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첫 선거의 추억들

그때도 한 표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뭔가 조금은 바뀌었을까?

나의 첫 선거는, 2006 지방선거

2006년 지방선거 당일, 나는 현관문에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선거공보물 첫 장을 붙였다.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부모님 표에 내 의견을 반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투표권이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부모님과 함께 TV토론회를 보고 대화를 나누며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경상도 태생이셨다. 그런 부모님께 '어떤 공식'을 깨드리고 싶었다. 지역색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과 그가 내세운 공약만 보고 후보자들을 평가하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물론 부모님이 누굴 찍으셨는지 나는 모른다. 그날 저녁, 야식을 먹으며 개표 방송을 봤다. 결과는, 예상 그대로였다.

곧 대선이 시작된다. 부모님은 여전히 특정 후보를 지지하신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도 투표권이 있다. 20대를 오롯이 한 정당의 집권 하에 살아온 내게,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으로 선거에 관심을 가졌던 그날처럼, TV 토론회와 후보자들의 공약을 꼼꼼히 들여다 보고 사전투표를 마쳤다. 다음 5년은 광화문 광장에 나가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나의 지난 20대와 다를 수 있을까.

/ 하민지 

나의 첫 선거는, 2012년 총선

아직도 2008년 여름의 광우병 집회를 기억한다. 광장의 열기를 맛본 그때부터 보수라는 말에서 꼰꼰스러움을, 진보라는 말에는 괜히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20대 초반에는 제대로 판단해보지도 않고서 이상한 겉멋에 취해 진보적 가치, 정당, 인물을 우상화하곤 했다.

그 영글지 못함은 곧 2012년 총선으로 이어졌다.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선거 공보물 한 번 제대로 안 들여다보고도  민주 계열의 인물을 찍었다. 좀 더 말을 더하자면, 지난 총선에서 '상대 진영'에게 패한 것에 복수하라는 지극히 유치한 심리도 있었다.

선거란 본디 그런 것이 아니지만...

그렇게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고 투표를 했으니 어느 중학교에 차려진 투표소에 나풀나풀 걸어가 몇 분 만에 끝난 내 첫 투표가 크게 의미 있게 다가올 리가 없었다. 오히려 강한 허무함에 휩싸일 뿐이었다.

이제는 의심 없는 사고야말로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마냥 급진적인 진보적 사고가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없고, 어떤 부분에서는 보수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것을 내 지난 투표에 반영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반대로, 일찍 실수한 것이 되려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 김정원 

나의 첫 선거는, 2012년 대선

2012년 12월 19일. 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날짜를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꽤나 신나있었다. 첫 선거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통령 선거라니! 내 선택으로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고, 내가 찍고자 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라는 확신도 있었다.

내 주위에 있는 친구들, 내가 자주 듣는 팟캐스트 속의 사람들, 페이스북과 트위터 안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말했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정말로 망해버릴거라고. 그리고 12월 19일 저녁, 대통령이 결정되었다. 당황스러웠다.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이 나라의 반은 무슨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거지?

하지만 놀랍게도 그 '이상한 사람'들은 친지, 가족, 친구와 같은 내 근처의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계기였다. 그때부터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나고자 했고, 덕분에 그들과 깊게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각자의 지지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대통령 선거 당일이다. 나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어떤 후보를 찍을 것이며, 왜 그 후보를 찍게 되었을까. 투표를 마치고 개표방송을 보면서, 괜찮은 안주와 함께 술잔을 채우며, 얼른 그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 박종우

나의 첫 선거는, 2014년 지방선거

19살, 수능을 막 마친 뒤 해방감에 휩싸였던 때였다. 동네 미용실에서 35,000원짜리 파마를 하고 있었다. 미용실 구석에 놓인 작은 TV에선 18대 대선 개표 방송이 흘러나왔다. 두 후보는 접전을 벌였지만 나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미성년자에게는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권한 대통령의 주요 정책 중 하나는 반값등록금었지만, 실제로는 소득별 차등을 둬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정책이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집안의 경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소득분위를 받았고, 학자금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 나가 빛을 보기도 전에 빚부터 먼저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났다.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가 터졌다.

그날 밤, 나이롱 기독교 신자인 나는 생에 가장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제발 모든 승객이 구조되길 바라면서. 하지만 다음날에도 구조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6.4 지방선거가 찾아왔다. 아침 일찍 엄마 아빠와 함께 투표장을 갔다. 나름 후보들의 공약과 이력을 살펴보고 첫 투표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투표율은 고작 56.8%이었다. 더 충격적인 건 이 수치가 초대 지방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이라는 점이었다.

투표에 참여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많은 미성년자는 선거권을 행사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영향은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오늘은 대통령 투표 선거일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특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예정이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 주진희

나의 첫 선거는, 2016년 총선

아버지는 나를 혼날 때면 “너 같은 애를 보고 빨갱이라고 한다”고 하셨다. 외삼촌은 아버지를 보고 “아이고, 아직도 저러신다"라며 웃으셨다. 이렇게 다양한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지만, 정작 나는 아무런 입장이 없었다. 입 아프게 정치에 대해 떠들어봐야 내 삶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대 총선이 다가왔다. 아빠는 내게 00당을 뽑아야 한다고 하고 말했고, 엄마는 그런 아빠 손을 잡아끌며 말렸다. 투표소에는 두 장의 투표용지가 있었다.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빠가 말한 이름의 당과 사람을 찍었다. 그것보다는 내 손에 찍힌 인증도장이 더 중요했다. 선거장에 나와서 가벼운 마음으로 도장을 찍은 손을 남자친구에게 자랑했다.

나의 한 표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달 뒤, 학교에서는 아주 많은 일이 생겼다. 교정을 걷던 누군가가 다치고,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이 고통받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건물에 다 같이 모여 앉아 분노하기 시작했다. ‘정치’와 ‘선거’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들을 내 주위에서 내 눈으로 보았다. 참으로 긴 겨울이었다.

아직도 정치가 내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런 고민 없이 선거장에 들어갈 수도 없다. 변화는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무거운 마음으로, 이번에는 투표하고 싶다.

/ 김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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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우

박종우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좋은 영화를 혼자 보는 것도, 함께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