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마을이 헬조선에 와서 고생이 많다…
혹시 “헬뭇잎”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본의 인기 소년만화 ‘나루토’ 속에 등장하는 ‘나뭇잎 마을’의 별칭으로, 그 주민들의 행태가 매우 졸렬하고 막장스러운 것이 지옥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상한 일이다. 꿈과 열정으로 점철된 소년만화 안에서 일반적으로 주인공의 출신 마을은 ‘우리편 보정’을 받고 들어가는 법인데. 겉으로 보면, 우리의 주인공 나루토가 살고 있는 나뭇잎 마을 역시 평화를 중시하고 동료 간의 정이 넘치는 곳이긴 한데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이 마을의 뒤편에는 사람들의 상습적 집단 따돌림, 계급의 고착화, 그 외 온갖 비윤리적 행위가 일상화된 지옥이라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 아십니까? 괜히?‘헬뭇잎’이 아닌 것이다. 음, 그런데 이 광경이 어째 낯설지가 않다. 일상적인 차별이며 괴롭힘, 자기 위치와 상대의 강함에 따른 우디르급 태세전환, 그리고 가문과 혈통 앞에서 무색해진 노오력 등 이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 ‘헬조선’에서 숱하게 보아 온 것들이지 않나 싶다.
이쯤 되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놀랄 만큼 닮아 있는 이 두 세계, 과연 진짜 ‘헬’은 어느 쪽일까?
(※편집자주: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기사 내 모든 나루토 관련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튜디오 피에로, 슈에이샤, 키시모토 마사시에 있습니다.)
1차전: 어느 쪽 지도자의 혼이 더 비정상인가?
나뭇잎 마을의 수장은 ‘호카게’라 불린다. 본편 최종화 기준 나뭇잎 마을의 수장은 마을을 세운 초대 호카게의 손녀이자, 전설의 3닌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츠나데라는 닌자다.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던 통치자의 핏줄, 첫 여성 지도자, 자신의 특기 분야를 딴 별명(의료 스페셜리스트/선거의 여왕) 등 일견 상당한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헬뭇잎의 5대 호카게 츠나데는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시는 어느 분과 달리, 언제나 스스로의 의지로 최전선에 서서 모두를 지휘한다는 점이다. 소년만화가 보여줄 만한 바람직한 지도자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분을 어느 캐릭터와 비교해도 캐릭터 쪽에게 미안해지는 지경이긴 하지만.
판사님 저는 그분의 이름을 방금 까먹었습니다.
헬뭇잎 패 : 헬조선 승
2차전: 어느 쪽 수저의 힘이 더 막강한가?
헬뭇잎이든 헬조선이든, 기본적으로 잘 물고 태어난 수저 하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헬뭇잎에서도 최고의 닌자가 되기 위해서는 잘 태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각 닌자들은 가문과 혈통에 따라 타고나는 고유의 능력이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인간 닌자만화가 괴수전대물 내지 대마법사 배틀물로 둔갑하는 위엄을 보여줄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능력을 타고난다 한들 헬뭇잎의 닌자들은 재능에 더해 반드시 수행이라는 노오오오오오력의 과정을 통해서만 최고의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 헬조선에서는 얼마 전 사례로 증명된 바와 같이, 잘 태어나기만 하면 ‘달그닥, 훅’만 해도 교수님의 칭찬이 절로 튀어나오고, 정말 운이 좋다면 최고 권력까지도 공짜로 앉아 누릴 수 있다. 헬뭇잎의 수저들은 아직 멀었다.
헬뭇잎 패 : 헬조선 승
3차전: 어느 쪽 집단 괴롭힘이 더 악질인가?
‘헬뭇잎’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 나뭇잎 마을의 주민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를 괴롭히고 괴롭힘당한다. 뚱뚱하다느니 이마가 넓다느니 하는 외모뿐이 아니다. 이방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괴롭히기도 하고, 인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의 어린 아들 앞에서 창피를 주기도 한다. 심지어는 너무 잘나도 표적이 된다. 마을의 영웅 대접을 받던 한 닌자는 동료를 구하느라 임무를 실패했다는 이유로, 마을 전체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기도 했으니.
