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정말로 잘난 사람인 줄 알았다

‘그’ 질문을 받기 전 까지는 말이다

불합격 문자를 받았다. 커튼을 쳤다. 그리고 삼일 째 자취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먹지도 않았고 기말고사도 보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두운 방에 달라붙어만 있었다.

나는 내가 우리나라에 한 획을 그을 사람인 줄 알았다

건방진 얘기지만, 난 내가 남들과 달리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거나 생각이 짧거나, 경솔한 보통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차는 걸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 같이 평가받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쟤보단 더 잘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보통인 저 사람들과는 달리 멋있게 살고 싶었고 그 모습을 은근슬쩍 자랑해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난 특별한 존재로 보이도록 행동했다. 내가 얼마나 바쁜지, 대외활동을 얼마나 하는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 장래에 어떤 일을 할 건지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내가 남몰래 경쟁상대로 찍어두었던 걔보다 더 우위에 선 느낌이었다.

아무튼 그랬다

사람들 사이에서 주인공의 자리를 남에 뺏기면 인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심지어 부정적 피드백을 받는 날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두세 배는 무리해서 했다. 그렇게 기어코 타인에게 인정을 받아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남들에게 듣고 싶은 말대로 행동하는 일이 많아졌다. 난 그게 영리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정을 얻고 나면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으니까.

대기업은 내 인정 욕구의 정점이었다

모두가 나보고 대기업에 지원하라고 했다. 그 정도 스펙이면 무조건 합격이라고, 부럽다고 했다. 그들의 인정에 으쓱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그래, 대기업에 들어가서 내 커리어의 정점을 찍자. 저들과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벌리는 거야.

대기업 채용 홈페이지마다 들어가 인턴을 채용하는지 살폈다. 관심 있던 대기업에서 채용을 하고 있었다. 준비해오던 직무도 아니었지만 무작정 자소서와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서류 전형이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는 방방 뛰었다.?벌써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어쩜 좋아요 제가 잘난것을

면접 때 말할 답변을 서른 개는 더 준비해서 갔다. 그래, 틀림없이 이 정도 답변이면 전문적이고 생각 깊은 지원자로 보일 거야. 높이 솟은 빌딩 앞에서 사원증을 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모습을 대입해보며 흥분했다.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건 사진을 아빠한테 자랑하면 좋겠다. 분명 그 사진은 좋아요 100개는 거뜬히 넘기겠지?

면접장에 들어갔다. 질문이 쏟아졌다. 매 질문마다 적당하게 내 경험담을 늘어놓으며?막힘없이 대답했다. 이 정도 스토리면 감동받을 거라며, 할 수 있는 거 많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온갖 스킬을 총동원 했다. 이 스킬들이 지금껏 내 자존심을 지탱해왔는데 안 통할 리 없지.

“그럼 살면서 가장 열심히 해온 게 뭐예요?”

“글부터 영상, 사진까지…”

“아니요, 하나만요. 이것만은 정말로 잘 알고 있다는 거 딱 하나만 ”

할 말이 없었다.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났다. 면접관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아닌데.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그 나이에 이러기 힘든데 대단하다고, 그러니 어서 오시라는 말이 나와야하는데.?하지만 지금의 나는 덩그러니 놓여있는 고깃덩어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나는 이제 패배자의 인생을 살겠구나

그리고 방에만 있는 날이 4일 째. 연락이 왜 이렇게 안 되냐며 나를 찾던 친구들을 만났다. 다들 걱정했다고 묻더라. 별 일 없었다고 했다. 두근거리는 맥박을 참으며 불합격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들 괜찮다고, 힘 내라고 했다.

가족에게 전화해서 불합격 소식을 전했다. 같은 반응이었다. 밥 잘 챙겨 먹으라는 평소의 안부를 전하며 통화가 끝났다. 왜 그정도밖에 못하냐며 윽박지르는 사람도, 난 네가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다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모두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패했지만, 생각보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 뒤로, 나는 그냥 생긴대로 산다. 누군가 나보다 뛰어나게 잘 해서 인정받으면 이제 질투하지 않고 그냥 박수를 친다.내가 그 사람만큼 못한대도 실망할 필요가 업삳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인정에 대한 욕구들은 다소 남아있다. 그러나 이전만큼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초조해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날 인정해주지 않으면 뭐, 어쩌겠나.
나는 그냥 나대로 살아야지.

더 빨리 내려놓았다면, 더 빨리 행복했을거란 아쉬움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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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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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잘 하는 건 없는 그런 어른. 항상 우울한데, 명랑한 척 하는 작은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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