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고픔은 아직도 갈 곳을 찾지 못했네

장기하와 얼굴들의 ‘보고싶은 사람도 없는데’를 들으며 쓰는 글

아주 짧았던 첫 연애가 끝났다.

짧은만큼 추억도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얘기할 정도랄까. 그렇게 연애한 기간의 다섯 배도 넘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보고싶다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사람이 특별하게 남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이후에도 보고싶다는 감정은 까닭을 모르고 계속해서 나를 맴돌았다. 밥을 먹을 때도, 수업을 듣고 있는 와중에도,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실 때도, 한시라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더욱 답답한 것은 보고싶다는 말에 주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특정한 사람이나 장소가 보고픈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와 감정을 교류하고 있어도 나는 문득 보고 싶다는 감정에 잠겨 들었다.

아직 이런 감정을 다루는 일에 미숙한 걸까? 친구들이 말했다.

있잖아, 혹시 그건 그리움이 아닐까?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리움과는 조금 달랐다. 내게 있어 그리움이란 ‘돌아갈 수 없는 시절’과 같은 막연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가 지금 들고 있는 감정은 그 어떤 것보다 또렷했다.

친구들이 머리를 싸매고 내려준 다른 결론은 외로움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대답은 될 수 없었다. 나에게 ‘외로움’은 친구들을 만나거나,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으로 대응 가능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보고싶다는 이 막연함은 그 무엇으로도 풀리지 않았다.

 

사실, 이 감정은 최근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모든 사람들의 고민은 입시였다. 인간관계도 뻔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족보다 오래 보는 친구들이 내 세계의 전부였다. 그때의 친구들과는 고민의 구체적인 맥락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울 땐 그들도 함께 울어주었다. 내가 웃을 땐, 나보다도 더욱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대학이라는 보다 큰 사회가 다가왔다. 새롭게 등장한 사람들은 각기의 목표와 각자의 삶이 있었다. 나와 동일한 고민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와 다른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나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에이번리의 다이애나와 레드먼드의 앤이 다른 곳을 바라보듯, 내 주변 사람들은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연애가 시작이 되면 참 기뻤다. 정처 없이 떠돌던 보고싶다는 말이 비로소 주인을 찾은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은 상관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만은 내 편이어야 한다. 당신만은 내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물론, 연애 상대는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떼를 쓰고 욕심을 부려 멀쩡한 관계를 망쳤다. 그러다 헤어지면 다시금 보고싶다는 감정은 주어를 잃고 내 곁을 맴돌았다.

나는 여전히 보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래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보고싶은 사람도 없는데>라는 노래가 참 반가웠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안고 있던 감정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여전히 나의 보고싶다에 주어는 없다. 그래서 요즘도 이 노래를 들으며 고민한다. 나는, 우리는 대체 무엇을 그렇게나 보고 싶어 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언제쯤이면 나의 보고픔이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아직 아무도 없는데,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데.

불 켜둔 채 잠깐 잠이 든 틈을 타서 사라진
그 얼굴도 웃음도 한꺼번에 모두 되돌아왔지만
나는 정말 분명히??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너무 너무 너무 보고 싶네
그리운 사람도 없는데
너무 너무 너무 그립네

- 장기하와 얼굴들, <보고싶은 사람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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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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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사랑스러운 또라이가 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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