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업계가 싫은 게 아니라 ‘기본’을 바라는 건데

여기는 ‘원래 그렇다’라는 말만 내게 돌려주네요.

내 악기는 내가 옮기는거라고 하지만

스태프 3년
자원봉사자 및 서포터즈 4년
관련 동아리 5년

내 이력서에는 늘상 이런 것들이 적힌다. 이게 뭔지 사람들이 가끔 물어보면 ‘공연 쪽에서 일하고 있다’고 시크하게 던진다. 그러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서는 ‘재밌겠다, 멋지다’ 혹은 ‘낭만적이다’라는 말이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공연으로 일 한다고 그것이 그렇게 아름답거나 예술적이지만은 않다. 그저 좋아서, 하고 싶어서 지나온 날들이 나의 유일한 셀링포인트가 된 지금, 공연 업계에서 돈을 벌며 일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밴드 동아리를 하던 시절, 인원이 많아 연습 때마다 동아리방에서 큰 연습실로 옮겨 연습하곤 했다. 그때 선배가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자기 악기는 자기가 옮기는 거야. 드러머인 내게 그 말은 최소 북 네 개와 심벌 두 개를 두 층 이상 오르내리며 옮겨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이 바닥에 있는 한 어디 가서 무엇이 되든 그러고 있으리라는 것을.

드러머의 고충

극한직업_드러머편.jpg

시간이 흘러, 학교 밖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첫 무대는 스탭이 없는 정말 작은 무대였다. 거기서도 내 악기를 내가 옮기는 건 당연했다. 물도 사 먹고 스탠바이도 알아서 하며 공연을 올렸다. 다음 무대는 좀더 커졌지만,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건 여전했다. 스탭은 있지만 돈은 없었던 그 다음 무대에서도 나는 맨바닥을 쓸고 콘솔을 옮기며 스탭으로, 공연자로 동시에 뛰었다.

이쯤 되니, 번듯한 조직에서 일하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력서를 꾸렸고, 공연계 인턴이 되었다.

 

첫 ‘사무실’의 기억은 좀 서늘했습니다

주 5일 8시간 근무
점심시간 1시간
월 120만원
기타 나머지 사항은 근로기준법에 기준1)

누군가 내 일에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이 그저 감사하게만 여겨졌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이 생겼다. 조금 큰 조직에서 기대했던 대로, 공연자는 공연자, 스탭은 스탭 일을 하면 됐다. 대신 그 모든 일을 합친 만큼의 동일한 일이 존재했다. 더 틀에 잡힌, 더 많은, 더 긴 근무가 당연하다는 듯 시작됐다.

받는 돈은 적었지만, 그래도 공연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기쁜 마음에 기꺼이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 이윽고 사무실에 흐르는 공기는 매우 낯선 종류의 것이었다. 오늘 일을 다 마쳤어도 칼퇴는 왠지 눈치가 보이는 짓이며, 추가 수당이고 뭐고 바쁘다는 이유로 밤이고 주말이고 없이 일하고, 불가피한 일 때문이었어도 하루 결근에 얼굴을 못 드는 순간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정시퇴근_하려다가_상사와_눈이_마추쳤다.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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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업무 강도, 말도 안 되는 임금이 이곳에선 당연했다. 안전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세계 속에서 심지어 나는 인턴이라는 더욱 불안정한 위치에서 시작하고 있는 거였다. 사실 가장 이상한 건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무실의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토록 돈이 없고 이토록 사람이 부족한데, 그래서 누구 한 명 쓰러지기라도 하면 당장 타격을 입게 될 텐데, 이런 기묘한 조직에 대해 왜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지? 작동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전까지 그렇게 해온,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 극장 문이 닫기 직전에야 겨우 퇴근하는 선배의 무용담과 계약서는 구경도 못 해봤다는 후배 인턴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었다. “원래” 이 계통 일은 힘들기 마련이란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결국” 죽기 직전까지 가는 것이란다. 시간이 부족하다, 일이 많다는 건 “어쨌든” 핑계와 변명일 뿐이란다.

