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맥도날드’에 어서 오세요

팬들과 함께했던 구단이 프랜차이츠로 바뀌고 있다.

파랑새가 붉은 용이 되던 날

2013년 봄, 파랑새는 붉은 용이 되었다. 그 순간, 영국 웨일즈의 작은 도시는 분노로 들끓었다. 구단 카디프 시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버자야 그룹의 회장인 빈센트 탄이 카디프 시티를 인수했던 201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클럽을 인수한 후, ?500억 원이 넘는 자산을 투자했고, 카디프 시티는 51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해 프리미어 리그의 구단이 된다.

그러나 여론이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다. 빈센트 탄은 독단적으로 클럽의 엠블럼, 상징 색을 변경했다. ‘블루버즈(Blue Birds)’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던 구단은 졸지에 ‘붉은 용’이라 불리게 되었다.

하루 아침에 바뀐 팀의 정체성.

하루 아침에 바뀐 팀의 정체성.

빈센트 탄 구단주는 팬들의 비판에 이렇게 답했다.

“아시아에서 빨간색은 기쁨의 색이다. 중국 문화권에서 파란색은 슬픔의 색이다. 팀의 미래를 위해서 이러한 결단을 내렸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몇몇 팬들은 기분이 나쁠 것이다. 우리를 응원하지 않는대도 상관 없다. 우리는 다수의 의견이 중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동양에서의 상업적인 성공을 얻으려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카디프 시티는 경영의 효율성과 흥행을 위해서 구단의 역사와 전통, 정체성, 지역 팬들을 한 번에 저버렸다. 이에 분노한 한 열성팬은 ‘가디언(the Guardian)’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카디프 시티는 승격하지 않았다. 내가 응원하던 이들은 지난 여름 죽었다.”

 

정체성, 헐값에 팔리다

‘돈’ 때문에 구단의 역사와 전통을 배반하는 일은 이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사례가 더욱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바르셀로나는 ‘클럽 그 이상의 클럽’을 지향했다.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구단 운영에 있어 ‘상업성’을 최대한 배제했다. 그들의 유니폼에 다른 기업들의 것이 아닌, 유니세프의 로고가 새겨져 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2011년부터 그들의 가슴에서 유니세프가 사라진 대신, 카타르 재단이 들어왔다.?그와 동시에, 바르셀로나가 추구한 전통도, 정체성도 사라졌다. 대신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가 뒤따랐다.

MADRID (SPAIN), 10/12/2011.- Argentinian FC Barcelona striker Leo Messi gestures during their La Liga soccer match against Real Madrid played at Santiago Bernabeu stadium in Madrid, Spain on 10 December 2011. EFE/Emilio Naranjo

덕분에 바르셀로나는 팬들로부터 “돈에 영혼을 팔았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엠블럼 위에는 왕관이 그려져 있다. 1920년 클럽에 ‘레알’이라는 칭호를 내린 알폰소 13세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왕관에는 십자가가 붙어 있다. 스페인이 가톨릭 국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그 십자가가 사라졌다.?이유는 역시 ‘돈’ 때문이었다. 마르카의 보도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는 구단의 이름을 딴 10억 불 짜리 리조트를 건설하기 위해 UAE와 손을 잡으며 중동 지역 내 로고에서 십자가를 삭제했다. ‘투자’를 위해서 전통과 역사를 내준 것이다. 물론 이들이 얻어낸 금액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닌 역사와 전통에 비하면 헐값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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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가 바뀌었지만, 참 많은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

 

‘경영상의 이유’로 버려진 많은 것들

BBC 스포츠의 보도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 페레즈 회장은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이름을 ‘아부다비 베르나베우’로 변경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부 다비 왕족들이 운영하는 석유 회사 IPIC의 요청에 따른 결정이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감독을 하다가 구단주까지 오른 팀의 역사적인 인물이다.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평생을 함께한 선수이자 코치, 구단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구장명을 기업에 ‘팔아 넘기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은 알리안츠 생명에게, 아스날은 에미레이츠 항공,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지그날 이두나 그룹, 레스터 시티는 킹파워 그룹, 샬케FC는 펠틴스에게 이름을 넘겼다. 동시에, 이름에 새겨진 역사도 계약과 동시에 팔렸다. 구단과 함께 성장한 지역 팬들은 분노를 표했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없었다. 구단들은 ‘경영 상의 이유’를 대며, 지역 팬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경영상의 이유’와 ‘합리성’ 때문에 지역 팬들을 버린 결과는 어떠할까. 멀리 갈 것도 없다. K리그를 살펴보자. 안양 LG 시절, 모기업 LG그룹은 연고지를 서울로 옮기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팀 명을 FC서울로 변경한다. 이유는? 돈이었다. 부천 SK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연고지를 제주로 옮기면서?제주 유나이티드란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하지만 기존 팬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사랑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들에게는 북패(륜), 남패(륜) 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만이 남았다.

