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뒤에 숨겨진 정치

그리고 축구 팬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

하늘색 유니폼 뒤에 가려진 것들

6,800만 파운드. 맨체스터 시티가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잉글랜드 출신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쏟은 금액이다. 한화로 1,220억. 라힘 스털링, 피비안 델프, 패트릭 로버츠. 각각 879억, 143억, 197억(추정치)의 이적료를 투자했다. 다른 명문 구단에 비하면 팬층이 두껍지도, 역사가 깊지도 않은 맨체스터 시티가 이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은 역시, 구단주 만수르 덕분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만수르의위엄

이제는 전 국민이 아는 아랍 동네 형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아부 다비의 왕자인 그는 지난 2008년 맨시티를 인수한 뒤 7년 간 이적료에만 무려 7억 2,000만 파운드(약 1조 2900억) 를 퍼부었다. 경기장, 훈련시설 등 인프라에 투자한 금액을 제외한 비용이 그렇다.

그 결과 맨체스터 시티는 만수르 아래서 두 번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과 세 번의 컵대회 우승(11-12 커뮤니티 쉴드, 10-11 FA컵, 13-14 캐피털 원컵)을 일궈냈다. 다가오는 15-16 시즌에도 맨체스터 시티는 강력한 우승후보다.?그리고 맨시티의 홈 구장 이티하드 스타디움은 이제 만수르와 그의 고국 아부 다비를 알리는 거대한 전광판으로 변모했다.

"아부 다비를 방문하세요, 여행자들을 환영합니다!"

이제 많은 관광객들은 아부 다비를 찾으며 세르히오 아구에로, 다비드 실바, 야야 투레 같은 맨체스터 시티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그런 그들의 하늘색 유니폼 뒤에 가려진 것은 아부 다비 민중들의 핏빛 신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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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사진으로도 느껴지는 아부 다비의 화려함.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것들이 숨어있다.

<가디언(the Guardian)>은 지난 2013년, “아부 다비가 맨체스터 시티를 이미지 세탁에 이용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런 아부 다비의 상황을 비판한 바 있다. 94명의 시민들이 강압적으로 체포되었고, 이 중 69명이 항소권을 박탈당한 채 장기형에 처해졌다. 그들이 부당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부 다비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고문과 불공정 재판 등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국제 앰네스티와 휴먼 라이트 워치(Human Rights Watch, HRW)를 통해 밝혀졌다. HRW의 UAE 담당자 니콜라스 맥기언은 아부 다비를 “인권의 블랙홀”이라 칭하면서 "프리미어 리그 클럽이 인권을 탄압하는 국가가 자신들의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한 브랜드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도구’로 전락해버린 축구

축구가 누군가의 브랜드화 도구로 사용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만수르 이전의 맨체스터 시티는 태국의 전 총리, 탁신 친나왓의 ‘도구’였다.?부정부패를 이유로 강제추방 당했던 탁신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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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친나왓그룹'에 부정한 특혜를 준 혐의로 실각하였다

그의 의도대로 맨체스티 시티를 통해 ?태국 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의 마음은 얻지 못했고, 결국 만수르에게 그의 구단을 매각하고 만다.

축구 구단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사용한 것은 탁신 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 를 살펴보자. 그가 소유한?민영방송사 미디어셋은 2008년 총선에서 일방적인 '베를루스코니' 밀어주기를 통해 선거판을 불균형하게 만들었고, 정권을 잡은 뒤에는 뇌물수수와 세금포탈 등의 범법을 저지르고, 오바마에게는 “선탠이 잘 되었다.”고 표현하는 등 옳지 못한 행보를 이어가던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위기의 그를 구원하는 것은 항상 AC밀란이었다. ?ⓒ연합뉴스

그리고 위기의 그를 구원하는 것은 항상 AC밀란이었다. ?ⓒ연합뉴스

지지율이 떨어지면 선수를 영입해 오고, 다시 안정화되면 스타 플레이어들을 팔아 넘겨 그것을 정치자금으로 쓰는 식이었다. AC밀란은 그의 정치를 위한 완벽한 ‘도구’였다.

 

축구라고 말하고 정치라고 읽는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축구가 정치가 되었다.

2014년 5월로 잠시 눈을 돌려보자,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월드컵을 한 달 앞두고 현대자동차 대리점이 테러를 당한적이 있었다. 성난?상파울루 군중의 이름은 <집없는노동자운동(MTST)>,?월드컵 대신 주거를 지원하라며 시위에 나선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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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개최하는 동안 브라질은 보안을 위해 수십억을 지출하였다.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차를 향한 시위대의 분노는 교육과 보건, 복지에는 투자하지 않은 채, 수 조의 돈을 ‘체육대회’에 쏟는 브라질 당국 때문이었다. 참고로 월드컵을 위해 브라질 정부가 쏟은 금액은 무려 12조 원에 달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을 동안 시민들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허덕이고 있었다.

2022년 열릴 카타르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우려가 끊이질 않는다. 고온으로 인해 선수들과 관중들의 안전에 의문이 제기됨에도 유치지 선정은 강행되었다. 카타르 월드컵의 건설현장에서는 이미 1,20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국제노동조합연맹(ITUC)는 월드컵이 개최되기 전까지 2,2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상황이다.

이 와중에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 후원 협상 과정에서 뇌물수수, 돈세탁 등 비리 의혹으로 ?FIFA 고위 임원 7명을 체포되었고, FIFA 블레터 회장 역시 사퇴한 상태다.

 

An artist illustration of Lusail City stadium, designed for the Qatar 2022 World Cup final, is seen in this undated handout photo released to the media on Thursday, Dec. 16, 2010. Qatar, holder of the world's third-largest natural-gas reserves, aims to transform itself into a global hub to compete with destinations like Dubai and Istanbul. Source: Qatar 2022 via Bloomberg EDITOR'S NOTE: NO SALES. EDITORIAL USE ONLY

카타르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루자일 시티 경기장. 꿈 같은 저 모습은 모두의 꿈이 맞을까.

 

그렇다면, 축구 보기를 그만두어야 하나요?

누군가는 이런 현실을 보며 질문을 던진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 중인 바르셀로나 CF를 제외하고는, ?축구를 보는 것이 죄가 되냐고. 순수한 마음으로 맨체스터 시티를, AC밀란를 좋아하는, 그리고 월드컵을 지켜보는 많은 축구 팬들은 어쩌면 좋냐고.

이런 질문에 대해?HRW의 UAE 담당자 니콜라스 맥기언은 명쾌한 대답을 준다.

“이것은 인권단체 뿐 아니라, 축구 팬들 역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입니다.
(That should be of concern to football supporters as well as human rights organisations.)”

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오히려 축구 팬들의 관심이 오히려 더 간절하다. 구단에게 팬들은 잠재적 고객이자 지지자들이니까. 기업에게는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

그러니, 눈을 감지 말자.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구단이 더 사랑스러워지는 것을 볼 권리가 있다.

핀에어09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90분동안 순수하게 뛰고 달리는 '축구'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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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우
Twenties Timeline 前 피처 에디터. 포섭되거나 배제되거나. 어떤 간택도 기대하지 않는 아주 평범한 시대의 평범한 얼굴. lupinnu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