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로 알아보는 이번 학기 그 교수님

운명은 원래 정해져 있다고 한다.

HOW TO PLAY

바야흐로 개강,
당신은 졸린 눈을 비비며 결석해 버릴까 고민한 한 강의의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왔다.
당신 앞에 강의계획서가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흰 것은 종이, 검은 것은 글씨.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그것은 카드의 뒷면에 불과하다.

자, 이제 그 강의계획서를 뒤집어라.
흰 여백을 응시했을 때 떠오르는 그림.
그 그림이야말로 이번학기 당신의 운명을 뒤흔들 교수님의 정체이다!!!

 

1. 신비사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온 우주여 도와주세요!

‘먼지 화법’이란 전하고자 하는 말을 공중에 흩뿌리는 그런 화법을 말한다. 강의실에 앉은 우리는 그분들의 말을 잡아채서 해석하기 위해, 나비처럼 날아 단어를 낚아채서 벌처럼 공책에 쏘아적기 시작한다.

교수님

음~~~~~~~ 그러니까 오늘 과제는… 음~~~ 사이즈는 15×15 정도… 아니, 15에서 한 뼘 정도 큰 그러니까 작업물이 정 가운데에 배치되게… 그쯤…? 아니 더 밑에? 여백을 3씩 주고 위 아래 중립 되게… 뭐, 왼쪽으로 조금 붙어도 되겠다? 그치?

이쯤 되면 질문하기도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물어본다.

학생1

교수님 이런 것도 쓰나요?

교수님

…어… 그런 것도 쓰고 이런 것 저런 것 뭐든 어떠하리? 이런 것도 하고… 하지만 그건 안 씁니다.

학생 일동

아… 아… 네?

그러다 보면 수업이 끝나 있다!

교수님

내일까진 완성물을 볼 수 있겠지? (인자한 웃음)

학생 일동

…………

멋진 디자… 인을… 위해.아… 아니… 하… ㅎ… 학.점.을.윟.해… 오늘도… 살아ㅏ…… 간다……
우리에게 언제나 배움을 전해주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교수님들 사랑합니다. 하… 하지만 교수님의 화법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너무 어려워요… 살려주세요…

 

2. 힘

내 수업이다, 내 맘대로 한다

정해진 수업 시간은 12시 50분에 끝나는 것이었다. 그 후 점심시간 40분을 가지고 1시 30분부터는 바로 또 다른 수업이 있었다. 그러나 그 날, 하필 다음 시간에 시험을 봐야 할 때, 우리는 1시 25분에 수업이 끝나는 아주 뭣같은 기적을 보게 되었다. 1시 10분부터는 교수님의 말끝마다 학생들의 비명에 가까운 한숨 소리가 코러스처럼 울려퍼졌지만 교수님은 놀랍게도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저언혀, 아주 개미 눈꼽만치도 무관심했다.

그 사건 하나라면 우린 이를 한 번만 갈았을 것이다. 갑자기 휴강 소식을 알려 먼 데서 통학하는 학생이 택시 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보강 날짜도 문자로 틱틱 통보되었다. 마치 공습경보 같은 수업 변경에 우리는 “소통! 제발 소통!” 절규했지만 교수님은 언제나

교수님

하시고는 그저 인자하게 수업을 진행하실 뿐이었다. 소통 대신 고통이 이어지는 한 학기였다.

 

3. 마법사

수면마법의 세계로…

분명 졸린 시간대가 아니다. 3~4교시. 11시쯤이면 졸린 눈꺼풀도 일어나고 먹은 게 없어 식곤증도 없을 때 아닌가. 그런데 그 수업은 그렇게 졸릴 수가 없었다.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와 마디 마디 사이의 긴 공백을 두는 화법. 오직 판서와 판서 읽기만이 존재하는 수업. 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독한 수면제를 들이킨 것처럼, 교수님이 칠판에 한 문장을 적으시고 나면 필름이 끊겼다.

