덕분에 ‘낯선 사람에게 말 거는 행위’는 자칫 경범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 날 하루만큼은 그런 생각을 좀 지우는 게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에 요즘에도 가끔 가슴 한 구석이 시큰하다.

고3. 한참 공부 안 되는 머리를 목 위에 얹고 도서관에 다닐 때. 난 거의 매일같이 지우개나 샤프를 잃어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도서관 앞에 있는 문방구에 매일같이 들렸는데, 내가 집에 갈 무렵 들르면 항상 문방구 아주머니의 조카들이 재잘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말이 아주머니지 아가씨처럼 젊은 얼굴에 늘 화사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계셨다. 동화 같이 따스한 느낌에 나중에는 별 살 게 없어도 그냥 들려서 색종이를 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방구 아주머니가 통화하시는 내용을 옆에서 듣게 되었다.

…있잖아, 꿈에서 걔가 나보고 뭣도 없는 문방구 주인이라고…
응응… 만나기도 창피하다고 욕을 하는 거야…
뭐 그래서 밤중에 깨서 한참 울었지 뭐…

정말 웃음이 넘치시는 분이었는데, 그 맑은 종소리 같은 웃음 뒤에 저런 울음이 있을 줄이야. 머리가 띵해졌다. 구석 색종이 앞에서 한참을 말없이 고르는 척 쭈그려 있었다.

뭐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뭐라고? 뭐라고 해야 하지?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마세요? 아주머니는 제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아름다우세요? 어떻게 말해야 그 어이없는 꿈을 지워버리실 수 있을까? 괜히 잘못 말하면? 그래서 더 큰 상처를 만들면 어쩌지? 그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두다다다 발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심장도 덩달아 빨리 뛰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SNOOPY

하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들. 내가 뭐라고 그런 얘기를 하지? 그 생각이 갑자기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지나쳐 가는 손님인데 내가 뭐라고 참견을 해. 그 날 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공책을 하나 사고 나왔다.

그날을 아직도 생각한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이라도 했다면. 좀 더 나아졌을까. 그날 잠이라도 잘 자지 않았을까. 이렇게 지금까지 마음 불편하게 살진 않았을 텐데.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람, 지나쳐가는 낯선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그 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까.

가끔 그 문방구 한쪽 구석 색색의 종이가 쌓여 있던 곳의 먼지 냄새를 떠올린다. 그럴 때마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게 있으면 그냥 말을 걸기로 결심한다.

내가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 이상, 그때부터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마음과 함께.

 

Outro

머릿속에 그리는 공포는 막상 현실에서 만나는 공포보다 훨씬 더 큽니다.?그래서 일단 먼저 해 버리는 게 좋습니다.

이것(먼저 고백하기)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고백을 하면 고민은 상대방 것이죠. 그런데 고백하지 않으면 고백은 내 것입니다.?그러니까 떠넘기세요.

―김제동, <나는 남자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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