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 프로는 ”본방”으로 봐야 제맛 아니냐?

집돌이/집순이 수치가+80 올라갔습니다.

스마트폰의 공세에 노트북도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에 TV는 오죽할까? 그렇지만 어떤 프로그램은 텔레비전을 통해 봐야지 제맛인 것들도 있다. 본방송이 아니면 그 맛이 살아나지 않은 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에서 소문난 집돌이/집순이들이 엄선한 프로그램이니, 재미는 확실히 보장한다.

 

유진_ 출발 비디오 여행

모든 영화가 재밌게 느껴지는 마성의 코너 ⓒMBC

일요일 아침 8시면 일어나서 디즈니 만화 동산을 봤던 내 어린 날이 꿈만 같다. 치열한 일주일을 보내다 보면 기본적으로 11시까지 피곤에 쩔어 침대에 붙어있는다. 그리다 보면 교회에서 돌아온 엄마가 한심한 표정으로 나를 깨운다. 그러면 헝클어진 머리로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켠다. ''출발 비디오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누가 내게 "취미가 영화 보기?"라고 묻는다면 아니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관에서 참 잘 자는 편이다. 영화가 아무리 재밌어도 두시간은 너무 지루하다. 솔직히, 두시간 동안 앉아 있는 건 누구나 좀 힘들지 않은가. 그래서 출발 비디오 여행이 좋다. 긴 영화를 단 10분 안에 요약해주니까. 마지막이 궁금하지 않냐고? 뭐든지 위기-절정으로 이루어지는 그 순간들이 짜릿한 법이다. 어차피 세상 대부분의 결말은 허무하기도 하고.

호흡이 빠르다고 무시하기에는 코너 구성도 나름 알차다. 신작 영화 소개를 기본으로, 각기 다른 영화를 비교하거나, 배우 한 명에 대해서 집중 조명하기도 한다. 쉬고 싶은 일요일에 특별히 머리를 쓰지 않으면서 쉽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매주 홀린 듯 보게 된다. 늦게 일어난 일요일 정오가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지는 당신이라면, 일단 눈곱 낀 눈으로 티비에 앉아보자. 뭔가 엄청난 것을 알아버린 듯한 충만함이 공백감을 채워줄 것이다.

 

다훈_ 삼시세끼 시리즈

곧 전역하는 이승기의 삼시세끼를 보고싶다 ⓒtvN

나영석 PD의 <삼시세끼> 시리즈는 최대한 본방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본방을 시간을 놓치면 귀중한 문화상품권을 긁은 다음 VOD라도 다운받는다. 사람이 가장 배고파지는 밤 11시, 병맥주 한 잔과 함께 삼시세끼를 안주삼아 보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낙이다.

명품조연 유해진은 매일 산을 타고, 같은 시간에 라디오를 듣는다. 그러다 농사일에 지쳐 마당에 그냥 쓰러져 잠이 들기도 한다. 늘 카리스마 있는 배역으로 기억되는  차승원은 여기서 김치를 담고 과일을 갈아 주스를 만든다. 거기에 늘 담백한 손호준이 펼치는 깨알같은 막내케미까지. 스크린 너머에 존재하던 배우들의 소박한 일상을 보는 것이 재밌다.

무엇보다 “먹기 위해 산다.”를 실천하는 모습에 중독된다. 직접 재료를 구하고, 장작불을 피우다 보면 요리 시간만 1시간을 훌쩍 넘긴다. 참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모습을 겹처본다. 주로 15분이면 거의 모든 식사가 해결된다. 아니, 해결해야 한다. 공강 시간에 햄버거 잠깐. 학교를 마치고는 급하게 빵이랑 우유. 빠르고 깔끔하고 편리하지만 분명 무언가 허전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삼시세끼>를 본다.
보다 보면 어쩐지 내 삶에서 채우지 못한 부분이, 메꿔지는 것만 같아서.

 

정원_ 더지니어스 시리즈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는 최고의 프로그램 ⓒtvN

드라마 <모래시계> 방영 시간에는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2017년은 ‘본방 사수’라는 말이 무색한 시대다. 더 이상 드라마를 보기 위해 친구와 일찍 헤어진다든가, 가족 모두가 TV 앞에 앉아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일은 드물다. 재방송을 적당할 때 맞춰 보거나 여차하면 다운 받아 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나에게 <더 지니어스>는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없는 시리즈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루라도 놓쳤다가는 온갖 채널을 통해 스포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본 방송이 끝난 직후 포털에는 검색어에 주요 출연자들의 이름이 꼭 있었고, 페이스북에도  <더 지니어스>에 대한 내용이 지뢰처럼 나오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애인과 만나다가도 시즌 4의 결승전에 눈을 못 떼고 있었나보다.

밥 먹듯 배신이 일어나고, 예상 못하는 반전이 일어난 순간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게 즐거웠다.  냉혹하고도 치열한 그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두뇌 싸움, 정치 싸움에서 오는 몰입감은 인생에서 쉽게 경험하지 못할 감정이지 않은가. 마지막 시즌이 파이널이라는 이름으로 끝났기에, 후속작은 아마 쉽게 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혹시나 만약에 선물처럼 새로운 시즌이 찾아온다면,  내 친구들은 그 날 저녁에 나를 보지 못하겠지.

 

정은_ 송재정 작가의 드라마

작가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이쁜 종서기도 못 봤겠지..ⓒMBC

송재정 작가의 이름이 내 머릿속에 박힌 것은 2012,  tvN 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 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드라마의 흐름 자체가 막힘이 없어서 밤새 돌려보다가, 어떤 분이 이 명작을 쓰신건지 궁금해서 찾아봤었다. 아. ''거침없이 하이킥'', ''순풍 산부인과''를 집필하신 분이구나. 그러다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쓰신 것은 ''커피하우스''. 그러고 보니 그 드라마도 중독성 있게 챙겨봤던 기억이 났다.

시트콤을 쓰신 분이라 그런지 그 특유의 유쾌함이 살아있으면서도 중간에 끊기가 참 어렵다. 상황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도 여타 드라마작가들과는 다른 점이 많다. 스토리 자체는 꼼꼼하고 치열하게 짜내려가는데 시청자들에겐 자연스럽게 중요부분을 빼고 보여주는 방식이다. 덕분에 팬들은 엉뚱한 미끼를 물고 커뮤니티에서는 셜록들이 다수 등장한다. 결국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작가가 짜놓은 큰 그림을 마주하게 되지만...

명확한 러브라인도 좋았다. 뻔하디 뻔한 사각관계가 아니라 단 둘의 직진 관계가 메인이다. 서로 마음이 식지도 않고 다른 사람때문에 흔들리지도 않는다. 다만 둘이 다른 시대를 살거나 (인현왕후의 남자) 시간을 넘나들어 현재를 바꾸거나 (나인) 다른 차원의 세계 (더블유)에 산다는 ''사소한'' 사실이 둘을 방해할 뿐이다.  그 안타까움을 노심초사 지켜 보다보면, 어느덧 당신의 겨울방학도 끝이 나버릴 것이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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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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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곱씹어보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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