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in독일] ②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집 구하기

베를린 하늘 아래에도 이 한 몸 누울 곳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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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장의 사진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열쇠를 받기까지, 외국인의 신분으로 베를린에 방을 얻기까지의 그 험난한 과정들!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한국인이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집(Wohnung)을 구하기란 꽤나 까다롭다. 우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최근 3개월간 수입이 적힌 통장내역서(물론 독일 계좌), 혹은 그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독일인이다. 부동산을 통해 계약할 경우 그리 까다롭지 않다는 말도 있는데 부동산 소개비용은 200만 원 정도. 워홀러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스텔이나 한인민박에 머물면서 베를린리포트라는 한인커뮤니티사이트에서 WG(일종의 룸쉐어)나 Zwischen(일정기간만 렌탈)을 구한다. 그렇게 룸쉐어 생활을 하다가 일자리를 얻거나 돈을 모아 독채나 원룸을 구하는 수순이 일반적이다.

참, 독일 사이트를 통해 집을 구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단어들이 있다.

 

1. Zimmer(방) 그리고, Wohnung(집)

막 이런 거실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막 이런 거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독일에는 거실이라는 개념이 따로 있기보다는 비교적 더 큰 방을 거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만일 Zimmer가 2개라고 되어있다면 ‘거실1과 방 2개’라는 의미라기보다 방 2개 중에 큰 방을 거실로 사용해야 할 확률이 높다.

 

2. Kaution (보증금)

이런 부담은 없을지어다

이런 부담은 없을지어다

안심하라. 한국에서 사용되는 보증금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1년 치 월세를 합한 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내야만 하는 우리나라의 보증금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보통 3달 치 월세 정도의 금액만 보증금으로 내면 된다.

 

3.Kaltmiete(순수한 월세) / warmmiete(공과금 포함 월세)

내집마련의 길은 머나먼 이국에서도 까다롭기만 하다…

내집마련의 길은 머나먼 이국에서도 까다롭기만 하다…

예를들어 kaltmiete는 300유로인데 warmmiete가 400유로로 되어 있다면, 순수한 렌탈 비용 300유로에 난방이나 수도, 인터넷을 포함한 비용이 400유로라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할 점은, warmmiete 안에 포함되는 항목은 집주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해본 후에 결정해야 한다. 잘못할 경우 나처럼 인터넷을 따로 설치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니까.

참고로, 독일의 인터넷 설치에 대해서는 밤을 샐 수 있을 정도로 할 말이 많지만 다음을 위해 아껴두겠다…

 

집 없는 외국인 노동자의 슬픔

우리는 에어비앤비와 독일 부동산검색사이트를 통해 집을 검색했다. ‘berlin'을 검색해 가격, 위치, 기간과 같은 조건에 맞는 곳과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진전이 있으면 미팅을 잡아 방을 보고 계약을 맡아주는 식. 이렇게 쓰고 보니 꽤 체계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무작위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리는 중이었다.

경험한 바에 따르면, 에어비앤비는 독일 워홀러들이 집을 구하기에 좋은 사이트는 아니다. 가격이라거나 가격, 혹은 가격과 같은 부분에서 조건을 맞추기 힘들었다. 물론 나를 유혹하는 북유럽풍의 부엌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부엌만 끼고 살 것 아닌 이상 900~1000유로 하는 월세를 감당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부동산검색사이트를 이용했다. 당시 도움받은 주소는 다음과 같다.

www.immobilienscout24.de
www.zwieschenmiete.de
www.ebay.de

부동산 수수료가 포함된 방은 필터로 제외시킨 후에 검색을 하자(Provisionsfrei). 집 주인이 전화번호를 남겨두었다면 전화를,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메일로 자기소개와 함께 이 집에 살고 싶은 이유를 절절하게 작성해 보내면 된다.

