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탐사대] 노량지너가 사랑했던 노래방 선곡 BEST 5

다시는 노량진 코인노래방을 무시하지 마라

노량지너들도 노는 곳이 있다

“야, 거기는 뭐 놀 데 있냐?”라고 비웃듯이 되물어보게 되는 지역들이 있다. 다른 곳의 예를 일일이 열거하면 지역 차별이 될 것 같으니 노량진에 대해서만 얘기해 보자. 사실 노량진을 소개할 때 ‘놀 것 많은 곳’으로 설명하는 일은 거의 없다. 노량진이 주로 뭐가 많은 지역인지는 너무도 뻔하고, 그건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량진에 사는 사람, 적어도 노량진을 다녀 본 사람은 안다. 노량진에 놀 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 노량진에서 조용하게 붐을 일으키고 있는 오락시설이 있다는 것을. 그게 뭐냐고? 바로 코인노래방이다.

이해한다. 코웃음치고 싶겠지. 오죽 놀 게 없으면 노래방이 핫하다고 소개를 하냐고. 하지만 생각해 보자. ‘노래방’은 많지만, 1곡당 금액을 매겨 간단히 부르고 나올 수 있는 시설로서의 코인노래방은 적지 않았던가. 오락실에 흔히 딸려 있던 그런 형태가 아닌 코인노래방은 말이다. 그리고 노량진에서 가장 핫한 두 코인노래방을 지켜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코인노래방을 즐긴다. 평일 대낮부터, 진심으로.

A는 24시코인노래연습장(구 딩동댕노래방), B는 수노래연습장 코인노량진점

A는 24시코인노래연습장(구 딩동댕노래방), B는 수노래연습장 코인노량진점

 

노량진 초보를 위한 대표 코인노래방 2곳 완전분석

- 마커 A: 24시 코인노래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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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딩동댕노래방’이라는 상호명의 평범한 노래방을 코인노래방으로 재개업한 곳이다. 약간 가파른 계단을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카운터가 없는 노래방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남에게 괜히 눈치를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동전 교환기, 피난 안내도, 음료수 자판기와 주/야간 담당자 전화번호가 적힌 피난안내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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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줄 모르겠다고? 괜한 걱정이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당신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도도한 마음으로 침착하게 빈 방을 찾아 자리를 잡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바깥 시간을 잊은 놀자판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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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방을 완전분석!

  • 위치: 노량진로 152-1 (노량진역 3번 출구 도보 1분, 먹쉬돈나 빌딩) 지하 1층
  • 가격: 500원에 2곡
  • 영업시간: 24시간
  • 업체: 금영(KY)
  • 규모: 17개 룸
  • 특징: 완전 무인 운영 체제
  • 추천: 3~5인팟 친구들과 돌발적으로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노량진 초보를 위한 대표 코인노래방 2곳 완전분석

- 마커 B: 수노래연습장 코인노량진점

홍대거리에서 맨날 보던 그 “秀노래방”의 노량진 분점이다. 외관은 물론이고 내부 역시 홍대 느낌(!) 확 드는 과격한 색채의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이곳은 한 개 건물 안에, 작게는 1인용부터 크게는 3인용까지, 룸이 무려 43칸이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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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다음 사항을 자연스럽게 체크하며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모두 몇 명이 놀 것인가? (1인실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래 있을 것인가? (30분 이상 놀 거라면 1인당 1천원으로 무제한 드링크바를 이용하는 것이 이득이다.) 밤새워 놀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다들 신분증이 있는가? (24시 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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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항이 점검될 즈음 입구에 들어서게 되는데, 근무자(들)이 친절하게 인사하며 안내하는 룸으로 들어가 원하는 만큼 동전과 1천원권을 넣고 놀면 된다. 수노래방 특유의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간점'도 '2절 취소'도 없는 온전한 노래 연습을 하다가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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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방을 완전분석!

