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터닝포인트 특집] 내가 이렇게나 주춤거렸다!!

내가 정말 이게 하고 싶었던가 생각하다 보니 벌써…

기획의도

올해도 벌써 중간을 지나가는 지점이다. 대학생이라면 한 학기를 마치고 다음 학기를 계획할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앞을 향해 내달리는 20대에게 잠시 숨 고르기를 부탁했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10대를 지나, 목표부터 과정까지 모든 것을 홀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직접 글씨를 써달라고 펜과 종이를 내밀었더니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글자들이 돌아왔다. 과거를 향한 반성, 현재 직면한 고민, 미래를 위한 노력 등 뒤따라오는 설명이 제법 묵직했다.

 

조수현. 24세. 여자. 휴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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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좀 사랑해주기 → 평생 걸릴 듯 ㅎ

타인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나에겐 엄격하다보니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고 관계를 형성하며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최근 겪었던 아픈 경험의 이유를 돌아보니 너무 나 자신에게만 가혹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나를 사랑해주기로 했다. 계획을 세운지 한참인데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주평화’와 같은 느낌이다. 막연하고 궁극적인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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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 근데 이거 왜때문에 하는 거였더라

믿기지 않겠지만 고등학교 때는 날씬했다. 대학에 와서 술과 각종 야식을 끼고 살다보니 아슬아슬하게 과체중 직전까지 이르렀다. 늘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과 현재의 괴리를 느낀다. 그게 자존감 하락의 원인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살을 빼려 하는데 실천이 쉽진 않다. 건강식과는 거리가 먼 입맛에 운동도 좋아하지 않아서 힘들다. 게다가 결정적 계기 내지 강력한 동기부여가 없다. 귀엽다며 팔뚝살을 만지고, 먹는 모습이 좋다면서 손잡고 치킨집으로 이끄는 남자친구 덕에 별 위기의식이 없다. 굳이 나를 사회의 눈에 맞춰야하나 고민하면서도 미적 기준을 낮추긴 어려운 상태다.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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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 말빨 늘리기 → 들은 건 있어서 필사를 해 보려고 했었지만 ㅋ

대입 전형 준비를 위해 영어 논술을 열심히 하다 보니 영어로 글쓰는 게 편해졌다. 반대로 한국어는 번역해놓은 것 같은 글이 나온다. 레포트 쓸 때야 별 지장 없지만, 가끔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고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쓰고 싶은데 그건 좀 어렵다. 필사를 하려고 『칼의 노래』를 펼쳐봤으나…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내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갈등이 생기면 말로 잘 풀어나가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래도 예전보단 실력이 많이 늘었다. 오랜 연애가 도움이 된 것 같다. 감정적으로 쏟아내는 대신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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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적으로 살기 → 내가 무슨 계획을 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게으르게 살다가 안 되겠다 싶어 막 계획을 세워놓고 실천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때는 그냥저냥 살아도 괜찮았는데, 이젠 그러면 망할 것 같다. 사실 하고 싶은 게 사라져서 막막하다. 원래는 문화재관리사가 되고 싶어서 관련 학과에 지원했지만 낙방했다. 합격이 절실했던 재수 때 학원의 컨설팅을 충실히 따라 지원한 곳이 지금 전공이다.

와 보니 다들 공무원 시험,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뭘 하고 살아야할 지 모르겠다. 입학 전엔 이름 들어본 대학을 나오면 대충 월급 300만 원의 직장인이 될 줄 알았다. 근데 현실은 그게 아니고. 이제 난 성인이니까 누가 학원 컨설팅처럼 딱딱 정해줄 수도 없다. 연금복권이 최선인 것 같다. 하하.

 

이해찬. 21세. 남자. 공익 판정 대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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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 없이 학교 쭉 다니기 → 다쳐서 실패

올해는 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부터 든다. 가장 먼저 엑스레이를 찍을 때 기분 나쁜 빛을 쏘는 네모난 기계가 떠오른다. 작년 가을에 오토바이에 부딪혀 부러진 어깨를 매 달 한 번씩 촬영했다. 통원치료를 하다가 2월에는 기어이 수술을 해서 철심을 박았고, 학교를 다니다가 재수술을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아 만우절 전 날에 휴학을 했다. 지금까지 넉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뼈는 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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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나가기 → 다쳐서 실패…

