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고 말하는 용기는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초능력은 없더라도 용기는 있으면 좋겠는데

시험공부를 하느라 매일 늦게 들어온다

버스를 타다가 졸린 나머지 머리를 창문에 기댔다. 깜빡하고 잠이 들어버린 나를 깨운 것은 낯선 아줌마의 고함소리였다.

"오만 동네 다 들렀다가 오나, 뭐 이렇게 늦게 와요?"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아줌마에게 쏠렸다. 하지만 아줌마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늦게오면 기다리는 사람들 시간은 뭐가 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버 스기사 아저씨는 당황하셨는지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아니, 아저씨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다들 무언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느꼈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줌마의 무개념 강도가 너무나도 강력했던 걸까.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똑 부러지게 생긴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빨리 가려면 택시 타셔야죠."

하지만 사건이 그렇게 마무리 되기에는 아주머니의 분노가 너무도 강력했다.

"그쪽한테 말한 것 아니잖아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딱히 내게 한 말도 아닌데, 내가 끼어들어도 되는걸까. 혹은, 정말로 아주머니는 뭔가 급하신 일이 있던 것이 아닐까. 사실 나는 그런 아줌마의 사정도 모르는 배려 없는 사람이 되는것일까?  여러가지 생각에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 언니는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네, 그래도 아주머니 행동은 잘못되신 거에요."

와, 정말 멋있다. 저렇게 자신감있게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저런 모습. 초등학교 시절, 여자애들의 외모순위를 매겨 칠판에 이름을 써가며 낄낄대던 남자애들을 혼쭐 내주던 나인데, 정작 그 런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요즘은 항상 이런 식이다

지난번에는 박람회 단기 알바에서 메뉴얼에 따라 '땅콩 알러지가 있냐'고 묻는 말에 대뜸 화를 내는 손님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분노하지 않았다. 대신 내 실수에 대해서 곱씹고 있었다.

"너무 무례하게 질문했나. 정중하지 못했나. "

"혹시 그 사람은 땅콩 알러지 컴플렉스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생각해봤지만 내 잘못은 떠오르지 않았고, 대신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모든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일까.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 사회의 작은 괴물들에게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자신에게 독설을 내뱉는 김구라에게

김숙은 "상처 주네" 라고 대꾸했다. 좋은 태도다. 내게 몰려오는 각종 무례한 행동에는 김숙과 같이 정색하며 직설적으로 말해야 조금이나마 눈치를 채기 때문이다. 시소 탈 때 상대와 나와의 무게 차이가 많이 나면 재미가 없듯이, 관계 또한 나만의 배려로만 이어나가는 관계라면 유지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 않던가.

조금씩 상대방이 나에게 실망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더 늦기 전에, 무례한 상대방을 배려하기에 앞서 언제나 내 옆에 있는 '나'부터 괜찮은지 먼저 물어볼 것이다. 다시 한번 버스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더라도,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일어설 수 있도록.

내일은 반드시 한 뼘의 용기를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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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이지선

Twenties Timeline 에디터. 음악과 영화와 책을 동경하는, 이상과 현실 그 중간을 달리는 중인 야매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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