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

약속을 줄였는데도 돈이 없었습니다.

2016년 12월을 끝으로 프리랜서라 쓰고 백수라 읽는가 되었습니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안 들어오고 실업급여와 저축해놓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최대한 저의 '생활'을 유지하고 싶지만, 이 시한부 생활이 언제까지 허락될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지자 가장 먼저 줄인 건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계라는 것은 돈이 필요한 일이더군요 어떻게 줄여볼까 궁리하다가 카톡을 탈퇴했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줄였는데도, 돈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밥도 하루에 1-2끼만 먹는데도 잔액은 참 빨리 줄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어떤 것에 얼마만큼 돈을 쓰는지 살펴보고 싶어졌습니다. 지금의 나를 유지하는데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 한 달에 얼마가 드는가. 분야별로 정리를 해봤습니다.

 

주거비 : 22만원
(현재 누적 : ?22만원)

이불 밖은 무서우니까 집이 필요합니다.

집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밤이슬을 피해 몸을 누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집값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죠. 심지어 학교 기숙사를 건축하려고 해도 주변 원룸 건물주들의 눈치를 봐야한다고 하네요. 그나마 제가 사는 곳은 공유 주거형태라 '서울'치고는 월세가 저렴한 편입니다. 물론, 같이 사는 데 드는 불편함은 감수해야겠죠?

식비 : 30만원
(현재 누적 : 52만원)

어느 국회의원처럼 알뜰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친구와 만나면 '밥'을 먹습니다. 그렇다고 크게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닙니다. 한끼에 7,000원 정도 사용합니다.?가끔 술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면 술도 먹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혜리도시락과 레츠비로 끝낼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저는 저의 잔고를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습니다. 보통 하루에 1-2끼를 먹습니다.

사람처럼 하고 다니기 위해서 : 14만원
(현재 누적 : 66만원)

이럴 순 없으니까요...

옷은 비쌉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돌려 입을 수 있는 패턴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데이트에는 매번 보여줬던 옷 말고 예쁜 옷을 입고 싶습니다. ?쇼핑몰을 ?60번쯤 뒤지다가 큰 맘 먹고 구매를 누릅니다. 아, 이것도 사치인가요? 하지만 옷은 몇 년 넘게 입잖아요. 참, 저는 탈색 머리라서 머리에 에센스를 꼭 발라줘야 합니다. 그리고 화장품은 소모품이니까 다 쓰면 사야죠. 이런. 또 돈이 드네요.

여자로 태어난 이유로 : 1만원
(현재 누적 : 67만원)

그렇습니다.

저는 신체적으로 여자라서 한 달에 한번 생리를 합니다. 원래는 탐폰과 면 생리대를 썼습니다만, 가격이 너무 부담되서 최근 재사용이 가능한 생리컵을 쓰고 있습니다. 꽤 절약을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팬티 라이너는 필요하더라구요.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좀 비쌉니다. 친구들을 보니 생리기간에 진통제를 먹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또 돈이 들어가겠죠?

교통비 6만 원
(현재 누적 : 73만원)

마음 같아서는 저도...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약속장소가 신촌이라면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사는 해방촌에서 2시간쯤 걸어야 하거든요. 저는 축지법도 쓰지 못하는 머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거기에 가끔 일산 본가에 가서 저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빨간버스를 타야 하네요. ?역시 사람은 움직이면 돈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옳네요.

애인과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비용 : 19만원
(현재 누적 : 82만원)

사치는 부리지 않습니다. 부릴 수도 없구요. ⓒMBC '네멋대로해라'

애인은 군인입니다. 면회 갈 때 차비가 들고, 편지와 작은 선물을 위한 비용이 들고, 그것을 보내기 위한한 운송비가 듭니다. 옆에 있어서 볼 수 없는 허전함은 전화로 달랩니다. 애인과의 모든 소통은 전화로 하기 때문에 요금제는 큰 맘 먹고 무제한으로 바꿨습니다. 7만원의 지출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보고팠던 애인이 나왔습니다.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임도구가 필요하죠.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만큼은 필요합니다.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배움 : 24만원
(현재 누적 : 106만원)

서점에서 눈에 들러오는 책을 삽니다. 기타레슨과 영어그룹과외를 받습니다. 뭔가 배우는 걸 좋아합니다. 배우는 건 제 삶의 정신적인 부분을 많이 책임지고 있으며,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배웁니다.

사실 위에서는 고려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언제까지 고정비를 지출해야 하는 주거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겠죠. 적어도 얼마간의 보증금을 모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또다시 지출을 줄여야겠죠. ?무엇을 하기 위해 버는 돈인데 아이러니하게 또 다른 무엇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건 내 몸을 위한 수면시간이거나 매주 화요일 저녁에 있는 영어 과외일수도 있고, 또 한 달에 한두 번 있는 연인과의 면회일 수도 있죠.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제가 젊고 건강하다는 것을 전제한 소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라도 당한다면,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해도 새어나가는 그 돈을 어쩌면 좋을까요?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인간의 본성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삶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을 과연 그가 알았을까 싶습니다.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포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요.?다만 언제나 바라는 것은, 그냥, 지금의 나를, 그저 유지하는 것뿐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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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김연희

Twenties' Timeline 에디터. 이태원에서의 20시간 실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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