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 얼차려로 ‘단합’이 되었던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며칠 전 타임라인에서 <중고등학교 군대식 수련회를 없애 주세요>라는 짧은 글을 읽었다.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군대식 기합을 주지 말라는 해당 글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아래의 글은 그에 개인적인 지지를 표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여름 캠프(summer camp)란 여름에 관리감독 하에 아동 청소년 대상으로 진행되는 활동들을 말한다” ― 위키백과 ⓒ Becket Chimney Corners YMCA

“여름 캠프(summer camp)란 여름에 관리감독 하에 아동 청소년 대상으로 진행되는 활동들을 말한다” ― 위키백과 ⓒ Becket Chimney Corners YMCA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다니는 내내 손톱만큼도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 매년 떠나는 ‘학생 수련회’에서 으레 받아야 했던 이유없는 얼차려였다. 어른들이 무서워 시키는 대로 하긴 했지만, 큰 잘못을 했을 때나 받는 체벌을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내가, 심지어 적지 않은 돈까지 내고 가서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행사'는 늘 교관들의 일장연설로 시작됐다. 대부분은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려라”느니,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을 키우라느니 하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고는 몸이 아픈 학생들을 가려내 벽 한 쪽에 세워두었는데, 그 아이들에게는 “나만 편하다고 좋아하지 말고,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라”는 훈계가 빠지지 않고 따라붙었다.

진행되는 과정도 비슷했다. 팔벌려뛰기 20회를 시킨 다음 끝번호를 소리내어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횟수를 10회씩 늘려가는 식이었다. 참고로 나는 왜 아직도 팔벌려뛰기를 하면서 끝번호를 붙이는 게 왜 공동체정신을 해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게 익숙해질 때가 되면 이제 새우튀김(등을 대고 누워 팔다리를 드는 것) 이나 팔굽혀펴기 등의 체벌이 추가되었다.

“신병 교육 훈련은 흔히 부트 캠프(boot camp)라고 불리며, 군사적 목적의 자질 강화를 위해 교관들이 참가자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 ― 위키백과 ⓒ New York Sun

“신병 교육 훈련은 흔히 부트 캠프(boot camp)라고 불리며, 군사적 목적의 자질 강화를 위해 교관들이 참가자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 ― 위키백과 ⓒ New York Sun

모두가 입과 동작을 맞추는 게 관건이었는데 삼사백 명이 함께 하다 보니 한두 번으로 끝날 리가 없었다. 거의 매번 틀리는 사람이 나오곤 했다. 재밌는 부분은 여기서 시작된다. 소위 반에서 잘 나가는 아이들이 이걸 '실수'했을 경우는 대개 주변 친구들의 장난 섞인 타박과 웃음으로 가볍게 넘겨졌다. 문제는 힘없고 무시당하는 학생들이 실수를 했을 경우였다. 그 아이들은 구호 한 번을 더 내뱉었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곤 했다.

비난하는 시선과 수군거림에 주눅이 든 아이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요란한 ‘공동체 정신 함양 의식’이 끝났을 즈음 그 아이는 '그거 하나 똑바로 못하는 ○신'이 됐다. 물론 잘 나가는 아이의 같은 실수는 아무도 거론하지 않았다. 그렇게 듣기 좋은 명분과는 반대로 이 얼차려는 언제나 누구 하나를 바보로 만들며 끝났다.

People pointing at businessman, close-up (blue tone, grainy)

"공동체 정신"

수련회 전후로 반 아이들 사이의 골이 깊어지고 왕따가 생겨나는 건 대개 이런 부분에서 기인했다. 얼차려가 끝나고 모두가 같은 방으로 돌아온 다음 누구 하나를 바보로 만들기 시작할 때면,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아이에 대한 경멸과 동정과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기묘한 안도감 같은 것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그 긴장마저 익숙해지고 나면 모두의 적이 된 아이는 모든 학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조롱하고 무시할 수 있는 존재로 전락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매일매일 그 아이의 미련한 행동을 비웃으며 쉽게 한덩어리가 됐다.

나는 그 숨막히는 공기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주목받는 걸 끔찍이 싫어했고 실제로 이유없는 따돌림을 당해본 적도 있었던 나는 그런 수련회에서 입만 벙긋거렸지 단 한 번도 구호를 소리내어 외친 적이 없었다.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다시 따돌림 당하던 그 때로 돌아갈까봐. 다른 아이가 표적이 되었을 때 그걸 막지 않았던 것도, 아니 막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내 스스로가 그 침묵하는 집단에 아무 거부감 없이 섞여 들어갔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누군가 마음먹고 끊어내지 않는다면 그 ‘그런 것’들의 순환은 하염없이 계속될 거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야 수련회의 악몽을 꾸역꾸역 털어놓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사진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지옥훈련 어린이 해병대"

사진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지옥훈련 어린이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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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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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에디터. 잘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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