다운로드 (3)

당연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원래 당연히 그런 것이 어디 있는가. 고등학교 은사님께 들었던 그 한 마디가 이제야 가슴을 쳤다. 공연도 사무실도 모두 이 자리의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원래 그런 것, 당연한 것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솔직히 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울타리 정도만 당연하게 지켜 주면, 나머지는 이 일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 어련히 안 하고 배길까? 하지만 백보 양보해서 자기가 스스로 자신을 이 일에 갈아 넣는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자기를 계속 갈아 넣을 조건은 마련해 줘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만 너무 많은 당연한 것들 속에서 이 자명한 진리는 매일같이 묻혀 버린다. 시간, 돈, 체력을 있는 대로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불온한’ 생각은 사치 내지 꿈결 같은 소리에 가깝다. 그러니 공연계에 왜 노조가 없는지 묻지 마시라. 머리띠 두르고 노동 쟁의 같은 것을 하기엔, 우리 모두 이미 너무 많은 ‘나’를 헌납하고 있으므로.

메탈리카 무대 드럼 설치중인 모습

 

그것은 ‘관객모독’이었고 업계의 금기였습니다

혹자는 되물어볼지도 모르겠다. 풍토 전체를 다 바꾸라는 게 아니라, 공연 하나하나를 인지상정에 맞게 잘 운영해 나가다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 말은 많지만, 이렇게 답해 주고 싶다. ‘사무실’의 무지막지한 프로세스에 어설프게 반기를 드는 것은, 자칫 상연(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관객을 저버리려는 죄악으로, 그리고 자신과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일 수 있다고 말이다.

공연을 하나의 상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상품은 다른 어떤 상품들보다 섬세하다2). 하나의 공연 뒤에는, 기획 단계부터 자본·인력·시간과 장소 등 공연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요소들을 끊임없이 조율하고 집행해가며 마지막 순간까지 전력을 다해 실패를 막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현장성’의 예술인 공연에는 너무도 많은 변수가 있기에, 한 번 생산 시기가 정해지고 나면 늦추거나 취소하기가 정말 어렵고, 같은 상품을 두 번 다시 출시할 수가 없다.

누군가도 노래하지 않던가.

누군가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공연의 이런 의미를 매번 온몸으로 체감해 온 이 계통의 사람들이, 마음 같아서는 콱 어떻게 해 버리고 싶다가도, 결국은 다시 ‘관객’을 말하는 이유다. 특히 공연예술의 입지가 너무도 불안정한 한국이라는 조건에서, 한 번이라도 공연과 사무실이 휘청거릴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생존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그 모든 책임과 비난을 견딜 자신이 있지 않고서는 감히 비뚤어질 수가 없다. 사실은 최소한의 올바름을 원하는 것뿐일지라도.

그럼 대체 고통뿐인 이 업계는 뭘로 유지되는 거냐고? 도제식 생산 체계를 택하고 있는 공연계가 주는 ‘무형의 것’이 있다.3) 각 공연마다 필요한 요령과 비즈니스는 동일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해 온 사수에게서만 전달 받을 수 있고, 특정 시기 특정 사무실에서 배우는 것들은 두 번 다시 재현해서 배울 수가 없다. 물론 그 무형의 자산들만으로 모든 열악한 근로 조건을 퉁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사무실’을 들여다보면 일견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없지 않다.

