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당신의 추억들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어떤 물건들

"딸, 이거 안 쓰는 거지? 버린다?"

오랜만에 집을 내려가자마자 엄마가 나를 찾는다.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은 내 방을 인내와 사랑으로 치워주셨다가 대뜸 마주하신 딸의 짜증에 이젠 질리셨는지, 소지품을 버릴 때는 꼭 확인하곤 하신다. ''네가 보고 버릴 건 다시 분류해.'' 라는 말을 남기시고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상자 박스를 두고 가신다. 엉망진창 낙서 가득한 스케치북부터- 찢고 잘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잡지들, 교과서 귀퉁이를 찢어 메모인지 낙서인지 한 종이 쪼가리들과 그 외 기타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들까지 모여진 상자. 나는 왜 이걸 여태까지 버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지금은 더 이상 쓸모도 없는, 어쩌면 폐기처분하는게 쓰레기들인데 말이다.

누구나 컴퓨터 속 잡동사니 폴더처럼 어쩐지 버릴 수 없어 모아 놓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없앨 수 없는 건 누가 뭐래도 더 이상은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흔적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처럼.

 

새봄 _ 승차권

새봄-승차권

한동네에서 20년을 살며 항상 익숙한 풍경들만을 보던 내게 스무 살 이후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생각해보면 내 20대 삶은 이동의 연속이었다. 20년 동안 울산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본 적 없던 내가 대학교로 인해 갑작스럽게 서울에 올라오게 되면서 모든 생활환경들이 변해버렸고 그 이후론 끊임없이 낯선 공간들로의 연속이었다. 그중엔 내가 원치 않은 이동도 있었고, 내가 원해서 떠난 것도 있었지만 20대 내 삶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음에는 분명하다.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나는 오랜 시간을 이동하면서 그 순간마다 분명히 숨 쉬며 살아있었고 동시에 많은 덧없는 생각들을 했고 때론 지쳐서 잠을 자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다해도 다시금 언젠가는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나는 어떤 증거라도 모으듯 움직인 승차권들을 무심코 버리지 않고 지갑 한구석 넣어놓곤 했다. 이동이란것은 너무 공허해 이런 증거들이 없다면 내가 움직인 것이 꿈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하게 되니 이것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살아있었구나 하며 불안한 나의 지금을 한 번 더 되새겨 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인지 모바일 앱으로 끊곤 하는 KTX는 왠지 모를 허무함이 남는다.

 

수은 _ 다이어리

수은-일기장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 마음껏 방탕하게 살았던 두 해의 기록이 담긴 다이어리다.오른쪽 두개의 다이어리는 먼저 내가 가장 열정적이었던 시기인 수험생 시절, 2011년도에 쓰던 스케쥴러와 다이어리다. 가끔 보면서 놀라운 것은, 하루에 순수 개인 자습시간이 10시간 이상이 되는 날들이 많았다는 것이고, 하루에 5시간 정도 공부한 날에는 나를 자책하는 단어들이 빼곡히 적혀져 있단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도 숫자에 얽매어 공부시간이라는 숫자에도, 점수라는 숫자에도 늘 쫓겨 죄인처럼 살았나보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적어도 멋지게 20대, 성인을 맞이하기 위해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나는 19살의 내가 꿈꾸던 모습인가

왼쪽 초록색 다이어리는 내가 대학 신입생이었던 2012년에 썼던 것인데, 안에 내용들을 보면 누구누구와 술약속 누구 선배와 밥약속 등이 빼곡하다. 신입생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힘은 강했다. ''일학년은 그래도 된다'' 라고 말해주는 수많은 것들은 나를 들뜨게 했고, 그 것들을 철저히 지켰다. 그리하여 아주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순수하던 시절이라 그저 웃음나는 기억들이 가득하다.

 

해찬 _ 염주

해찬-염주

학교 책상과 학원 책상과 집 안 식탁만 오고가다가 대안학교로 가기로 부모님과 결정을 했다. 비평준화 지역이라는 이유로 입학 시험을 봐야 했던 친구들과 달리 몇날 며칠 포토폴리오를 준비하고 면접도 보았다. 새로운 친구들과 3년을 함께하는 17살은 그래서 더 특별했다. OT를 가기 전날 학교 근처에 있던 고창의 선운사에 가서 팔목을 감쌀 염주를 샀다.

불교를 믿진 않지만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할 때마다 손목을 확인하곤 했다. 하루종일 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던 염주는 어느덧 헤져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 늦은 겨울이 아닌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에 선운사를 다시 들러보겠다고 계속 다짐했지만 아직 가보지 못했다. 졸업장을 받으면 필요없어질 줄 알았던 염주는 요즘들어 자꾸만 다시 찾고 싶어진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입은 코트의 속주머니에 수험표를 찾았다. 이것만 끝나면 다 될 줄 알았던 어린 생각이 떠올라서 얼른 버렸지만, 방 안에는 아직도 염주가 남아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도 누구에게든지 기댈 수 없는 이제는 특히 눈에 띈다.

