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남자가 되는 순간

찌질함부터 어른스러움까지. 남자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이야기.

나이만 들면 어른이라 하지만

만 20세에 성인식을 가지면 그때부터 공식적인 어른이 된다. 물론 성인식을 치렀다고 하루아침에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열다섯 살 언저리인데 어느새 편의점에서 가면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오래된 앨범들을 뒤적이다 앳된 얼굴의 아버지를 마주한 적이 있다.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어른됨의 기분을 아버지 또한 느꼈을까. 그 누구도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된 건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한 소년을 지금처럼 강하고 단단한 남자로 만들어놓았을까. 바로 이 순간 우리는 소년일까 남자일까?

남성 팀원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언제 남자가 되었다고 느꼈나요?"

 

남자가 되면 덜 걱정하시겠지…?

남자가 되면 덜 걱정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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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찬 (20세)

글을 쓰다가 홧김에 다 지워버리고, 남자라는 말을 한자로 노트에 옮겨 적고 한참을 고민해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아직 남자가 덜 된 것 같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점원이 민증을 보여 달라고 하면 내가 동안인가 싶어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스무 살이 된 마당에 “난 남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찌질해 보인다.

남자라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탈리아 사나이들처럼 여자를 꼬실 수 있는 조각 같은 얼굴과 보석 같은 멘트를 날리는 건 아니다. 용서해줄 수 없는 그런 찌질한 추태도 책임지고 짊어져야는게 남자가 아닐까. 잠시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서 여름방학으로 가자.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를 이어가다가 장거리 커플이 된 올해에 나는 그 사람에게 먼저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마주보지 않고 목소리로 이별을 전했던 업보를 받는 건지, 동창회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

얼굴에 철판을 깔거나 아에 철벽을 치거나 골랐어야 했는데, 난 둘 다 아니었다. 대천 바닷가에서 방 하나를 빌린 1박2일 여행이었고, 한참 술판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외장하드를 돌려준다는 핑계로 그녀를 밖으로 불러냈다. 먼저 이별하자고 한 사람이 밖으로 불러낸 이 상황,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지금 그 사람과 나는 각자 알아서 잘 살고 있다. 이제 찌질한 남자 말고 한 여자에게 가장 멋있는 남자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종원 (23세)

여전히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 쪽이 따뜻해진다. 그건 아무래도 남자라는 낱말이 가지는 재질 때문일 것이다. 거칠고 어딘가 단단한 느낌이 부싯돌 같아서 남몰래 읊조려볼 때마다 가슴 속에 불꽃이 일곤 한다. 남자가 되는 일은 적어도 나에게는 아버지처럼 되는 일이다. 그리고 단 한 번 아버지처럼 된 적이 있었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야 이대로 졸업해서는 꿈과 영영 멀어지고 말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게다가 전액 장학금도 받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버지로서는 내가 빨리 대학을 졸업해서 가계에 보탬이 되어주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그러한 부분을 나 역시 모르는 건 아니어서 그래, 일단 시험을 쳐보자 하고 결심했다.떨어지면 이 길이 아닌 거고 붙으면 이 길에 모든 걸 부어보는 거다.

그리고 운 좋게 시험에 붙어서 그날로 아버지께 처음으로 이야기를 드렸다. 아버지 몰래 스스로를 시험했고 학교에 붙었으니 여기에 다 걸어보고 싶다고. 동생들이 나를 보고 삶이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것임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꿈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과거 때문에 평생을 우리에게 미안해하는 아버지가 내가 하는 걸 보면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드렸다. 아버지는 충분히 더 반대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시며 잘해보라고 하셨는데 그 외에는 아무런 말씀도 않으셔서 지금도 아버지가 내게 설득당해주신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아버지를 가장 훌륭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책임감에 있는 것처럼 아버지도 그날 나에게서 책임감 같은 걸 보신 걸까. 그렇다면 적어도 그날만큼은 우리 집에 남자가 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현익 (24세)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기 힘들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찌질함이 폭발하고, 같은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고, 상대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기를 여러 번이었다. 누구도 이런 사람을 남자로 가까이 대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줄 사랑을 나눠서10명의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10명과 동시에 연애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들을 다독여주는 역할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게 한결 마음 편히, 진실을 말하며 다가올 수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이때 나는 조금이나마 남자가 된 것 아닐까.

 

상일 (25세)

20살 여름에 처음 동아리 선배들을 따라 클럽에 갔다. 쿵쾅거리는 일렉사운드에 귀가 마비되는 것 같았고, 수십 개의 레이저 포인트가 눈뽕을 쏴댔다. 그것보다 미칠 것 같은 건 그 환경이 낯설은 것은 나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남자는 봉, 아니 봉 옆의 여자를 잡고 춤을 추고, 어떤 남자는 한손에 유리병을 들고 여자에게 귓속말을 한다. 내게 허용된 공간이라고는 족히 lcm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비좁은 사람들 틈.

