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말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야 한다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 박후기 시인의 <복서>를 인용한 글입니다.

틈을 노려라
파고들지 않으면 살 길은 없다
아버지는 내게 세상을 파고드는
인파이터가 되라고 주문했다

집에 늦게 들어온 날이었다. 안방에서 깊이 잠든 어머니께서 깨지를 않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아직도 들어오시지를 않았다. 조용히 잠들 준비를 한 후, 불을 끄러 거실에 나갔다. 아버지가 거실에 계셨다. 약주를 꽤 하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띄며 앉아보라고 하시면서 입을 여셨다.

나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하셨다. 주변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을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되겠다고 대답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세상과 격렬한 인파이팅을 해야 했다.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 따위를 할 여유는 없다. 내 정면에 보이는 저 거대한 세상이 보이는 틈, 그 틈을 파고들어 끊임없이 주먹을 내질러야 했다.

두 번은 없을 것이다. 복싱 역사 최초로 여덟 체급을 석권한 위대한 인파이터, 파퀴아오처럼 세상을 살아가야지. 아버지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벽 속으로 들어가 벽이 되었다
링 안으로 걸어 들어가
인생에 등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과는 취업과는 전혀 무관한 과였다. 번듯하고 멋진 직장에 다니기 위해서는 전공을 하나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취업이 잘 된다는 정경대가 최선이겠지. 매일 틀어박혀 책과 씨름했다. 내가 남들보다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는 길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력하는 일 뿐.

당연히, 토익은 만점에 가까워야 한다. 아침부터 강남의 학원으로 달려 나갔고 밤늦게까지 스터디를 했다. 힘들다고 휴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습다.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더 이상 쉴 틈은 없다. 빡빡한 학기 중에서도 틈틈이 공부하다 다시 방학이 오면 특강을 듣는다. 그렇게 나는 쉴 새 없이 싸웠다. 마치 파퀴아오 처럼.

언젠간 끝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내 '스펙'은 점차 높아졌다.  물론 잃은 것들도 있었다. 동기들과의 즐거운 술자리, 마음 맞는 친구들과의 축구, 날씨가 좋은 날의 산책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무슨 상관인가?

나는 내가 부수어야 할 세상의 틈을 정확히 보고 인파이팅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눈 코 뜰 새가 있을리가 없다. 힘들지 않냐고? 링에 올라온 이상 나는 내려갈 수 없다. 나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섀도복싱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주먹을 날릴 수는 있었지만
거울 속의 제 몸을 끌어안지는 못했다

남들이 다 아는 기업에 취직했다. 주변에서는 묘한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가졌다. 링 위에서 챔피언 벨트를 든 파퀴아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지만 이상하게 외롭다.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도 그립다. 지난 친구들은 더 이상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어느 순간 나는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세상과 투쟁했지만 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다. 잃어버린 내 취미와 감정, 여유, 나를 떠난 사람들, 그들과 보냈던 시간들, 그것들이 내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었다.

 

나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고장 난 인공위성처럼 지구를 겉돌았고
...어느 날 갑자기 땅속으로 꺼져버렸다

거리를 지나가는 아무 사람을 붙잡고 내가 놓친 것들을 너무 후회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다. 장남으로 부모님이 나에게 거는 기대와 같은 것들을 이재와서 떨칠 수가 없다.

물론 아무도 이런 나의 절망을 모를 것이다. 나는 모든 취준생들이 원하는 위치에 당도했으며, 모든 직장인들이 꿈꾸는 연봉을 받고 있으니까.  이 사회는 여전히 나를 챔피언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파퀴아오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하지만 링 아래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링 위에 오른다면 돌아올 수가 없다고.
그러니,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싸울거냐고 말이다.

그리고, 과거의 나에게도 이 말이 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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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훈

조영훈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비오는 날과 홍학을 좋아합니다. 공산당을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