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뒤, 총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1924년 10월 25일, 영국 노동당은 운명의 날을 앞두고 있었다. 중도 좌파 정당으로서 최초로 정권 장악에 성공했지만 국회에서 그들은 그저 동네 형에 불과했다. 야당인 보수당이 258석, 자유당이 158석을 보유하고 있는데 반해 집권당인 노동당이 가진 의석은 191석이었다. 만일 보수당과 자유당이 손잡고 덤비면 노동당 정권은 혼자서 숟가락질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마디로 여소야대 정국이었고 정국을 타개하려면 자유당과의 연합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 답답한 상황을 한 방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나흘 뒤로 다가왔다. 총선거가 치러질 예정이었다. 노동당의 맥도널드 수상은 총선거를 통해 국회 소수당의 한계를 벗어나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총선에서 다수당으로 거듭날 수만 있다면 보수당과도 제대로 한 판 붙어볼 수 있고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소련과의 조약 비준도 해볼만 했다. 총선은 10월 29일 월요일로 잡혀 있었다. 10월 25일 수요일, 노동당이 홍보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그 시점에 메가톤급 스캔들이 터졌다.
대표적 보수 언론 데일리 메일(Daily Mail)에서 엄청난 위력을 지닌 기사를 1면에 내보낸 것이다. 눈알이 시뻘개지도록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원문에서 발췌한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Civil War Plot by Socialists' Masters
Moscow Orders to Our Reds
Great Plot Disclosed
모스크바가 영국 공산당에 내린 지령, 영국의 내전 음모 그 엄청난 전모를 밝힌다
데일리 메일은 소련 코민테른의 수장 그리고리 지노비예프(Grigori Zinoviev)가 영국 공산당과 사회주의자들에게 내린 비밀 지령문을 입수해서 전격 공개했다. 영국인들과 노동당을 통째로 멘붕시킨 이 전문의 세 줄 요약은 이랬다.
1. 영국 노동당 내부에 공산주의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장하라!
2. 소련에 차관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 영소 조약 비준을 적극 지지하라!
3. 영국군대와 노조에 침투해서 무장봉기를 선동하라!
아울러 이런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과 소련 사이에 조약이 성사되면
두 나라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교류가 확대되고
결국 레닌의 이념을 영국과 영국 식민지 국가들에 이식하는 것이 수월해 진다.
그렇게 되면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키기 적당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이 문서는 쉽게 말해 소련 공산당이 영국의 공산당과 사회주의자들에게 내린 혁명지시였다. 영국인들은 화들짝 놀랬고 집권당인 노동당이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일어났다.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영소 조약도 그 우려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간주당했다. 당근 노동당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비등했다. 이 기사를 본 맥도널드 수상은 머리를 감싸쥐며 탄식했다. "끝났다(We lost)"
총 선거는 불과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갑자기 터져나온 비밀문서의 출현에 노동당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휴일이 걸쳐있어 제약이 많았던 데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장악한 보수 언론들이 노동당의 반론을 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일리 메일에서 시작된 파문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주말이 되자 이젠 거의 모든 영국 신문들이 이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노동당은 이 자료의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조작된 정보일 수 있으므로 믿어서는 않된다는 주장을 했지만 어필하지 못했다. 수상까지 나서서 적극적인 진화에 나섰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보수당과 보수 언론들은 이 자료를 정계, 재계, 군대, 일반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퍼나르기 시작했고 이미 대세는 기울고 있었다. 노동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거 결과 노동당은 40석을 잃었고 노동당과 연합했던 자유당은 118석을 잃었다. 두 당을 합치면 총 158석의 국회의석이 날아간 셈이다. 그 반면 보수당은 지노비예프 문서의 반사이익으로 151석을 추가로 얻는데 성공해 총 의석수는 413석에 달했다. 선거 전보다 더 강력한 파워를 얻게 된 것이다. 보수당 단독으로 영국 하원의 과반이상을 장악한 것이다.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노동당 정권은 보수당에게 정권을 넘겨줘야 했다. 보수당의 수상으로 임명된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은 취임하자마자 국민적 의문이 증폭된 지노비예프 문서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지시했다. 그리고 1924년 11월 19일 그 결과를 공개했다. 영국의 국내 정보기관인 MI5와 국외 정보기관인 MI6, 외교부등의 확인결과를 바탕으로 지노비예프 문서는 모스크바 코민테른에서 작성한 원본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영소 조약은 당연히 그 다음 날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노동당은 끝까지 지노비예프 문서가 조작된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음모론 제기설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한다는 악평만 들어야했다. 이로서 지노비예프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 문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노동당 뿐만이 아니었다. 소련의 코민테른과 문서의 작성자로 지목된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본인도 이 문서의 내용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이 문서에 기입된 자신의 서명뿐만 아니라 문서에 적힌 부서명칭도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소련 코민테른의 조직명은 Executive Committee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인데 반해 지노비예프 문서에 적혀있던 조직명은 Executive Committee of the Third Communist International?이었다.지노비예프는 이런 조직은 소련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문서에 자신이 서명한 것으로 되어 있는 날짜는 자신이 휴가중이었던 기간이었기 때문에 어떤 문건도 서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물론 그의 음모론 제기 역시 씹히긴 마찬가지였다. 이미 대중들의 뇌리속에선 영국 노동당 = 소련 공산당의 등식이 성립된 다음이었기 때문이다. 일명 지노비예프 지령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영국 정계를 뒤흔든 정치 스캔들로 남게 되었고 반전론(反戰論)과 사회 민주주의를 추구했던 영국 노동당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었다.
