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한 저녁, 이 노래를 꺼내 먹어요

오늘 하루, 완전히 방전된 당신을 위해서.

마음에 춘곤증이라도 온 걸까?

몸은 정신 없이 바쁘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마음은 그와 달리 우울하고, 축 처지기만 한다.
그렇게 힘든 하루의 끝에서, 가끔 생각나는 노래들이 있다.

과거를 잊게 해주기도,
흐릿한 일상의 순간을 빛내 주기도 하는
누군가들의 소중한 플레이리스트들.

위로가 필요할 때 꺼내 먹으면 좋을 노래들,
오늘 조금 지쳐버린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지우고 싶은 지난 사랑이 떠오르는 하루의 끝에서

See, We're damned by the existential moment
_ Ben Folds, <You don't know me>

그 새끼는 알았을 것이다. 내가 그 새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 새끼의 행동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애인처럼 굴었다가 친구처럼 굴었다가, 뭐 이런식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끌려다녔다. 하긴, 사랑과 같은 그 복잡한 것을 십대 중반 여자애가 어찌 구분했으랴.

몇 년간 그런 관계가 지속되었다. 그러다 나는 알아버렸다. 아, 이것은 좆같은 관계로구나. 이것은 매우 건강하지 않은 상태이구나. 그 뒤부터 칼 같이 끊어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누굴 그렇게 좋아한 것도 처음이었고, 끊어냄과 동시에 절친도 잃었어야 했으니까. 그래서일까. 그 지긋지긋한 모든 일이 끝났을때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갑자기 몇 년을 쌓여온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그래, 나는 매 순간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새끼는 평생 내 진심을 모르고 살겠지. 소중한 연인이자 친구를 잃은 내 마음을 영영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겠지. 안녕. 내 사랑. 안녕 내 어린 날의 기억아.

_나익명

쓰고 싶은 글이 잘 써지지 않는 하루의 끝에서

아직 내가 못꺼내놓은게 있어
그것만 찾으면 가짜와 내가 구분 될 수 있어
_ E-sens , <Writer's Block>

메모장을 켠다. 일단은 제목부터. 꼭 들어가야 할 내용. 이 표현만큼은 넣고 싶다 생각한 것 두개 쯤. 대충의 목차. 대충의 흐름, 그리고 내고 싶은 결론을 빠르게 쏟아 빈 메모장을 채운다. 이쯤 하면 대충의 준비는 끝난다. 답 안나오고 머리 터지는 싸움을 시작할 최소한의 준비가. 글쓰기란 것은 도통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

글쟁이랍시고 자처하기에도 아직 미미한 경력이지만은, 메모장 화면의 흰 여백은 언제나 무섭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단어 몇개를 흘려본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흘린 단어를, 주워 담고, 다시 쏟고, 주워담고, 반복한다. 수십 수백번.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답답하고, 항상 화나는 이 작업. 따라오는 의문. 내가 쓴 글은 왜 항상 이렇게 못나보일까?

그렇게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울적해질 때는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 이 노래를 듣곤 한다.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그래, E-sens처럼 가사를 기깔나게 잘 쓰는 사람에게도 글의 어려움은 매한가지겠지. 물론, 사생활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여하튼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노라면, 작게나마 용기가 생긴다. '아직 못꺼내놓은' 그 무엇을 찾아 글 안으로 뛰어들어갈만한 그런 용기가 말이다. 그렇게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쓴다. 되든 안되든. 다만 마감이 올 때까지.

_안학수

많은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고 싶었던 하루의 끝에서

물 들여봐.
너만의 컬러 흑백 세상 너로 색칠해
_ 루나, < Keep on Doin'>

당장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그럴 때면 초능력을 발휘해서 어떻게든 자리를 뜨고 싶어진다. 특히 이번 달은 시험 준비부터 원고 마감까지 밀린 과제들이 많았다. 그럴때마다 나는 노래를 들었다.?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기 위해서.

이어폰을 꽂는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도망칠 수 있다.?그리고 혼자만의 파티를 시작했다.?상상속에서 나는 무척이나 자유롭다. 컬러 스프레이를 건물들에 잔뜩 뿌리고, 길거리에서 디자이너 패션쇼 퍼레이드를 벌인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잔뜩 도시를 헝클어놓고 나면 어느덧 집에 도착한다. 물론 바깥세상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매우 안전한 일탈이다.

그 일탈이 끝나면 나는 이제 밖을 보면서도 웃을 수 있다. 조금은 일상이 무기력하지 않다.
루나의 노래는,?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가치 있게 만드는 노래다.

_이해찬

 

힘들고 지치지만 다시 내일을 살아야 하는 하루의 끝에서

굽이 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_ 가을방학, <속아도 꿈결>

그날따라 왠지 집중도 안 되고, 어딘가 우울했다. 마감이 이틀 남은 자소서도 점수가 처참한 토익책도, 모두 쳐다보기 싫었다. 집으로 들어가긴 더욱 싫었고. 그대로 가방을 챙겨 나와 습관처럼 한강을 찾았다. 때마침 도착한 메일 알림에는, 이제는 지겨운 서류탈락 통보가 한 통 도착해 있었다. 귀하의 출중한 역량에도 불구하고는 무슨. 가차 없이 떨어뜨린 놈에게 붙여주는 핑계 한 번 정성스러웠다.

우울함이 또 다시 늘어버리고 말았다. 맥주 한 캔 들고서 마냥 한강만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심심해, 핸드폰을 꺼내 노래를 틀었다. 대충 내 취향이랍시고 플레이리스트 구석에 구겨 넣은 노래였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평소에는 별 감각도 없던 노랫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그래. 어차피 꿈 같은 세상에, 뭐하라 우울함을 지피나. 조금은 기운을 차린다음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탈락이면 어떻고 백수면 어때. 어차피 뭣도 없는 세상에 다 지나가는 꿈결일 뿐이라면. 하루만 더 속아보기로 하자. 딱 하루만 더.

_ 윤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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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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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무지개 스펀지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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