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것도 없는데 어느덧 스물 다섯이 되어버렸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 없는 참으로 애매한 나이.

스물 다섯의 새해는 꽤나 춥습니다

지독하게 불쾌해 땀으로 범벅됐던 여름이 무색합니다. 단풍은 보지도 못했죠. 늘 그렇듯 시간이 갔고 이제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의 알바들이 모두 산타 모자를 쓰고 있군요.

일 년이 또 그렇게 흘러가고, 나이를 먹었습니다. 늘 이 맘 때가 되면 설렘과 착잡함이 뒤엉켜 참 묘해요. 20대의 절반이 가니 올해는 더 그런 기분이 듭니다. 흔히들 꺾인다고 하지요. 맞아요. 20대가 이제 꺾였습니다. 일병이 꺾이고 상병이 꺾였던 경험과는 또 다르네요.

이제 스물다섯입니다. 중턱쯤 올라왔어요.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인간관계 :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기도 했고, 원인을 알지 못하는 어떤 외로움에 혼자 몸서리치기도 했습니다. 밤을 새가며 술을 마시던 일은 다반사였고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어요. 처음 알아버린 술맛에 정신을 못 차렸죠. 술이란 게 일단 들어가면 신나잖아요. 술 마시기 위해 알바를 했어요.

15kg 가까이 찌우고 나서 군대를 갔죠. 2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제일 많이 한 건 후회와 다짐이었어요. 아, 그동안 도대체 왜 그렇게 살았을까? 제발, 제발 여기서 나면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니 어느새 민간인이 되더군요. 그래서 열심히 했냐고요? 그럼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내 꿈을 쫓아다녔죠.

하지만 인간관계는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열심히 한다고 했건만...

죽고 못 살던 친구와 거짓말처럼 멀어지기도 하고 주머니 속 이어폰처럼 꼬이고 꼬여 풀어내기 힘든 갈등도 생겼죠. 일상이 바쁘다보니 까맣게 잊고 살다가도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인연들이 간혹 생각이 나요. 하지만, 먼저 연락 하지는 못하죠.

“언제 한 잔 하자!”라는 기약 없는, 세상에서 가장 빈 말을 내뱉기 싫었어요. 제가 먼저 안부를 묻고 자주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나이먹음이 유쾌하지 않더라

남들과 널 비교하지 말아라. 비교할 수록 불행해지는 건 결국 너이다. 엄마의 말씀이셨죠. 그런데 엄마, 자꾸만 그 신념이 흔들리려고 해요. 멋진 곳에서 인스타그램을 올리는 친구들이 부러워요. 같이 술 마시던 선배는 좋은 곳에 취직했고, 고등학교 친구들은 이제 돈을 벌고 있다네요.

하지만 나는 스물다섯인데 인턴도 아닌 알바를 뛰고 있죠. 앞으로 서른까지 5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뭔가 드라마틱한, 디즈니 캐릭터의 마법 같은 일들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요? 아, 거창한 걸 원하는 건 아니에요. 불행하지 않고, 그저 남들처럼 돈 벌고 남들처럼 살고 싶을 뿐.

나의 20대의 중턱 너머에서는 이 불확실한 모든 것들이 결정되길 바라요. 일 년에 한번쯤은 여행도 가고 싶고,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는 여자친구와 함께 작은 공연이라도 보러 간다거나, 좋은 추억을 함께 만든 친구들한테 비싼 밥을 사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들. 너무 허황된가요?

어떤 어른의 말씀을 들어보면 정말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다시 고개를 들어봅니다. 그러니 이것은 서랍 속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일기, 혹은 그냥 잠시 우울해져 몇 마디 내뱉는 푸념. 세상에서 가장 소심하기 짝이 없는 출사표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2018년. 새해가 왔습니다. 이 시기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나와, 나와 같은 이유로 힘겨운 20대의 중턱을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지금마저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 자우림,  <스물다섯, 스물 하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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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훈

조영훈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비오는 날과 홍학을 좋아합니다. 공산당을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