교통사고는 작년 일이었지만 올해까지 이어진 이유는 무엇이라도 더 해내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다치기 전부터 꾸려진 해외봉사 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방학 동안 평일에 왕복 5시간 거리의 학교를 오갔다. “너 어깨 괜찮아?” 친구들이 물어보면, 무조건 곧 나을 거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새로운 병원을 찾아갔고,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예매했던 비행기 표를 취소했고, 그동안의 시간이 전부 헛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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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줄이기 → 병상에 누워 있다 보니 불가능…

차라리 죽은 듯이 몸을 요양하면서 마음이라도 편하게 지낼 걸, 나는 매일마다 밤에 핸드폰을 붙잡으면서 밖의 소식들을 기어이 확인했다. 20대 초반이라면 당연히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미래를 차곡차곡 준비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프레임 안에 나는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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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 아프면 행복할 수 없더라구…

다행히 어깨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크리스마스 즈음에 날짜를 맞춰서 철심 제거 수술을 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그 괴물 같은 놈 앞에 서야 한다. 요즘은 그 기계를 만나면 혼잣말로 ‘무너지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눈을 부릅뜬다. 그동안 얼굴 지겹도록 보느라 고생했다고 기계랑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게 남은 한 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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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책 영화 등등 다 보기 → 이건 뭐 나름 성공…?

당분간 혼자서 어떻게 살아야 내가 행복할지 실험을 하듯 살고 싶다. 뒤늦게 당장 손에 잡히는 책과 영화를 꺼내서 읽으면서 요즘 시간을 보고 있다. 왜 이걸 이제야 보았을까, 뭐하러 지금까지 마음을 아꼈을까. 우등생은 아니지만 강의실에서 교수님이랑 이야기하면서 받는 자극이 그리워서 2학기 때 복학을 한다. 다만 예전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기는 힘들 것 같다.

 

이유진. 26세. 여자. 방금 귀국한 초과학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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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즐겁게 맞이하기! → 생각만큼 그렇지 않았다

2015년이 2016년으로 바뀌던 순간 베네치아에 있었다. 12시가 되는 순간, 하늘로 불꽃들이 날아올랐고 사람들은 그것을 향해 탄성을 질렀다. 모두가 아무런 이유 없이, 단지 해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열광했다. 그때는 사실 그저 멍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축제에 융화되기엔 그리 반갑지 않은 날이었다. 달갑지 않았던 한 해의 시작만큼 오늘까지의 날들도 힘겹게 이끌려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날들을 돌아보는 일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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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면 활기 넘치게 살기! 토익! 알바! → 무기력한데 바쁘기만 하고

6개월 만에 돌아온 한국, 그렇게 그리웠던 한국인데 그 반가움은 일주일 만에 금방 가셨고, 나를 기다리는 건 그저 현실이었다. 마지막 학기를 어중이떠중이로 보내면서 틈나는 대로 친구들도 만나고, 구직에 필요한 토익 시험도 두어 번을 쳤으며 간간이 아르바이트도 했다. 하루하루를 우울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 몰두했다. 근데 이상하리만큼 무난한, 그래서 더 쳐졌던 날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다이어리에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의 동선을 빼곡히 쓰는데, 이번 상반기에는 유난히 집 그림이 많다. 평소 같으면 친구들이라도 만나 긍정적 기운을 얻고 위로를 받으려고 했을 텐데, 아니면 하다못해 집 앞 카페에서 커피라도 마시고 들어오던 나였는데. 누굴 만나고 온 후의 공허함이나 상대적 박탈감 따위가 싫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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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을 돌리면서 나 자신을 비우고 돌아보기 → 멈추면 비로소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기력함을 이겨낼 만큼 강하지 않았던 나는 금방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던 슬럼프속에서 허우적댔다. 그 헤엄속에서, 방 안에서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올해를 비우려고 노력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뭐라도 해야 남겠지, 움직여야 변화가 생기지’ 같은 부지런한 생각들로 채워 왔기에. 꽉 채워서 버거워 할 바에야 숨을 돌리면서 객관화해 보자, 싶었다. 결과는 대실패. 나를 바로 볼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남긴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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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봤을 때 보람이 느껴지는 2016년 → 이제부터라도 뭐라도 해야지

지나고 보니 아름다웠다―하고 말할 거리가 없는 것이 상반기를 보낸 후 남은 아쉬움이다. 지난 일은 후회를 남기기도 하고 어려웠던 일은 보람으로 남기도 하는데, 6개월 간 아름다움을 남기지 못했다. 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이번 상반기.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당분간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뭐라도 시작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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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경

임현경

아웃캠퍼스 클래스 1기.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똑똑한 척하지만 생리적 욕구의 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