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봄이라고 우기던 5월도 끝나고 어느덧 완연한 여름이 찾아왔다. 여름만큼 호불호가 심한 계절도 없을 것이다. 여름만을 죽자고 기다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발 오지 말라고 사정 사정을 하던 사람도 있을 테고.
하지만 아무리 빌어도 무더위는 이미 찾아와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고, 또 아무리 사정해도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게 우리 곁을 떠나갈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당신은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싫어하는 사람인가?
어느덧 성큼 다가온 여름을 바라보는, 두 에디터의 이야기..
여름, 게으른 나의 천국
5월 초쯤 되면 여름이 오는 냄새가 난다. 여름만의 향기. 하루 종일 실내에 있다가 밤늦게 집에 가는 길에 맡을 수 있는 여름 밤공기 냄새. 그 냄새를 맡기만 해도 설레기 시작한다. 사실 그 냄새가 한창 날 때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기말고사 기간. 기말 과제와 기말 시험 준비로 바빠 미치겠을 때, 날씨는 너무 좋은데 나가 놀 수 없을 때, 그 답답함이 쌓여갈 때, 도서관에 있다가 밤늦게 나왔을 때, 딱 그 밤공기에 하루의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
밤이니까,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여름밤이니까, 밖에서 놀아도 하나도 안 이상한 밤이니까. 편의점에서 캔맥을 하나 사들고 학교 옥상이든, 길거리의 벤치든, 어느 구석진 공원이든 앉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엉덩이 붙일만 한 곳이면 무조건 앉는 거다. 왠지 모르게 마음에 안 들고 불편하면 또 다른 곳으로 언제든지, 부담 없이 옮길 수 있으니, 여름밤의 길거리는 온통 내 것이 된 기분이 든다.
여름에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맥주를 아무리 먹어도 안 춥다. 물론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서 실내에서 추울 때도 있지만 길거리 나가서 10초만 있으면 다시 따뜻해지니까. 때로는 친구들이랑 수업 끝나고 우르르르 새로 나왔다는 빙수를 먹으러 가서, 하나 시켜 놓고 팀플이 어쨌고 친구가 저쨌고. 수다 떨면서 한 스푼 씩 퍼먹고 여유 부리는 그때 그 빙수는, 겨울에 먹는 빙수 맛과는 정말 다르다.
사실 여름은 물놀이를 위해 존재하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겨울에는 수영장에 들어갈 때도 너무 춥고 샤워하고 나와서 집에 갈 때도 얼어 죽을 것 같다. 반면 여름에는 더워서 물속에 빨리 뛰어들고 싶고, 수영 다 하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지 않아도 알아서 잘 말라서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든다. 딱 수영하기 좋은 계절. 야외 수영장도 많이 개장하고, 정 수영장에 갈 수 없을 땐 빡빡한 일상 속에서 잠깐의 일탈로 공원의 분수에 몸을 적셔보는 것도 너무나 좋다.
여름에는 무조건 바닷가, 시내에서 신고 온 쪼리를 벗어 들고 모래를 밟을 때 그 뜨거우면서도 부드러운 촉감. 성격 착해 보이는 아저씨를 골라 튜브와 파라솔 하나를 대여한다. 파라솔 아래 돗자리를 깔고 대충 입고 온 옷을 벗어던져 놓고 시원한 물에 풍덩 들어가면 아, 이게 여름이지 싶다. 신나게 물장난 치며 놀다가 지치면 튜브 위에 둥둥 떠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해변 소리와 햇빛, 침대와 또 다른 편안한 기분, 정말 여기가 그 어디에도 없는 천국이다.
그렇게 바다에서 놀다가 나오면, 수영복 위에 대충 얇은 옷 아무거나 걸치고 돌아다니면 된다. 수영복 때문에 옷이 조금 젖어도 금방 마르고, 겨울처럼 많이 껴입을 필요도 없어서 내 몸이 자유를 얻은 기분이다. 살랑살랑한 여름 원피스 하나만 걸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발걸음도 가볍고 기분은 더더욱 날아갈 것 같다. 굳이 어렵게 레이어링이니, 스타일링이니 따질 필요 없이 예쁜 원피스와 카디건 하나면 더운 해변도, 추운 에어컨 아래에서도 발랄한 웃음으로 다닐 수 있다.
이렇게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나에게, 여름은 천국일 수밖에 .
권보은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
- 이제 아무런 색도 찾을 수 없어 - 2016년 7월 1일
- [커밍써머] 내 인생을 빛내러 온 나의 구원자 - 2016년 6월 22일
- 가로수길에 남아 있는 열세 장의 추억 - 2016년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