 

아름별 _ 초딩때 쓴 소설

아름별-소설

문방구에서 불량식품 사먹던 행복이 전부이던 시절, 어느 날 해리포터 시리즈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해리포터에게 푹 빠져버린 초딩 별이는 직접 그와 같은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국어10칸 노트에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정성스럽게 연필로 적은 소설. 처음에 이걸 버리지 못한 이유는 ‘할머니나 엄마가 발견할까봐’였다. 쓰레기통에 노트를 버리면 분명 펼쳐볼 것이고 그럼 내가 쓴 소설을 볼 게 아닌가!

그리하여 서랍 깊숙이 숨겨놨던 마법소설 노트는 이제 쭈글쭈글 빛이 바랬다. 지금은 혼자 살게 된 내가 버린다고 해도 아무도 펼쳐보지 않겠지만, 이제는 버리려야 버려지지가 않는다.

 

준성 _ 2011년의 영수증

준성-영수증

내가 가장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때의 영수증이다.학생회를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공동체로 모으고, 논쟁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그래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사업을 참 많이도 했었더랬다. 농활, 주점, 토론회, 축제까지. 학생회 임기가 끝나고, 이사하던 날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서랍 속 자리를 꾸역꾸역 차지하고 있다.누렇게 번지고, 색이 바래가는 영수증처럼 어떤 이들에겐 그저 스쳐지나간 1년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남았길.

 

유진 _ 교과서

유진-교과서1

고등학교 1학년 때 사회 과목은 일반사회, 경제, 지리 이렇게 세 개로 나눠져 과목 수업 때도 총 세 분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특히 지리 과목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특히, 제일 처음 나오는 등고선과 축척 파트는 나에게 ''지리 과목은 너 따위가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라고 철벽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2년 간 철저히 무시해온 지리. 문과인 나는 고3 수험생이 되면서 사회탐구 영역에 응시할 3-4개 과목을 골라야 했다.

자신 있는 두 과목은 정해졌고, 마지막 한 과목으로 윤리 혹은 한국지리 중에 선택해야 했다. 덜 싫은 것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각국의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들을 외우는 건 무리라는 생각에 1학년 때 접었던 한국지리를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혼자서는 마의 ''등고선''과 2년 간 놓쳐온 부분들을 감당하기 어려울 거 같아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다. 그리고 꿈의 선생님을 만난 듯 했다. 호탕한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그런 화통한 말씨를 쓰는 사람이 드물어 그 선생님의 어투가 신선하게 느껴져 강의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듯 했다.

그 선생님의 재밌는 의 방식대로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해서 ''지리 천재''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지만 모의 고사에서는 늘 참패. 이 죽일 놈의 지리와 나는 정녕 운명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애증의 지리. 수능에서는 1년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다. (뿌듯)그저 수능 과목으로 공부했던 것 치고는 꽤 실용적이고 흥미로운 과목인 것 같다. 수능에서 한 발 떨어져 보니 한국 지리는 우리 나라 도시의 특성에 대해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상식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여행을 다닐 때 관광 사업이 특화된 도시들을 떠올릴 수 있어 좋다. 대학에 온 이후로 지리책을 펼칠 일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버릴 수 없다. 책장 한 구석에 처박혀있는 애증의 한국지리.

 

상일 _ 크리스마스 편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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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일-크리스마스편지지

왜 하필 크리스마스 편지지를 샀을까. 이건 군인한테 보내기도 뭣하고, 추석에 인사치레하기엔 구색도 안맞다. 제대하고 나서, 이것저것 남들 하는건 다 따라하는게 사회물 들이키는 방식인 줄 알고, 남들 다 하는 크리스마스 선물교환에 포틀락까지는 해봤는데, 정작 편지 쓸 일은 없더라. 온갖 형식에만 다 맞춰서 구색이나 갖출 줄 알았지, 그 안에 내용은 텅 비어있는 나 자신을 가끔 발견하는데, 이게 당최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를 알아야 말이지.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마음이었다.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내 진심이 행동에 담겨나올 줄 알았고, 내 의도는 상대가 꼭 알아줄거라 믿었다. 한창 초코파이 섭취하다 나온 때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정신을 가득 뿜었으리라. 이젠 알았다. 사람은 표현을 해야한다. 즉각적인 카톡메세지보다, 한 번, 두 번 , 가끔은 지웠다가 다시 쓰는 내 생각의 정리된 결과물. 다시 편지를 쓸 날이 올 것 같다.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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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새봄

권새봄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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