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이 왜 이렇게 낯설지가 않을까
내 친구가 ‘철거민’이 되게 생겼다.
장난이 아니다. 비록 ‘파이널 판타지 14’ 속 캐릭터의 것이긴 하지만, 집이 없어질 판이 된 것이다.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욕을 먹건 말건 매일같이 주변 친구들의 단톡방에 “갓겜 파판하세요” 광고를 띄우고 다녔던 ‘파스토랑스’였는데, 하루아침에 파판 안티가 되어 막말을 막 쏟아내는 것이다.
너무 궁금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파판 한국 유저가 적잖아. 그니까 운영진 입장은 뭐냐면 이젠 6개의 서버를 총 3개로 통합을 해야 된다, 안 그러면 한국 서비스가 유지가 안 된다, 그래 그것까진 이해를 했어.
근데 뭐래는지 알아? 그럴라면 ‘촌섭’ 유저들 하우징을 다 삭제해야 된대. 부품 아이템 다 보상해 주고 어떻게 또 할 테니까 양해해 달래. 아니 이게 말이 돼? 누가 지금 아이템 달래? 내가 이럴려고 허구헌날 출석 찍고 집 꾸몄냐 시발 진짜?
하우징이라는 게 뭐냐면, 이 친구가 여태껏 키워 온 캐릭터가 거주하며 여러 콘텐츠를 즐기는 일종의 개인주택이다. ‘파판’을 하는 사람들 중엔 이것 때문에 못 떠나는 사람이 꽤 될 정도이다. 그런 사적 영역이 이런저런 합리적인 최선의 보상책과 함께 영영 없어질 예정이라는 것이다. 친구는 한참이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거기에 쏟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추억이 담겨있는지 열변을 토했다.
밤이고 낮이고 매달려서 존나 키워 놓은 캐릭터를 갑자기 삭제한대. 아이템은 돌려줄 테니까 다시 처음부터 키우래. 할 수 있냐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연락하던 휴대폰을 들고 한참 동안 답장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마침 뉴스 앱이 새 소식을 하나 띄웠다. 13차 주말 촛불집회, 용산참사 8주기 추모.
'퇴거'는 그렇게 조용히
2009년,?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가 딱딱 부딪히도록 추웠던 어느 1월의?용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범하게 가게를 차려 경영하며 살아가던 이들은 몇 푼의 보상금을 약속받은 채 쫓겨나야 했고, 그 중 이렇게 나갈 수는 없다며 남아 매달리던 이들이 있었다. 망루처럼 쓰이던 빌딩 꼭대기에 컨테이너 박스가 크레인으로 투입되었고 그 옥상에는 불이 났다. 이날 결국 민간인 5명과 경찰 1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럭저럭 자기 삶의 터전을 일구고 가꾸던 ‘촌동네’ 사람들, 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한 명목, 어쨌든 주어지긴 주어진 보상 대책, 그 명목은 참 합리적이고 화려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거민들을 맹렬히 욕했다. 뭘 더 얼마나 바라길래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저러는 거냐고, ‘떼’를 쓰면 다 되는 줄 아냐고 말하면서.
그리고 재작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사람이 미래”라고 외치는 대기업에 꿈에도 그리던 취업을 했는데, 그 신입사원들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 아래 아주 간단하게 쫓겨나야만 했던 것이다.?이번에도 명목은 있었다. 하필 이때 회사는 직원을 무리하게 뽑아 고정비를 늘렸고, 안타깝게도 그 이후 경영상태가 악화되었으며, 그때 회사가 내보내기 좋은 인력이 하필이면 ‘아직 젊은’ 청년 신입사원들이었던 것이다.
20대에 명퇴를 당하려고 그곳에 입사한 사람은 없었다. 다들 각자의 꿈을 이루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덜 불안하게 살고 싶어서 들어온 것일 터였다. 그렇다면 그곳도 좀더 넓은 의미에서 그들의 삶의 터전이고 집이라 할진대, 용산 참사로부터 7년이 지난 이후에는 직장이라는 터전마저 퇴거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우리는 살기위해서 체념을 암기했다
그리고 2017년이 시작되니, 이제는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게임 서버 속 데이터 집합으로서의 집을 잃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 꼬박 지난 10여 년 동안 세상은 더 합리적인 명목으로, 더 깊은 사적 영역을, 더 철저하게 철거하는 쪽으로 변해 온 것이다. 체제를?위해 희생하는 개인만이 더 늘어났을 뿐, 개인을 먼저 책임지는 시스템은 조금도 발전하지 않은 채로.
이제 이런 퇴거의 비극은 언제든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참 허망하지 않은가.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너무도 쉽게 깨어지고 밀려나 무너지기 쉽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저지른 적 없는 일에 대한 대가를 언제 치르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치열한 삶이며 노력, 열정 운운 우리를 향한 ‘일침’들은 얼마나 한가로운 단어들인가.
결국, 우리가 배운 것은 체념이었다. 그냥 이곳을 지옥이라고 자조하면서 사는 게 다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대응하기 편했다.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삶의 방식을 정하든 외부에서 던지는 충격 한 방이면 모두 간단히도 무너져내릴 게 뻔하니까. 꿈이고 뭐고, 하고 싶은 것이고 나발이고 우선 하루를 더 살아내기 위해 당장 밀려오는 위기에 대응을 해야만 하니까.
그러다보니 세상은 '법대로' 여기까지 흘러갔고, 필요한 일인데 어쩌겠냐는 그 말 앞에서 누구도 꼼짝도 하지 못한다. 축하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차분하게 절망하는 법 뿐이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이 사회에서 아무쪼록 끝까지 살아남길 바란다. 나도, 당신도.
파판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1년반 플레이 해 온 유저 하나 버리기 쉽다. 그쵸?
어쩌겠어요
내가 시골섭에 캐릭터를 생성한거.
이렇게 막돼먹게 통합 몇번씩해서 없어지게 될줄 몰랐던.
추억은 0과 1이 아니라던 게임을 믿은 유저가 잘못했네요.
- 파이널판타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유저의 말 中 -
윤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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