그토록 뜨겁던 안양LG의 팬들은 어디로 가버린걸까 ⓒ오마이뉴스

그토록 뜨겁던 안양LG의 팬들은 어디로 가버린걸까 ⓒ오마이뉴스

 

세계 어디서든 '똑같은' 팀을 즐기세요!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그의 저서 『맥도날드와 맥도날드화』를 통해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하면서, 패스트푸드의 규격화, 효율성, 합리성이 사회의 모든 곳을 지배하는 것과 그로 인한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축구도 맥도날드화 되어 가고 있다. 효율성과 합리성을 필두로 한 자본논리에 구단에 스며든 역사가 지워져 가고 있는 것이다.

뉴욕의 축구팀 메트로스타즈를 보면 '맥도날드화'의 끝을 목격할 수 있다. 2006년 레드불이 이 팀을 인수한 다음,?팀의 상징은 붉은 소로 정해졌다. 단순한 이유였다. '레드불'의 심볼이기 때문이었다. 팀 이름도 ‘뉴욕 레드불스’가 되었다. 그렇게 '메트로스타즈'의 역사는 남김없이 잊혀졌다. 오스트리아의 SV잘츠부르크도 마찬가지다. 레드불에게 인수된 이후. 엠블럼도, 유니폼도, 상징색도 '레드불'에 맞춰 통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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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다른그림찾기.

뉴욕 레드불스의 이웃 '뉴욕 시티'도 무척 흥미롭다. 뉴욕 시티는?맨체스터 시티, 멜버른 시티와 함께 만수르가 소유한 ‘시티 풋볼 그룹(CFG)’의 산하 구단이다. 이들 역시 같은 상징색을 공유하는 하나의 ‘풋볼 프렌차이즈’다. 그리고 CFG는 최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조만간 전세계 어디를 가든 같은 이름에, 같은 유니폼을 입는 구단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세계 어디를 가든 맥도날드를 볼 수 있는 것처럼.

효율과 합리면 다인가요?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얽매이는 대신 미래에 투자했기 때문에 그만큼 클럽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덕분에 노엘도 이제 맨시티를 보면서 화를 내지 않게 되었고.

덕분에 노엘도 이제 맨시티를 보면서 화를 내지 않게 되었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낸 성공은 과연 누구의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역사와 전통을 저버리고 얻어낸 승리 뒷편에는 클럽의 역사와 전통과, 또 그것을 응원해 온 팬들의 패배가 존재한다.?클럽들이 합리적으로 계산된 영업이익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것은 기업이다. 여기에 축구와 팬은 없다.

다행히도 카디프 시티는 팬들과의 씨름 끝에 올 1월, 다시 파랑새로 돌아왔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넘어간 것 같다. '맥도날드' 처럼 되려고 하는 구단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유니폼 위에 새겨진 로고의 값, 경기장 이름에 매겨진 가격, 관중석의 단가와 같은 계산이 맨 앞에 놓일 것이다.

그렇게 체인점이 되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역사와 호흡해온 팬들을 버리고 얼마나 큰 성공을 얻어낼 수 있을까. 과거를 팔아 산 미래는, 과연 오래토록 빛날 수 있을까.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분기에 32.6%의 손실을 기록한 맥도날드는 현재 실적이 저조한 220개 매장을 추가로 폐쇄할 방침이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분기에 32.6%의 손실을 기록한 맥도날드는 현재 실적이 저조한 220개 매장을 추가로 폐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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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우
Twenties Timeline 前 피처 에디터. 포섭되거나 배제되거나. 어떤 간택도 기대하지 않는 아주 평범한 시대의 평범한 얼굴. lupinnu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