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갑판병을 만기 전역한 내게 각별한 영화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 영화 인트로에 나오는 바로 그 배를 타고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나도 복학하면 저렇게 촬영 스탭을 뛰고 있을 텐데’란 생각에 전역이 더 간절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 영화가 여러 굴곡을 거쳐 이제 개봉되었다.
영화 초반부는 참수리 357호 정의 승조원 개개인의 성격과 삶과 군 생활 자체를 묘사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이 부분이, 나 같은 해군 예비역들에게는 마치 앨범을 들여다보는 듯한 묘한 기분을 선사해 준다. 복무하던 군항 내 풍경, 늘어선 군함들, 좁아터지고 낮은 함내 이곳저곳, 아닌 밤중에 가혹하게 떨어지는 전투배치 훈련, 출항 계류색 걷기, ‘전 계류색 걷어, 견시 보고, 000도 잡아’ 등 거침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전문용어들, 그리고 자비 없이 함교로 쏟아지는 파도 등등.
마치 군 복무 당시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등장하는 해군 용어들을 듣는데 내가 이걸 아직도 알아듣는단 사실에 몸서리가 쳐졌다.?군 생활 자체가 그리운 것까지는 아니어도, 그 시간을 함께 견뎌 냈던 사람들이 생각나서 감회가 남달랐다.?김학순 감독 스스로가 해군 출신이었고, 군의 큰 지원도 있었으니, 적어도 해군이라는?소재와 관계된 사람들의 향수와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적이다.
영화 '연평해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최순조 작가의 소설 '연평해전'의 판권은 2007년에 확보되었지만, 유가족이 거듭 고사하여 오랜 설득의 과정을 거쳤다는 후문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다음 날인 2010년 3월 27일. ‘연평해전’ 희생 용사의 유가족이 모인 자리에서야 영화화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음 문제는 자금.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여서 투자를 받기가 어려왔다고 한다. 영화 바깥의 정치적 논란도 문제가 되었다. ‘연평해전’의 제작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이른바 ‘일베’ 회원들이 나서서 당시 김대중 정부에 대한 비난과 모욕이 끊임없이 터져나왔다.?하지만 정작 영화 ‘연평해전’은?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강하게 요구하는 시선을 갖고 있지 않으며, 감독 역시 이 이야기가 어느 집단의 정치적인 도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추억으로도 보정되지 못하는 연출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북한 경비정과의 교전 장면전까지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까지는 차곡차곡 별 문제없이 진행되지만, 정작 전투 장면 자체는 밋밋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몇 년 전 국방부에서 제작한 ‘그날’이라는 재현 영상에 비하면 훨씬 낫다.?하지만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풀샷’이 적다는 문제
포화를 주고받으며 싸우는 양측의 모습을 동시에 잡은, 이를테면 당시 상황을 ‘중계’하는 듯한 풀샷이 많이 등장하지 않아, 관객들이 전투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첫 포화를 주고받고 나서부터는 계속해서 양측 고속정의 일부분에서 등장 인물들이 열심히 싸우고, 절규하고, 갑판을 누비는 샷들이 지속적으로 제시될 뿐, 풀샷은 자주 등장하지 않았다.
이런 연출 앞에서 관객은 양측이 어떤 전략과 전술을 어떻게 펼치고 있었다는 객관적인 상황 묘사가 아니라 ‘뭐 그냥 열심히 싸우다 보니 이겼다’라는 느낌만 받게 된다.
‘시간의 연장’이 지나치게 활용된 부분
시간의 연장이란, 이를테면 등장인물들끼리 꼭 필요한 대사를 주고받을 때에는 거짓말처럼 총탄이 날아들지 않다가 중요한 단어나 문장이 지나면 그제야 부상을 당하거나 폭발이 일어난다든가 하는 것을 가리킨다. 물론, 영화 자체가 당시 산화한 윤영하 고속정장을 비롯한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연출이 너무 반복되다 보니, 관객들은 자칫하면 당시 전투가 그만큼 급박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할 수도 있다.
포격 장면을 촬영한 게 아니라고?
심지어?영화 막판 한국 해군 초계함의 포격 장면은 촬영을 따로 한 것이 아니라, 해군에서 촬영해놓은 자료화면을 가져온 것이다.?그걸 큰 스크린으로 보는데, 어디서 ‘잘라 넣은’ 컷이라는 게 너무 뻔히 보여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검색하다가 더 기가 막힌 사연들을 알게 됐다.?자꾸 변경된 제작 일정으로 도중 하차와 재촬영 재개를 거듭한 곡절과, 촬영 스탭의 상당수가 거의 ‘봉사활동’ 느낌으로 참가했다는 것이다.
현대 해군의 실제 전투를 다룬 영화가, 그나마도 오직 예산과 시간의 여건 부족 때문에 기본적인 완성도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십지만, 그래서 더 많이 나왔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 판타지 괴물 영화 수준의 망작이 아니라는 점은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좋은 이야기’에 대한 힘이 강하다보니 그 맥락에서 많은 것들이 원활하게 이해된다. 앞서 언급한 전투 장면도 아쉽다는 말이지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면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작년의 흥행작 ‘명량’의 해상 전투보다 훨신 앞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영화든 단순히 그 의도가 좋다거나, 실화라거나 하는 점 때문에 지나치게 낮은 퀄리티를 용납받을 수는 없다. 다행히 ‘연평해전’은 그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결쳐 있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아쉽다.?앞으로도 ‘연평해전’처럼 흥행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그러나 ‘연평해전’보다는 더 재미있고 퀄리티 높은 영화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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