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서울의 밤.

밤 거리의 풍경이 되었던 그 순간, 지나간 기억의 파편.

해가 지고 있다. 온종일 갇혀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온다. 상점의 간판은 어둑함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듯 조명을 켜기 시작했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그 눈부심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한다.?합정에서 당산철교를 지나도록 예정된 지하철이 앞차와의 간격조정을 위해 잠시 멈춰 섰다. 저 멀리 보이는 한강에서는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풍경 안에서 나도, 어떤 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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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입학시험을 위해 난생 처음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을 적, 그때 차창 밖은 분명 어둑한 밤이었다. 입시로 인한 생각들보다도 눈앞의 생소한 풍경에 집중했던 그 당시 내 눈과 머릿속을 차지했던 건 서울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다양한 모양의 도로들이 많고, 그 많은 도로들보다도 차들은 더 많은 곳이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강을 끼고 수많은 다리들이 서로 계속 교차되고 그 교차되는 다리 위에 끊임없이 차들이 서있고, 또는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당시 나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건, 저 아래 지방에 사는 내가 그렇게 많은 차들이 일렬로 서있는 걸 볼 때는 명절같은 날이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고, 강 위에 꼬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교차된 다리들보다는 우리 동네에서는 한눈으로 단번에 보이는 단순하고 밋밋한 모습들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이제 상경한지 5년 이상이 됐고 이제는 제법 서울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서울이 보여주는 다양한 밤의 문화와 시간들을 보냈지만 아직도 아빠의 차 속에서 보았던 교차된도로 위에 어둠속에서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던 차들이 불빛을 뿜던 그 날밤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 당시 그것들이 낯설고 놀라웠다면, 이제는 피곤한 몸을 끌고 집으로 귀가하는 시간에 집으로 들어가는 길의 입구에서 항상 마주하는 익숙한 풍경이다.

취업 준비생이라는 타이틀 아래 가곤 하는 도서관이나 카페와 같은 것들이 모두 집 앞의 다리 건너편에 있던 터라 귀가하기 위해서는 강을 낀 긴 다리를 지나야 한다. 그렇게 귀가하는 밤 시간대에는 걷고 있는 다리 위의 사람들보다 다리와 바로 맞닿아있는 도로 위의 운전하는 차들이 더 많다. 저마다 다른 선을 지닌 채로 교차하고 풀려가는 도로 위의 복잡하고 기묘한 불빛의 뭉치들을 보고 있으면 에너지가 느껴진다.

긴하루의 끝 수많은 차들이 지나가고 있는 그곳에서 멍하니 서서 그 움직임들을 보고 있으면 시끄럽다기보다 그 움직임이 너무 일정해 고요함,또는 편안함까지도 느껴진다. 낯설음에 놀랍고 부담스러움까지 느껴졌던 그날의 붉고 노란 불빛들이 지금의 나에게 오히려 안정감을 주는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속에서 오년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그렇듯 해가지는 밤이 되면 똑같이 볼수있는 풍경이라서.

 

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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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은 한 번도 밤인 적이 없었다. 하루의 해가 지는 순간부터 환하게 밝아지는 간판과 가로등 불빛은 까맣게 덮여야 할 밤하늘을 애매한 주황빛 비슷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달이나 가끔 눈에 들어오는 날이면 밤인 줄을 알았다. 인공의 불빛들은 현란하게 움직이며 끊임없이 나의 시신경을 괴롭혔다. 피곤했다. 그곳의 밤은 도무지 쉴 줄을 몰랐다. 환하게 켜진 불빛은 쉬지 말고 달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자꾸만 저 건물 중에서 어디든지 들어가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길 위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선택지였다.

피곤해 집에 가기조차 귀찮던 어느 밤이었다. 그날따라 그 많은 불빛이 너무나 질려서, 어디론가 숨고 싶어서, 소리와 빛을 피해 무작정 발을 떼었다. 얼마간 걷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높은 곳에 있었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만큼 으슥한데다 홀로 산 위에 놓여진 공원이었다. 신촌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우뚝 솟은 세브란스부터 유플렉스까지, 그 크던 불빛들이 모두 저 멀리 점이 되어 있었다.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자니, 그 많은 불빛 많은 사람들이 그저 한없이 부질없어 보였다. 저 별 것도 아닌 불빛 속에서, 나는 무엇 때문에 그리 버둥거렸는지. 토익이니 학점이니 하는 것들도 아무래도 좋았다.?그 순간 나는 그 모든 압박과 외침들의 밖에 있었다.