이것만큼은 헬조선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여기 헬조선의 현실에서도 손쉽게 볼 수 있는 일들이니까. 외모를 이유로 따돌리고, 같은 출신 사람들끼리 텃세를 부리고, 어딘가 부족하고 만만해 보이면 쉽게 먹잇감 자리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심지어 이 나라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혼자 잘 나도 탈 나는 것은 이 반도 땅의 오래된 풍습이었던 것이다. 둘 다 막상막하의 막장이다 보니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 무승부 처리.
헬뭇잎 무 : 헬조선 무
4차전: 혐오가 어느 쪽으로 향하는가?
헬뭇잎을 비롯한 닌자 세계에는 ‘인주력’이라는 이들에 대한 강한 혐오가 존재한다. 마을 내에서 동료는커녕 인간으로서의 대접조차 받지 못한 채 평생을 극심한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사람들의 냉대와 무시는, 보는 이가 힘겨울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혐오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인주력들은 몸 속에 ‘미수’라는 괴물이 봉인된, 인간인 동시에 언제 폭주할 지 모르는 핵과 같은 전략무기로서 실제로 마을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던 역사가 있다. 그들을 무서워하며 꺼리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라 하겠다.
우리에게 익숙한 어느 나라 역시 닌자 세계만큼이나 몇몇 특정 집단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무시, 차별 등 혐오 사상이 공기처럼 팽배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헬조선의 혐오는 여성, 장애인, 저소득층과 같이 인주력은커녕 이렇달 힘도 없고 만만하기만 한 이들을 아무 부담 없이 노린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무기를 끝없이 괴롭히는?헬뭇잎 마을 사람들은 경외로울 정도로 간덩이가 부은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만 선택적 혐오를 뿜어내는 비열함으로?헬조선의 1승 추가.
헬뭇잎 패 : 헬조선 승
5차전: 탈출이 불가능한가?
작중에서 닌자는 생사 여부와 상관없이 존재 자체가 일종의 군사기밀 정보로 취급된다. 따라서 마을을 벗어나려는 행위 역시 ‘탈주’라 하여 중대 군사범죄 행위로 다루어지고 있다. 당신이 닌자고, 마을을 무단으로 벗어나려 하면 곧장 추격조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이 헬뭇잎의 닌자라면, 살아서 마을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이 때문에 과거 몇 차례 헬뭇잎 자체를 타도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미개한 주인공의 궤변과 폭력 앞에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반면 현실의 반도는 아무리 헬이라고는 해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거나 서초동 큰 빌딩에서 편지를 보내 출국 금지령이 내려져 있지 않은 한, 그리고 돈과 충분한 능력만 있다면 이 땅을 벗어나서 살 수가 있다. 물론 어렵지만 말이다. 그래도 현실에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열려 있다는 점에서, 헬뭇잎이 현실보다 더 헬 같이 보이는 유일한 케이스. 무려 대통령께서도 추천한 적 있는 방법인 만큼, 모두에게 강하게 추천한다.
헬뭇잎 승 : 헬조선 패
오죽하면 지옥이 떠오르고 만화가 떠오르겠습니까요
이 기사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리기 직전까지 내게 ‘나루토’란 그저 약간 유치하고 허무맹랑한 소년만화였다. 닌자니 인법이니 호카게니 그런 것 현실에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 ‘이거 완전 헬뭇잎 마을 아니냐’ 같은 농담들을 스쳐지나가려다가 문득 그게 눈에 밟혀 한 번 더 돌아보니, 비교 참조해볼 만한 부분이 이렇게나 많아서 이제서야 당황스러운 감이 있다. 아, 우리가 이렇게나 ?유치하고 허무맹랑한 세상에 살고 있었나.
아직도 어떤 이들은 종종 얘기한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몸담고 사는 곳을 지옥이니 뭐니 하면 못쓴다고. 아무튼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오력’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이곳을 만화 속 마을에마저 빗댄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헬조선을 말하는 이들 중 아무도 ‘유황불이 꺼지지 않고 구더기도 썩지 않는’ 불지옥을 곧이곧대로 뜻하는 이는 없다고 말이다. 다만 이곳을 돌아볼 때 딱 떠오르는 그림들이 온통, 그런, 답 없고 살벌한 이미지뿐이라는 점이 요점인 거라고.
윤형기
윤형기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
- 썸을 판단하는 나만의 근거 - 2017년 4월 18일
- “게임이 망할 것 같으니, 순순히 협조하세요.” - 2017년 1월 23일
- 최악의 헬을 가린다! 헬뭇잎마을 VS 헬조선 - 2016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