라디오스타 정준일 유희열 조언 일화

조언해주는 선배가 있고 없고가 확실히 다르다 ⓒMBC

그렇게 상당한 업무 강도로 농축된 시간을 보내며 쌓이는 저마다의 경험치는 그 이후에 그가 어디서 어떻게 쓰일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된다. 한낱 인턴에게도 ‘이전에 어디서 일했는지’를 제일 먼저 물어볼 정도니까. 이런 업력과 경험, 그리고 ‘어디서 누구랑 일했는지’의 관계가 잘 쌓이면 협업도 잘 되고 일도 더 잘 배울 수 있다. 지위나 벌이가 더 좋아지기도 하겠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역 역시 성립한다. 어떤 식으로든 불협화음이 생길 경우, 작업장을 떠나야 하는 건 장인이 아니라 견습공이다. 그리고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공연계의 인적 네트워크를 감안하면, 한 번 그런 식으로 떠나게 된 인턴은 다른 사무실에서도 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리하여, 기본적인 근로 조건이 받쳐 주지 않는 이 업계에서 내 몫 찾겠다고 삐딱선을 타는 것은, 대가가 너무나도 큰 모험이 되고 있다.4)

하기 싫은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니까 하는 얘기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 업무 강도와 불합리함을 견딜 능력치면 다른 일자리를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이렇게밖에 답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 이 계통의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맹목적이고 순수하다. ‘정말 이 일이 좋아서’, ‘평생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앞뒤 안 가리고 이 계통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한 해 수백 명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 달라. 얼마나 대단한가. 일이 좋다는데.

그러나, 인력 충원의 기회가 극히 적은 현 공연 산업의 현실에 이들의 순수한 동기와 의지가 맞물리면서, 상황은 그저 악화되기만 한다. 예컨대 경험을 중요시하는 공연계 특성상 이 바닥은 모두가 공공연하게 ‘경력 있는 사람’을 원한다. 멋모르는 신출내기를 찾는 곳은 없으니, 억울한 상황에 처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틈이 생기는 대로 일단 뛰어들어 발을 붙이고 그 경력이라는 것을 만들려고 분투하는 것만이 이 계통 신입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되고 있다.

원래 그렇다고 하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원래 그렇다고 하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리하여 그들은 오늘 바로 지금 이 시간도 어이없는 근로 조건과 영세한 ‘사무실’ 속에서 생고생을 감수하고 있다. 애초에 공연을 전업으로 해서 살아갈 수 없는 척박한 토양의 어느 틈바구니에서, 물정 모르는 뜨내기들은 아무렇게나 쓰이고 버려진다. 직원으로 자리를 잡는다 한들, 그건 또 다른 악조건을 버텨내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자신이 원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서 한다’라는 그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얼마나 다른 입장들을 파묻어 버렸던가.

지금 내 인턴 자리를 거쳐 간 사람들과 앞으로 지나갈 사람들, 이 자리를 원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는 내가, 그리고 이 계통의 우리 모두가 예술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격조 높은 고매한 삶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예술을 다루고 예술을 매개하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한동안은 안 될 듯하다. 그들은 이쪽 일을 시작도 하기 전부터 너무나 많은 당연한 것들을 몸에 새기며 살기 때문에.

해체중인 야외 공연무대

 

각주

1) 현재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에서는 1일 근로시간은 8시간, 1주 근로시간은 4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휴게시간 제외), 합의 하에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으나 역시 1주 12시간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연장근로 및 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수당은 통상 임금의 1.5배 이상 지급되어야 하며, 1년 미만 근로자 및 80퍼센트 미만 출근 근로자에 대해 1개월 개근시 1일의 유급휴가가 주어져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하는 경우 15일의 유급휴가가 주어져야 한다.) 법대로만 하자면, 이 법규는 공연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2) 상품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하고 싶다. 나는 공연이라는 방식을 사랑하며 예술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3) 물론 근로조건과 무형의 것이 서로 교환이나 대체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둘은 전혀 다른 범주의 것이며 사실상 이 말은 또 하나의 핑계일 뿐이다.

4) 노동부에 진정을 넣으면 지난 체납 임금, 야근 수당 다 받을 수 있긴 하다(심지어 소급해서). 단지 실행에 옮기는 순간 이 계통에는 발을 못 붙이게 될 것이 너무나도 자명할 뿐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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