  • 위치: 노량진로16길 14 (노량진역 3번 출구 도보 3분, 맥도날드 뒤쪽 이디야 빌딩) 지하 1층
  • 가격: 5곡 1000원 또는 4곡 1000원
  • 영업시간: 16시간 (아침 9시 ~ 다음날 밤 1시)
  • 업체: 태진(TJ)
  • 규모: 43개 룸 (5곡 방 10개, 4곡 방 33개)
  • 특징: 드링크바, 특유의 인테리어
  • 추천: 맘 맞는 1~2명의 조합으로 내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

 

 

지금 노량지너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체로 코인노래방이라는 것은 쇼핑몰이나 오락실의 ‘부대시설’이다. ‘메인’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고정관념 속에서, 코인노래방은 노래 좀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몹시 나태하고 무성의한 분위기로 기억된다. 하지만 노량진의 코인노래방은 노량진에서 ‘메인’이다. 그래서 다른 곳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지나치는 룸마다, 출입문과 칸막이 너머로 ‘이 노래는 기필코 내가 부른다’ 하는 기세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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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위해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오전과 오후에 각 3시간씩 150여 부스를 돌며 체크해 봤다. 하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얼추 랭킹이 잡히기에 살짝살짝 집계해 봤다. 지금, 노량진 코인노래방에서, 노량지너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노량진 코인차트를 소개한다.

(※아무도 모를 법한 팝송이나 J-POP, 애니송도 간간이 있었지만, 하도 천차만별인지라 한두 곡으로 모이지 않아서 순위에 반영되지 않은 곡들이 있었습니다.)

 

5위 - 술 한잔 해요 (지아)

유난히 노래방에서 자주 듣게 되는 노래 중 하나인 이 곡은, 보통은 노랫말 그대로 먼저 술 한 잔 한 사람이 마이크 붙잡고 주정하듯 부르는 법인데, 노량지너들은 이 노래를 대낮부터 맨정신으로 부른다. 어서 이루고 싶은 것을 모두 이루고 평화로운 마음에 술 한잔 하시길 바란다…

 

4위 - 걱정말아요 그대 (전인권)

2절 생략이라든가 후렴 두 번 후 취소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다.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로 시작하는 그 2절을 노량진 생활에 지친 이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마지막 크레딧이 다 떨어질 때까지 노량지너들은 “새로운 꿈을 꾸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3위 - 응급실 (izi)

“이대로 나를 두고 가지 마 나를 버리지 마”라는 가사를 3번 연속으로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찐한 열창 이후에 나오는 사람들의 눈시울이 어쩐지 붉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라고 믿고 싶다. 새로운 사람이 어서 당신에게 찾아오기를.

 

2위 - 양화대교 (Zion. T)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노량진 코인차트를 지배하는 노래는 그렇게 템포가 빠르지 않다. 대신 그들에겐 ‘양화대교’ 같은 소울뮤직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우리 집엔 매일 나 홀로 있었지”로 시작해서 “엄마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로 조용하게 끝나는, 그런 노래 말이다.

 

1위 - 소주 한 잔 (임창정)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닌 곳. 무수한 사람들과 같이 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외로운 곳. 이곳에서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라고 큰 소리로 묻고 싶어질 때, 그리고 상대방 역시 내게 그렇게 물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지만 차마 그 말을 뱉지 못할 때. 다만 우리는 노래부른다. 술이 한잔 생각나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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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으로 노량지너들의 영혼을 달랠 수 있는 곳

골목길 건너편에 있는 대형 고시학원에서 이따금 커플이, 두세 명의 내 또래들이, 또는 누가 봐도 혼자인 사람들이 부지런히 지하계단으로 내려간다. 그랬다가, 다들 대략 20~30분쯤 지나면, 나와서,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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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보아도 노래방에 ‘놀러’ 가는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노래방이란 건 특유의 정해진 시간대에, 모두들 들떠서, 느긋하게 들어가 줄기차게 50~100분쯤 뭔가를 불러젖히다가 제풀에 지쳐, 잠긴 목을 붙잡고, 녹초가 되어 나오는 곳 아닌가? 그런데 노량지너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계획한 여흥만 딱 즐기고 서둘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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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일하는’ 사람들이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모습을 닮았다. 모든 게 차질없이 계속 이어져야 하는 삶의 한복판에서, 밀어닥치는 허기를 참고 있을 수는 없기에, 저렴하게 그 배고픔만 해결하고 오자는 느낌으로, 점심을 먹듯, 그들의 영혼은 그렇게 코인노래방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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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두세 곡을 불렀겠지. 조금은 뻔한, 아무도 관심 없을, 그러나 몹시도 자기 같은 노래로 꽉꽉 채워 부르고 나왔을 것이다. 쓸쓸함, 외로움 등의 식상한 감정을 노래 가사에 실어 흘려보내고, 그들은 다시 계속되어야 하는 노량지너의 삶으로 들어갈 것이다. 바로 거기에 있었다. 500원에 노래 두 곡씩을 부를 수 있도록 가격을 매긴 코인노래방이, 유난히 노량진이라는 청춘의 공간에서 돋보였던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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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진

김어진

Twenties Timeline 피처 디렉터. 상식이 모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