스테이지 가장자리에 겨우 발을 디디고 섰다. 누가 내 옷을 격하게 잡는다. 내 셔츠에 어떤 여자가 자신의 화장품을 묻혀가면서까지 정신을 놓고 흔들어댄다. 손을 떼버리면 이 여자는 바로 밑으로 떨어진다.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 그 여자를 끌어안았다. 초면인건 상관없었다. 난 그 순간 한 여성이 안전하게 비트를 즐길 수 있도록 받쳐주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준성 (26세)

남중남고의 6년을 경유하면서, 소년들에게 가장 많은 웃음을 살 수 있는 이야기는 단연 음담패설이었다. "누가 누구랑 잤대", "느낌이 어때" 따위의 미지의 이야기들.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잘 하는 녀석은 영웅이 되곤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어설픈 섹드립과 찌질한 음담패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나와 너의 이야기는 더 이상 웃음의 소재가 될 수 없었다. 이 순간이 남자가 된 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더 이상 소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진 (26세)

솔직히 말하겠다. 남자가 되지 못했음을 지금도 절감하고 있다. 예전엔 막연히 군대를 다녀오면 “진짜 사나이”가 될 수 있겠지 싶었다. 그래서 평범하게 306보충대로 갔다. 아버지는 사나이 만들어 주는 곳은 육사라고 아우성이었지만, 난 집안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병역을 하러 가는 입장이라 최대한 남들 다 가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한없이 애매한 후방 사단으로 뺑뺑이가 떨어져 남한강 물안개를 22개월간 마시다 왔다.

남들 다 가는 대로 가 보니, 군대에는 딱 세 부류의 남자가 있었다. 우악스런 자, 우악스러운 체하는 자, 우악스러운 체하지 못하는 자. 아주 가끔 우악스럽지 않게 군인 노릇 잘 하는 신사적인 병이나 간부가 있어 우리는 그들을 ‘참 군인’이라 불렀고, 우리 군인들 사이에서 그 호칭은 그저 비웃는 말이었다. 첫 1개월 동안 신교대에서 진짜 사나이가 되어갈 생각에 내심 들떴고 나머지 21개월 동안 그 진짜 사나이가 겨우 이런 거였던가 줄기차게 실망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2011년 7월의 어느 날, 나는 우악스러운 체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대대탄약고 초소에 모조리 짱박아두고 도망치듯 위병소를 나왔다. 다른 건 몰라도, 군대에는 추하고 비루한 우악스러움만이 있어서, 남자다움은 얻어올 수 없었다.

 

도현 (27세)

당신과의 시간을 손으로 꼽아본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손가락이 필요하지 않았다. 3년을 아는 사이로 지냈었고 그 중 1년은 좋아한다고 틈만 나면 매달렸다. 항상 당신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반응을 언제나 필요한 쪽으로 상상하며 버텨왔었다.

마음 같아서는 같은 학교에 가고 싶었다. 아쉽게도 당신은 여대생이었다. 마침 당신이 다니던 학교 근처에 가고 싶었던 학과가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지원서를 넣었다. 안다. 병신 같은 짓이다. 하지만 우체통은 빨갛고 하늘이 푸른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던가. 그때의 내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합격발표가 났다. 당신에게 연락을 했다. 밥을 먹자고 한다. 당신이 먼저 말한 일이다. 물리기 없기다. 내 마음이 드디어 닿은 것이 틀림없다. 준비를 하는 내내 손이 덜덜 떨린다. 그리고 홍대입구 6번 출구 ㅡ 지금은 9번 출구로 바뀌었다 ㅡ KFC에서 말보로를 피고 있던 당신을 봤을 때는 거의 숨이 멎는 줄만 알았다.

문제는 그 상태가 만남 내내 지속되었다는데 있다. 뭐 먹고 싶어? 아 뭐 그냥. 이거 괜찮아? 아 네 뭐 저야 뭐. 서울 오니까 어때? 네 뭐 좋죠 뭐. 당신은 내게 일반적인 기회를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여 나는 당신이 만남 중반부터 계속 폰을 만지작거린 것에 대하여 아무런 할 말이 없다.

더 하고 싶은 거 없지?

머릿속에 오만가지 단어들이 떠오른다. 조금만더있다가요누나술한잔할까요수업은어때요요즘몸은괜찮으세요그동안어떻게지냈어요남자친구는있어요아니다그것보다있잖아요그래서누나는저를어떻게생각ㅡ

겨우 목에서 몇 가지 단어들을 게워낸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당신은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다가 막차를 타고 사라졌다. 한참을 멍하게 서 있다 나도 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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