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 없는 ‘원조 청춘팔이’를 보다.
과거 TV 키드였던 나는 청춘 시트콤이라는 장르에 대한 향수가 있다.?조금 이른 청소년기부터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란 저런 것이구나.”하는 막연한 인상을 심어준 청춘 시트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청춘 시트콤이 보이지 않았다. 요즘은 시트콤 하면 <하이킥> 시리즈, <막돼먹은 영애씨>를 떠올릴 사람들이 많지만, 시트콤 하면 <논스톱>부터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논스톱> 시리즈뿐만이 아니다. <골뱅이>, <레츠고>, <오렌지>, <레인보우 로망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남자 셋 여자 셋>까지. 다 챙겨볼 수조차 없게 많았던 청춘 시트콤은 청춘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심어주었다.
기숙사, 하숙집은 무조건 투룸에 풀옵션. 대학에 가면 모두 예쁘고 깨끗한 집에서 사나 보다 했다. 방학마다 빼곡한 하숙촌에서 발품 팔며 한 학기에 한 번씩 이사하게 될 줄이야. 짠돌이 캐릭터, 어리버리도 기억난다. 그런 캐릭터가 지금 대학에 있다면 그건 이미 훈훈한 청춘 시트콤이 아니라 <치인트(=치즈 인 더 트랩)>에 가까울 거다. 뭐니뭐니해도 우리를 가장 설레게 했던 건 청춘들의 연애였다. 대학에 가면, 무조건 CC는 기본에 게다가 남자친구가 생겼다 하면 조인성, 현빈, 장근석쯤은 될 것이라는 환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조인성, 현빈, 장근석 급 훈남이 학교에 있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부당 한 명씩. 그 한 명이 내 차지 될 리 없으니, 마음이라도 맞는 CC를 찾아 나서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춘 시트콤이 우리에게 얼마나 환상만을 심어줬는지 알게 된다. 그래도 가끔은 그 말도 안 되는 청춘 시트콤을 보면서 설렜던 그 때가 그립다. 청춘 시트콤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청춘 시트콤 묻고, 답하다
본인 소개 및 청춘 시트콤 연출 계기 부탁드립니다.
저는 MBC 드라마국 PD 김민식입니다. 예능 PD로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을 연출했었고, 버라이어티도 좀 하고 드라마국으로 옮겨서 <글로리아>, <내조의 여왕> 등등을 연출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 자신에 대해 얘기하라고 한다면, 저는 ‘덕후’에요. 전형적인 덕후.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해요. 하고 싶은 일만 하다가 MBC PD가 되었으니 저를 조금 밥맛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래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 공채도 봤고, 하고 싶더라고요. (웃음)
<뉴 논스톱>을 연출하게 된 계기는?
난 <프렌즈>라는 미국 시트콤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덕후 급으로 좋아했죠. 이메일 아이디도 “프렌즈”로 할 정도였으니까요. 대학원 시절에 <프렌즈>를 즐겨봤는데, 그냥 막연하게 <프렌즈> 같은 시트콤이 한국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운 좋게 PD가 됐고 시트콤을 연출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도 기저에는 그런 생각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내가 재밌게 봤던 <프렌즈> 같은 시트콤을 만들고 싶다. <논스톱>은 제가 연출한 작품 중에 굉장히 잘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제가 갖고 있는 막연한 꿈을 이뤘다는 점에서 많이 애착이 가죠.
청춘 시트콤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우선 시트콤의 장르적인 특성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인기를 끈 나라가 사실 미국이거든요. 그런 미국적인 장르를 갖고 있는 시트콤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나라가 한국이에요. 일본이나 중국에는 인기 있는 시트콤이 없어요.
한국에서 시트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김병욱, 송창의 PD 때문이에요. 두 명의 걸출한 PD가 시트콤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한국 정서에 맞게 아주 적절하게 변주시켜 놓았죠. 저는 그 토대 위에서 <논스톱>을 연출한 것이었고요. <논스톱>을 비롯한 기타 청춘 시트콤이 잘 성장할 수 있었던 토대가 있었고, 그 중에서도 논스톱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캐릭터의 성공 때문이라고 생각해요.?단순히 ‘예쁘고 상큼한 친구들이 나온다’에서 끝이 아니라 양동근, 박경림, 장나라의 빈대, 짠돌이, 어리버리 캐릭터가 자리를 잡으면서 <논스톱>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니까요.
청춘시트콤이 갑자기 TV에서 사라진 이유는?
주 시청 층이 사라진 게 제일 큰 문제라고 봐요. 청춘 시트콤은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주인공이지만, 청춘 시트콤을 대학생들 보라고 만든 건 아니거든요. 2006년에서 2007년 정도가 되면, <논스톱>의 아성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레인보우 로망스>라고 비슷한 포맷의 청춘 시트콤을 연출했는데 2000년대 초의 논스톱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죠. 결과라 하면 시청률 하락을 말하는 겁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제일 큰 요인이 주 시청층이었던 10대 청소년들이 더이상 청춘 시트콤이 방송되는 시간대에 TV 앞에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어린 친구들이 논스톱을 보면서 대학이나 청춘에 대한 로망을키우기 보다는 그 시간에 학원에 있는 거죠. 씁쓸하기도 하지만, 시청자의 패턴이 바뀌는 건 PD로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인 거죠.
언제쯤 다시 청춘 시트콤을 볼 수 있을까요?
다음 세대의 문제 같아요 이제는. 앞서 말했지만, 우리가 만든 <논스톱>은 이제 없어요. 변화한 시청자들과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청춘 시트콤이 필요하다고 봐요. 내가 시청자라 하더라도 예전의 포맷을 갖고 있는 우리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다음 세대들이 만들 청춘 시트콤이 훨씬 기대돼요. 안 그런가요?
청춘, 어디까지 가 봤니
10대 시절의 우리는 청춘 시트콤에 열광했다. 파릇파릇 예쁜 청춘 남녀들이 나와서 크고 작은 소동을 벌이는 청춘 시트콤은 예뻤다. 학교와 시험에 갇혀 있는 너도 몇 년이 지나 교복을 벗고 나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확실히 우리는 그때 청춘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막연한 부러움과 동경이 있었을 뿐.
20대, 청춘이 된 우리 곁에 더 이상 청춘 시트콤은 없다. TV에서 청춘 시트콤이 없어졌으면, 현실의 우리 삶이라도 청춘 시트콤 같으면 좋으련만, 어쩐지 어렸을 적 봤던 청춘 시트콤과 현실의 간극만이 도드라져 보인다. 반짝이기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청춘의 8할은 기대와 불안, 뭣 하나 정해진 것 없는 우리의 20대가 실속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아프기만 한 청춘이라고 말한다. 지치지 말라고, 피하지도 말라고 독설과 힐링이 버무려진 청춘 팔이에도 묘한 위안을 느끼는 자신이 씁쓸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 시절이 청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의 곳곳에서 심각해지고, 치열해지며, 때론 힘겹다.?어른들은 우리에게 청춘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청춘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청춘에 속해 있을 때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이지 않아서, 어쩌면 청춘의 소중함은 이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시기가 지나가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청춘을 바라볼 수 있을까?
훗날, 청춘이라는 대열에서 벗어났을 때, 부디 우리의 청춘이 한편의 청춘 시트콤 같기를 바란다. 너무 심각하거나 아프지 않고, 지금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소동들도 그 시절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되어 있기를.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한 편의 청춘 시트콤으로 기억되길.
유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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