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글 메이커~내 애완견이 이럴 리가 없어~

강아지, 강아지 하고 노래를 부르던 내게 작은 천사가 내려왔다,
이름은 이백이. 종류는 비글이라고 한다.

1. 만남

요즘은 페북만 열면 강아지 짤에 아주 마음이 선덕선덕하다.
좋아요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것도 하루 이틀.
강아지를 가지고 싶다고 동네방네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리고 내게 걸려온 사촌의 전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그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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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는 여름 꿀 알바를 찾아 떠나갔다.
사촌이 떠난 자리에는 아주 작고 귀여운 강아리 한 마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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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려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2. 밥 먹이기

강아지 이름은 이백이.
말 그대로 200일을 맞이하여 사촌의 여친이 준 선물이라고 한다.
분명 지난 주 사촌의 페북 연애 상태가 사라진 것을 기억하지만
모두를 위해 모른 척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백이는 낯선 공간에 겁이 나는지 구석에서 낑낑거린다.
안쓰럽다. 배가 고플까봐 걱정도 된다.

사촌에게 배운 대로 계량컵에 맞춰 사료를 차곡차곡 담아준다.
쪼르르, 하고 내게 달려오는 모습이 그저 귀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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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려서 그런 거겠지.
아님 배가 많이 고팠겠지.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하며 요란한 식사를 끝낸다.

그러다 보니 나도 배가 고프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냉장고를 뒤적이는데 어쩐지 뒤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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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바라본다. 이백이가 온 지 겨우 여섯 시간이 지났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어쩐지 머리가 어지럽다.

3. 동침

몸이 찌뿌둥하다. 웬지 내일은 몸살이 날 것 같다.
판피린 하나 먹고 침대로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날뛰던 이백이도 잠이 든 것 같다.
시끄러운 하루였지만 그래도 한 생명체를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아직 적응을 못 한 탓이겠지. 먼 길을 오느라 많이 놀랐겠지.
내일은 더 사랑해주리라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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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그런 거겠지. 깜깜한 방 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러니 인기척이 반가울 만도 하지.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본다.

하지만 너무 날뛴다. 몸이 점점 더 욱씬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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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개새끼를 가뒀다.

4. 생활예절

거울을 보니 눈이 빨갛다.

사촌 새끼가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낸다.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방 문을 나서는 순간 뭐가 미끈하고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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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새끼가 똥폭탄을 뿌려놨다. 내일은 물티슈를 아주 많이 사야겠다.

5. 산책

비글은 이런 산책을 통해 그 어떤 행위보다 많은 기쁨과 만족감을 느낀다. 만약 비글에게 선택권에 있어 밥과 산책을 두고 선택하라고 하면 비글은 단연코 산책을 선택할 품종이다. 비글을 키우는 주인들은 이러한 비글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충분한 외출을 시켜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사람도 비글도 모두 스트레스에서 풀려날 수 있다.

<악마견으로 매도된 비글을 위한 변명> 중

마음이 아프다. 이백이의 이런 속도 모르고 나는…
인간이란 얼마나 이기적인 종족인가.

가여운 마음에 이백이를 안아 든다.
똥으로 칠갑된 발바닥이 눈 앞에서 바둥거린다.
일단은 산책을 가야겠다.

밖에서 노니는 이백이를 보니 마음이 뿌듯하다.
이백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또 TV나 보면서 뒹굴거렸겠지.
운동도 되고 진작에 이렇게 나올 것을.

가끔 목줄이 끊어저라 날뛰는 이백이 때문에 휘청한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한 시간 남짓한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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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근처에서 방방 날뛰는 이백이를 보고 있자니 진심 등골이 서늘하다.
산책용 목줄을 입에 물고 방방 돌아다니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간만의 운동으로 인해 나 역시 지칠 대로 지친 상태.
더 걸었더간 죽을지도 모른다.

실내에서 적당히 놀아주면, 좀 좋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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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감겨오는 시야 너머로 처 웃고 있는 사촌새끼가 보인다.

6. 교육

엄마한테 등싸대기를 맞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헥헥거리는 이백이.
그리고 그 뒤에 펼쳐진 장관,

엄마 미안해요. 내가 잘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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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같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이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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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류는 비글에게 지배당하던 종족이 아니었을까. 내가 알던 모든 상식들이 흔들린다.

7. 외출

오늘은 기다리던 소개팅.
꽃단장하고 나오니 이백이가 미친 듯이 짖는다.
주인도 몰라보는 너란 새끼…

산책줄을 입에 물고 방방 뛰는 이백이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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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려는 찰나, 이백이의 표정이 어쩐지 심상치 않다.

착각이겠지…
제발 그렇게 믿고 싶다.

 

8. 길들이기 (2)

살다 보니 살아진다는 말 처럼
어느덧 이백이랑과의 동거도 익숙해졌다.

전투적으로 밥을 먹는 것도
마라톤과 같은 산책도 이제는 몸이 기억하고 움직인다.

이정도로 친숙해졌으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반창고로 얼룩진 내 팔을 바라보며 조용히 손톱깎이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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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이는 소파 아래로 기어 들어가 공성전을 시작했다.

9. 그리고 끝.

이백이가 이상하다.
그렇게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던 사료에 손도 대지 않는다.

녀석도 아는 걸까. 내일이면 사촌이 온다는 것을.
나도 덩달이 입맛이 없다.

다 망가진 쇼파, 너덜해진 신발,
복부에 치명상을 입은 곰인형까지…
집 안엔 이백이와의 추억이 가득하다.

한 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얼마든지 짧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이백이를 울지 않고 내일 잘 보낼 수 있을까?

눈이 벌써부터 먹먹해진다.

그리고 울려오는 전화. 목소리를 겨우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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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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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이백이는 시골 할아버지 집에 가서 잘 살고 있습니다.
고라니도 미친 듯이 쫓아다니고, 가끔 옆집 닭도 물고.

행복해 보입니다.

사랑한다. 이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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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은

Twenties TimeLine의 (구)피처에디터 (신)디자인팀. 과천 사는 비글 배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