의혹, 그리고 풀리는 의문들
이 사건에 대한 조사는 그간 여러 차례 있었지만 가장 공신력있는 것은 1998년 영국 외무부 장관인 로빈 쿡의 지시로 진행된 검증이었다. 그의 조사팀은 MI5와 MI6, 영국 외교부 그리고 모스크바의 문서기록고를 모두 뒤져 지노비예프 문서가 진짜인지 위조인지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조사를 의뢰받은 영국 외무성 수석 역사학자는 성역없는 조사를 벌였고 1999년 1월 그간 밝혀낸 내용들을 대중에 공개했다. 드디어 음모론이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로빈 쿡의 조사팀은 지노비예프 문서가 정교하게 위조된 가짜라고 결론 내렸다. 이 문서는 노동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를 끌어내리기 위해 언론 플레이용으로 만들어진 가짜였다. 엽기적인 것은 그 조작의 당사자가 경악스럽게도 영국 정보부였다는 것이다.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MI5와 해외 정보를 담당하는 MI6가 모두 문서의 제작 및 유통에 관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MI6로부터 이 문서를 전달받은 영국 외교부는 집권당의 이름이 거론된 충격적인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어떤 검증절차도 없이 이 문서가 원본이라고 결론내렸다는 점이다. 보수당과 데일리 메일에 이 정보를 제공한 주체도 이 기관들의 고위 공직자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노비예프 문서는 정부의 비밀기관들이 공모해 집권당에 빅엿을 먹인 기획된 음모였다는 것이 이 조사 결과로 밝혀졌다. 당시 지노비예프 문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은 007 시리즈를 뺨칠만큼 탄탄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벌어진 팀 플레이의 산물이었다. MI6는 자체 정보원을 시켜 소련 공산당의 비밀지령 문서를 만들게했고 그 위조문서를 코민테른 내부에 침투한 비밀 정보원을 통해 송부하게 했다. 당시 MI6의 수장이었던 휴 싱클레어 국장은 지노비예프 문서를 외교부에 전달하면서 이 문서가 신뢰할 만한 진본임을 증명하는 이유를 5가지나 제시했다.
모스크바 코민테른에 침투한 정보원이 입수했다는 점, 그 정보원이 과거 영국정부를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믿을만한 휴민트라는 점, 직접적이고 독자적인 채널로 이 문서가 진품이라는 것을 재 확인한 점, 국내 공산당조직을 감시하고 있던 MI5등 다른 정보기관도 인정한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문서의 유출에 대해 소련 공산당이 보이는 히스테리칼한 반응등이 그 증거로 제시되었다.
이 문서를 전달받은 영국 외교부는 MI6의 보고내용을 당시 수상이던 맥도널드에게 보고하면서 동시에 보수당과 언론에도 흘리는 이중 플레이를 펼쳤다. 보수당의 중앙당 사무실과 데일리 메일은 문서를 받고 공개시점을 조율했고 주말을 앞두고 기사화함으로써 노동당에 치명타를 가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공작정치를 벌인 고위 공직자들은 이후 퇴직 후 보수당에 합류함으로써 그들의 활약에 대한 보상을 나름 받을 수 있었다.
진리를 밝히기 위해 필요한 것들
밝혀진 바대로 지노비예프 문서는 철저히 음지를 지향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정보기관들과 외교부, 정당과 언론매체가 한통속이 되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맞지않는 정부가 들어서자, 그들을 끌어내릴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총선을 이용해 작전을 실행시킨 것이다. 007이 모스크바가 아닌 자국 정부를 향해 총구를 겨눈 셈이다. 이미 세월은 흘렀고 이 사건의 주인공들은 무덤 속에나 누워있었지만 그들은 진상규명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 덧씌워져 있던 색깔론과 진실에 대한 확실한 규명이었다.
지노비예프 사건은 왜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생겨나는 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심플하다. 실제로 세상에는 많은 음모가 만들어지고있고 존재하며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와 전쟁 분야에서 음모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가장 효율적인 공격전술로 애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음모들이 존재하는 한 음모론 역시 사라질 수가 없는 거다.
사이비 역사학도인 나 역시 그래서 음모론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모든 음모론이 다 사실은 아니듯, 모든 음모론이 다 거짓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실제 음모가 존재했었음이 밝혀지는 경우도 있고 승자독식 논리에 의해 조작된 역사로 판명나는 경우도 있다. 역사를 볼 때 (고따위로 치부되는)음모론을 함께 알아야 하는 이유는 승자와 패자의 주장을 모두 들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급 의문이 든다.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인 지노비예프 사건…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시츄에이션이다. 영국은 70년이 넘도록 그 실체적인 진실규명에 매달렸고 결국 밝혀냈다. 그리고 그 덕에 007이 자국 선거에 개입하는 장면은 설령 영화속에서라도 나올 수 없게 되었다. 현재의 영국 정보기관들은 국내 정치에 있어서만은 철저한 중립을 지키는 걸로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의 007은 지노비예프 사건에서 자유로운가? 그들은 더 이상 어떤 종류의 의심도 야기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중립적인가? 70년 후에나 기대할 수 있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올 때까지는 대한민국은 음모론의 성지로 남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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