수없이 많은 러브레터를 보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예비 워홀러들의 멘탈 예방차원에서 집주인들과 탔던 지독한 썸의 과정을 공개한다.

 

5분 때문에 놓쳐버린 당신

이런 테라스를 가질 뻔 했지만….

이런 테라스를 가질 뻔 했지만….

처음으로 방문한 집은 월세가 그리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테라스가 있었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북유럽풍의 가구들이 놓여있었다.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집주인과도 이야기가 잘 끝나서 다음 날 오전까지 답을 주기로 했고 우린 메신저로 축배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매우 이른 축배였다.

아침이 밝았다. 너무 이른 시간에 연락하면 민폐일까봐 적당한 10시 5분에 계약을 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10시 까지 답을 주지 않아 바로 다음 사람과 계약을 했다.” … 10시라는 시간을 누가 정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 5분 때문에 우리의 썸은 그렇게 끝이 났다. 문자라도 보내주지. 나만 좋아했던거니?

 

양다리를 걸쳤던 너란 집주인…

오빠..우리 분위기 좋았잖아…?

오빠..우리 분위기 좋았었잖아…?

최근 몇 년 사이 베를린에 거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집 구하기도 힘들어졌다. 덕분에 집주인이 지정한 날짜에 단체 관광객처럼 집을 봐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건축이 유명한 도시라고 하지만 박물관 가듯 방 하나하나에 대한 도슨트를 들어야 하다니..

그러나 우리가 만난 두 번째 집주인은 달랐다.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집을 내어줄 것 같았다. 첫 번째 밀당에서 실패한 경험을 토대로 우린 ‘5분’ 먼저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좋은 아침~ 우리 계약하고 싶어.”
“나도 너와 계약하고 싶어.”
“언제 만날까?”
“조금만 기다려 줄래?”

그리고 끝이었다. 우리는 며칠간 구 남친처럼 질척거렸지만 여전히 답장은 오지 않았다.
며칠 뒤 문자가 왔다.

“미안하지만 너와 만나면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과 계약을 하려고 해.”

그래, 이제 너를 놔 줄게….

 

킬미힐미 베를린 편

나는 분명히 한

내가 지금 몇 명과 대화하는 건지 알 수 가 없다.

우리를 가장 큰 혼란에 빠트렸던 마지막 썸을 소개한다. 그는 라틴댄서였다. 연습실로 쓰던 집을 결코 저렴하지 않은 월세로 내놓았지만 나의 모든 영어 혼을 쏟아낸 처절한 메시지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분명히 전날 확인받은 내용인데도 다음날에는 묘하게 다른 어투로 다른 내용을 묻거나, 확실하게 합의한 가격에 대해서도 생전 처음 듣는다는 듯 ‘그 돈에…? 대체 무슨 소리…' 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식이었다. 더 무서운 건 또 다음날에는 다시 친절한 태도로 ‘네가 원하는 가격에 이 집을 빌릴 수 있어’라고 말하며 웃는 그의 표정. 그렇게 첫키스만 50번 할 것 같은 집주인과도 끝이 났다.

 

그래도 집을 구했다면 반은 시작한 셈

이러한 사연 끝에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비빔밥을 좋아하는 Tina라는 마음 좋은 집주인을 만나 지금은 잘 살고 있다.

독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사람도, 유학생들도 많지만 실제로 집을 구할 때 필요한 정보는 드문 편이다. 특히나 현지에서 도와줄 친구가 없다면 초반에는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듯한 피로가 몰려온다. 그래도, 그 수많은 문서와 보증, 그리고 친절하지만 철저한 베를린 사람들을 겪다보면 앞으로의 베를린 생활도 5할은 이미 겪은 셈.

…하지만 에베레스트 같은 일자리 구하기가 남아 있었으니. 커밍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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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

이미화

베를린에서 보낸 한 달을 잊지 못해 현재 1년 예정 워홀 중. 현실은 거주지만 바뀐 재택알바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