수업이 끝나면 마법이 풀리듯 다시 정신이 돌아왔는데, 종이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내 필기들을 볼 수 있었다. 나란 녀석 참 애써주었지만 당연히 그 새 발자국 같은 것들을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의가 끝나고 하품을 하며 “강의 녹음해놓고 잠 안 올 때 들으면 딱이겠다.”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물론 녹음은 못 해봤다. 그 전에 잠들었거든...

 

4. 전차

오늘만 사세요? 너무나 거침없는 님이여

처음엔 마냥 즐겁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학교의 구리구리한 이면들을, 딱히 새로운 내용은 없더라도 ‘교수’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듣는다는 것은.

교수님

솔직히 이번 신임 총장 공약이 그게 뭡니까? 대학인지 기업인지 난 잘 모르겠어.
명예박산지 불명예박산지 그거 다 그냥 돈 벌려고 하는 거지, 여러분 대학원 가면 학위 그냥 나올 것 같아요? 아우 화가 나서 정말.

하지만 교수님에게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불안함은 여러분의 몫이 된다. 그래도 교수니까 괜찮겠지? 다 생각하고 하시는 말씀이겠지? 갑자기 학교에서 사라지거나 하시진 않겠지? 부디 오래오래 학교에 남아 계속 거침없이 말하실 수 있으시기만을 바라자.

 

5. 은둔자

그리고 아무도 교수님을 볼 수 없었다…

그런 속담이 있다. 수업계획서에 교수님 연락처는 학교 이메일밖에 없고 대신 조교 연락처만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면, 그 수업은 장차 큰 난리가 날 것이니 멀리 피난을 가야 한다고. C교수님의 대형강의를 들어가서 딱 그렇게 생긴 수업계획서를 봤는데, 그땐 반신반의했다. 그리고 옛말 틀린 것 하나도 없었다. 날 포함한 93명의 수강생들은, C교수님의 강의가 끝나갈 때쯤 되자, 오피스아워 때마다 연구실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 교수님은 항상 뭔가가 그렇게 바빴다. 수업이 끝나면 시선을 피하는 어색한 웃음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할 말(?)이 있는 앞자리 고학번들이 달려들어 붙잡아야 간신히 몇 마디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물며 성적 정정 메일을 읽겠는가. 중간고사 직후 두 번째 수업 때, 조교가 대뜸 앞으로 가더니, 우는 목소리로 공지했다.

조교

여러분 저도 사실 교수님 전화번호 몰라요. 저한테 연락처 그만 물어보세요.

그래서 심지어 나조차도 강의평가에서 ‘교수 태도 불성실’에 체크해야만 했던 C교수님, 올해는 어디서 어떻게 바쁘게 지내시려나.

 

6. 운명의 수레바퀴

과...과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3월 첫째 주. OT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교수님이 자꾸만 ‘수강정정 기간에 수정하세요, 후회하지 말고’라는 말을 던지시는 것 아닌가. 불안했다. 하지만 뭣 모르던 난 웃고 넘겼다. 괜히 그러시는 거라고. 내 꿀 공강을 위해서는 이 과목이 필요하다는 일념 하나로. 첫 단추는 그렇게 잘못 꿰여졌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했다. 하지만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한 나는 결국 교수님의 폭탄을 고스란히 맞았다. 어떤 폭탄이냐고? 바로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과제폭탄’이다.

심지어 이 폭탄에는 휴전도 없다. 쉼없이 계속 쏟아진다. 일단 매주 과제를 내주시는 것은 물론, 중간고사 기간이 되면 팀 프로젝트를 내주신다. 그렇다고 중간고사 시험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 팀 과제부터 개인과제 까지. 심지어 모든 시험을 놓치지 않고 모두 챙겨주는 교수님... 결국 모든 폭탄을 고스란히 맞은 나는, 오늘도 새벽 3시를 가리키는 시계 앞에 앉아 모니터를 두들긴다. 초반에 과제가 몰리면 그 이후에는 과제에 대한 부담이 덜하지 않느냐고? 모르는 소리. 이 교수님들에겐 자비 따윈 없다. 왜냐면 교수님들은 과제가 자신의 자비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교수님

여러분들을 위한 거예요. 하고 나면 뿌듯할 거야.