우리가 밤을 맞기까지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 공원은, 신촌의 마지막 남은 밤의 조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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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는 마음의 문제가 많았다. 정신이 약해지니 체력마저 떨어져서 가벼운 체조라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침 6시보다 저녁 6시가 편한 나는 하루 일과를 대충 끝마친 10시, 11시쯤 자전거를 끌고 한강으로 나섰다. 그냥 걷는 건 너무 지루하고, 밤에 혼자 걷기는 무서우니까.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머릿속을 오가는 수많은 생각들을 그대로 지나가게 둘 수 있었다. 달리는 곳곳에 갖은 잡념들을 흩뿌리는 기분이었다.

집 앞 하천을 따라 30분 정도 달리면 성산대교가 나왔다. 쉬지 않고 달리다 양화대교로 가는 길목에서 잠시 멈춰 한강을 바라보곤 했다. 모든 고민들은 잠시 야경에 가려졌다. 한강 너머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황홀경에 취해 ‘이 맛에 서울 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서울사람인 나에게 서울은 언제나 ‘현실’이었고, 그럼에도 한강은 잠시나마 피곤한 현실을 미화시켜줬다.

정신을 차려보면 또 다시 현실. 나는 바로 고민을 해야 했다. 여기서 더 멀리 갈 것인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바닥에 쓰여 있는 3.3km를 보며, 내 목적지가 얼마나 먼 지 명확히 보고 있음에도 방향을 선택하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3.3km마저 망설이고 있는데 어떤 결정은 쉬울까. 고민을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괜스레 민망해졌다. 서울의 밤은 결코 만만한 것이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멀리서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이 야경 속에도 사실 나처럼 ‘현실’이 쉽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감춰져 있을 테니까.

한강을 달리는 동안은 머릿속을 0으로 만들 수 있어 한결 가벼웠다. 현실에 대한 고민은 날아가버리고 그것과 바톤 터치를 하듯 다가올 현실에 대한 생각들은 새로이 스몄기 때문에. 기분탓이었겠지만 그날은 지구 끝까지 달릴 수 있을 것처럼 바퀴도 잘 굴러갔던 것 같다.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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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영화로 봤던 장면인 양 똑똑히 기억이 난다. 서울 천호동 대로변에 번듯이 세워진 빌딩의 1층 화장실에, 갇혀, 꼬박 30분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일 말이다. 상황은 이랬다. 월요일 늦게까지 어디 모임에서 늦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천호역의 그 기나긴 계단을 빠져나오자마자 갑자기 느닷없이 복통이 온 것이었다.

9시 53분께 그 순간 찰나의 판단으로는, 이 상태(?)로 다시 지하 천호역으로 내려가 공중화장실까지 안전하게(?)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눈앞에 보이는 불야성의 식당들과 빌딩들이 그렇게 믿음직해 보일 수가 없었다. 설마 이 하고많은 건물 중에 날 위해 열린 화장실 하나가 없을까?

서울의 밤은 가끔 어리숙하고 무모한 젊음을 삼켜 버릴 때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이를테면 그들이 그들의 경비원에게 명하여 놓은 시각인 밤 열 시를 정확히 기하여, 건물 전용 외부 화장실과 건물을 이어주는 유일한 철문을 냉엄하게 잠가 버리는 식이다. 화장실을 나와 보니, 유일한 출입구는 철통 같이 잠겨 있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어중간하고 구불구불한 울타리, 그 울타리에 뚫린 조그만 창문과 그 너머로 보이는 무슨 갈비찜 식당 주방, 이곳저곳에서 내놓은 각종 요식업 잡동사니 더미 그리고 나를 활짝 비웃고 있는 그 화장실뿐이었다. 그 와중에 천호동 한복판인지라 와이브로는 참 잘도 터졌고, 평소 조용하던 '카톡방'들은 그날따라 활발했다. 나는 그때 출구가 없는 1평짜리 공간을, 오직 당혹감 하나 때문에, 10분 가까이나 맴돌고 있었고.

탈출 과정은 좀 하찮았다. 결국 울타리를 타고 기어올랐고, 남의 식당 건물 옥상을 걸었고, 그나마 고도(?)가 낮아 보이는 언저리에서 점프해 빠져나온 다음, 그 빌딩 바깥을 반 바퀴 뱅 돌아 다시 처음의 천호역 출구 앞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데, 그 깊은 밤의 시장통을 지나면서 보니, 서울의 밤에 사람들은 그저 어딘가 실내에 자리를 잡고 앉거나 불빛 있는 바깥 거점을 중심으로 모여 집에 갈 궁리를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밤 그 도시에서 하찮은 이유로 어중간한 '바깥'에 자기 몸을 던져 두는 사람들은, 그저 어리숙한 극소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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