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거리는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리고 청담역 11번 출구 앞에서 한 모퉁이에 다 헤어진 옷을 입은 성냥팔이 소녀가 서 있었습니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성냥 바구니를 팔에 낀 소녀는 매서운 바람에 몸을 떨었습니다.
“성냥 좀 사 주세요.”
소녀는 몸을 웅크리며 하염없이 걷고 걸어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까지 걸어왔습니다. 소녀는 성냥을 팔기 위해 백화점에서 나오는 부녀에게 다가 갔습니다. 하지만 부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몇 겹이나 되는 쇼핑백으로 소녀를 치고는 또각또각 걸어갔습니다. 그 바람에 소녀는 길바닥에 넘어졌고 성냥을 팔아 번 동전 몇 개가 주머니에서 나와 떼굴떼굴 굴러갔습니다.
동전은 벤치에 앉아 통화를 하는 아저씨의 발 앞까지 굴러갔습니다.
양복을 입고 깔끔한 안경을 낀 아저씨는 작은 소리로,
“투자금 100억이 유치된다니까..”
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의 각도를 틀어 동전을 가렸습니다.
“그래, 저녁에 술 한잔하지 큼큼.”
헛기침을 몇 번 하던 아저씨는 슬쩍 동전을 줍더니 인파 속으로 빠르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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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가 더 얇아진 소녀는 몸을 한껏 움츠리며 길모퉁이에 계속 서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바람은 거세지고 눈송이는 더 커졌습니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추위 때문에 검붉어진 손으로 성냥 다발을 내밀었지만, 그 누구도 소녀의 성냥을 사 주지 않았습니다.
“어떡하지? 성냥을 다 팔지 못했는데.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한테 혼날 거야.”
춥고 배가 고팠지만 소녀는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두 달 전, 웬일인지 고기를 좀 사오겠다고 나가서는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았고 다정했던 할머니는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집에는 알코올중독자가 된 아버지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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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도 이곳저곳을 장식한 빨간딱지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건물이 낡아 춥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소녀는 나머지 성냥을 다 팔고 아버지가 잠들 때쯤 집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녀는 몸을 움츠리며 다시 거리를 걸었습니다.
아파트 층층이 환한 불빛이 새어 나왔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났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가족들은 특별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소녀는 발돋움을 하여 베란다 너머로 웅장한 집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집 안에서는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여자아이가 인형 같은 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고 있었고 부모님의 웃음소리가 집밖에 있는 소녀에게까지 들렸습니다. 이내 소녀의 눈과 여자아이의 눈이 마주쳤고 푸른색 커튼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소녀의 시야를 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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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드러나는 바지와 보풀이 까슬까슬하게 일어난 가디건을 입은 소녀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추위에 꽁꽁 언 손과 발을 비비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성냥 사세요, 성냥 ...... 사세요.”
소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아무도 소녀를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소녀의 몸은 점점 차가워졌습니다. 소녀는 아파트 안의 굴다리구석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너무 추워서 안 되겠어. 성냥불로라도 손을 녹여야지.”
소녀는 잘 펴지지도 않는 언 손으로 성냥 한 개를 그었습니다. 치직 소리와 함께?성냥은 밝은 불꽃을 내며 타올랐습니다. 성냥 불꽃은 따뜻하고 환한 빛을 냈습니다. 소녀는 불꽃 속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한 달만 더 일하면 정규직으로 진급할 수 있다는 희망에 아버지는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웃으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아버지를 무작정 내보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저렇게 웃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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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거칠어진 아버지의 손을 잡으려고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아버지는 소녀에게 등을 보이며 회사 밖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갔습니다. 소녀는 아버지를 부르려고 했지만 이내 불꽃은 꺼져 버렸습니다. 소녀는 까맣게 탄 성냥 꼬투리를 보았습니다.
“그래, 한 개 더 켜 보자.”
소녀는 성냥개비를 꺼내어 성냥갑에 그었습니다. 성냥개비는 다시 환한 불꽃을 내며 타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소녀가 이전에 살았던 집이 나타났습니다. 부엌에는 주인아주머니가 밀린 월세를 받으러 찾아올까봐 마음 졸이는 엄마가 아닌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며 미소 짓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실직이후 내내 불안과 초초한 눈빛을 띠었던 눈이 반달모양으로 접힌 모습에 소녀는 기뻤습니다.
때마침 띵동-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소녀는 현관으로 아빠-하며 달려가 활짝 문을 열었는데, 아니, 그 앞에는 웬 무서운 아저씨들이 검은 정장을 입고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너무 놀라 재빠르게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정장을 입은 남자들은 이미 집으로 들어와 방문과 창문 틀을 틀어막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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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겁에 질려 엄마에게 가려고 했으나 부엌너머로 들리는 비명소리와 함께 불꽃은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녀를 보며 미소 짓던 엄마는 사라져 버리고 그 앞에는 차갑고 딱딱한 벽만이 보였습니다.
그 때, 생명을 잃어가는 성냥불의 연기위로 별 하나가 긴 꼬리를 그리며 떨어졌습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은 한 영혼이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란다.’
소녀는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누가 죽어가고 있나 보구나.?소녀는 중얼거리며 다시 성냥불을 켰습니다.?그러자 소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할머니가 나타났습니다. 할머니는 살아 계실 때처럼 소녀를 보고 웃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가시면 안 돼요. 잘리지 않았던 아빠처럼, 월세걱정 없이 환하게 웃던 엄마처럼, 내가 꿈꿨던 미래처럼 사라져 버리실 거죠?”
소녀는 성냥불이 꺼질까 봐 남아 있는 성냥 다발에 모두 불을 붙였습니다.?치지직.?성냥 다발에 불이 붙자 불꽃은 더 크고 환하게 타올랐습니다. 할머니는 소녀를 향해 팔을 벌렸습니다. 소녀는 기쁜 마음으로 뛰어가 할머니 품에 안겼습니다. 할머니는 소녀를 품에 안고 빛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파트 모퉁이에 성냥팔이 소녀가 벽에 기댄 채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타 버린 성냥다발을 손에 쥔 채 소녀는 하늘나라로 떠나 버린 것이었지요.
“어휴, 애들이 보면 어쩌려고..”
출근길에 사람들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는 소녀를 보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혀를 끌끌 차며 걸음을 재촉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소녀는 따뜻한 세상을 상상으로만 그려보다 무관심속에서 할머니 곁으로 떠났습니다.
'80대女 미라', 한남동 아파트 가보니…내부서 '쉬쉬'
"부촌이라 집값에 민감"…동네 주민 대부분 몰라
우리가 아는 명작들을 이 시대에 다시 꺼내봅니다.
트웬티스 타임라인, '우리시대 명작열전' 시리즈
① 취인훈, <대강당>
"학생은 어느 쪽으로 가겠소?"
취준생은 움직이지 않았다.
http://20timeline.com/1379
② 김요정, <동백자보>
오늘도 또 우리 자보가 막 찢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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