이게 거짓말이란 걸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이란…

처음엔 내 꿀 공강 시간을 위해 붙잡았던 수업이었지만, 이 수업 때문에 내 꿀 공강시간은 모두 날라 갔다. 공강 일이고 뭐고, 과제하느라 노트북에서 멀어질 날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한 학기도 내 눈 밑 다크써클엔 볕들 날이 없다. 그렇게 오늘 밤에도 나는 과제에 스치운다.

 

7. 정의

사명감을 가지란 말이다아!!!!!

교육 관련 과에는 이런 교수님 한 분 쯤은 다 있을 것이다. A 교수님은 교육에 대한 책임감이 엄청나신 분이다. 그래서 항상 교사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하신다. 개강 오티에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교수님

지금부터 내가 가르칠 건 문학 작품 외우기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만약 내 수업이 본인과 맞지 않는다면, 재수해서 다른 과 가라. 배우는 사람에게 이유도 설명 못 하는 사람은 교사가 될 자격이 없다.

한 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이렇게 매번 나는 쫄보가 되었다. 그런데 감사하더라. 수업이 끝날 때, 좀 더 예비 제자들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란 것 같아서.

 

8. 거꾸로 매달린 사람

수업 내용 필기는 교수님의 자서전

대학에 왔으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학문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야심차게 신청한 라틴어 수업. 교수님은 로마에서 라틴어로 가르치는 학교에서 박사 과정까지 밟으신 분이셨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공부 내력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었을까, 60분을 조금 넘기는 강의 시간에서 책을 넘기는 시간은 약 2%, 단어를 따라 읽어 보는 게 약 3%, 그리고 나머지 95%는 전부 교수님의 옛날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수업을 재밌게 듣게 하기 위해 당신의 소중한 추억을 조심스레 꺼내 놓는 줄 알았지만, 라틴어의 9가지 품사를 어떻게 익혔느냐부터 시작하여 박사과정 중에 만난 교수님들 얘기까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진도는 시험 치기 1주일 전에 벼락치기로 이루어졌고, 나머지는 전부 교수님의 옛날 이바구 시간이었달까. 결국 이 수업은 나에게 언어를 배웠다기보다는 교수님의 일기장을 원치 않게 읽어야 했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9. 죽음

그 강의에서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대학에 대한 많은 로망들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명강의에 대한 로망이다. 평소 학업에 충실하지 못해서 쉬운 수업도 돌아가 재수강하는 나 (주제에) 또한 그런 로망이 있었다. 전공 강의평을 보니 다들 입을 모아 ‘진짜 명강, 성적은 잘 받을 생각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복학 버프를 받은 나는 명강의와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졌다.

수업은 정말 좋았다. 강의력, 비판적 시선, 학생들에 대한 관심까지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수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수업은 명강의 삼박자가 아닌 헬수업의 삼박자 또한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한 학기 내내 딴 수업은 쳐다도 못 볼 정도의 과제량, 시험은 한 학기 동안 배운 모든 것을 글 하나에 녹여 써야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해야 할 모든 것을 다 해도 시험이 D맞을 글이면 가차없이 D를 주는 냉정함.

실제로 한 친구는 중간에 정말 열심히 했지만 D를 받고 기운이 빠져 기말에 재수강하겠다고 편지를 썼더니 시험 다음날 바로 F가 떠서 재수강을 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성적표에 새겨진 C+을 고이 안고 가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청강하러 갈게요, 교수님.

 

10. 악마

그의 모독은 나의 멘탈에 작렬하였다

그 교수님 수업이 있는 날이면, 여학생들은 모두 워터프루프 마스카라를 하고 왔다. 첫 수업 후 다들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강의실을 나갔기 때문이었다. 강의실 문을 우리는 ‘지옥문’이라 불렀고, 그 강의실 앞 복도를 ‘통곡의 벽’이라 불렀다. 글을 쓴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지만, 글쓴이가 되어 마음에 뺨 맞는 일은 배나 힘든 일이었다.

교수님

단 한 번이라도 종이가 아깝지 않은 걸 좀 써 와 봐! 너는 무슨 머리에 (지나치게 과격한 표현이어서 삭제했습니다.)

종이가 흩날리면 학생들은 일제히 휴지를 찾아 가방을 뒤적였다. 비속어 좀 많이 써 봤다 하는 친구들도 그 교수님의 문법적·문학적으로 완벽한 비수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 불려 앞으로 나가는 이에게는 모두가 동정과 공감의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당연히 그 강의를 함께 들은 친구들은 둘도 없는 베프가 되었다. 매일같이 잔을 기울이며 오열했으니까.

나와 친구들 일동

제발 나 말고 내 글을 좀 욕했으면 좋겠어!

 

11. 달

갈 길을 비춰주시는 멘토

졸업전시는 모든 미대생들의 기회이자 고통이다. 1년 동안 자신이 원하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 기회이면서, 그만큼 작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제 선정부터 제작까지 끝없이 자신을 갈아넣어야 한다. 내가 작년에 바로 그 경험을 했다. 예정된 전시일은 2달 남았는데, 작품 방향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하고, 매주 선생님의 평가 시간에 ‘너무 부족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었다. 잘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하지만 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대로 졸업을 포기해야 하는가. 조언은 뜻밖의 곳에서 날아왔다. 같은 학기에 청강하던 2학년 전공수업인 <타이포그래피> 수업. 매주 과제물을 벽면에 붙여놓고 크리틱(집단토론 형식의 평가)을 받았다. 완성도 못한 과제를 붙이고 잔뜩 위축된 채로 평가를 기다리는데, 선생님은 뜻밖의 평가를 내렸다.

교수님

학생은 너무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서 근육을 마음껏 써 보세요.

그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일단 고민을 털어놓고 당장 할 수 있는 작업을 떠오르는 대로 시작했다. 졸업전시 작품도, <타이포그래피> 과제도, 일단 시작하자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둘 다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조언이 없었다면, 졸업도, 인생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했을 것이다.

 

12. 세계

시야를 넓혀주신 분

강의명이 ‘특수아동교육’이어서 정말 그것만 배울 줄 알고 갔다. 사실 별 관심도 없어서 첫 주 수업도 빠졌다. 그런데 정작 수업 내용은 어떻게 아이들을 더 잘 대할 수 있는지, 아이들이 싸우고 화내고 속상해할 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선생님, 아니 ‘친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수업이었다. 엄청나게 전문적인 지식이 쏟아진 것도 아니었다. 늘 자신이 두 아이를 키웠을 때, 학교에서 있었던 일 얘기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통해 울림을 주셨다. 내가 앞으로 걸어야 할 ‘교사’라는 길이 얼마나 작은 것들에 귀기울여야 하는 일인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가르쳐 주셨다.

교수님

유명한 댄서 한 명이 있어요, 그 사람도 ADHD였는데, 어렸을 때 엄마가 정신병원에 데리고 갔대요. 걱정되니까. 그랬더니 그 의사선생님이 이 꼬마를 상담실에 데리고 가서는 음악을 틀어줬더라는 거에요. 그리고 그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대요, ‘부인,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이 아이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 아이는 댄서에요.’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을 해 봤어요. 만약 이 댄서가 이 의사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교수님은 내게 댄서를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셈이었다.

 

13. 절제

일찍 끝낼 줄 아시는 분!!!

교수님이 한참 설명을 하시다, 약간 긴 앞머리를 고개를 흔들어 넘기시며 칼같이 날렵한 동작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하신다. 그 순간 강의실에는 심장 멎는 소리가 가득해진다. 여학생들은 물론이고 남학생들까지도 약간 인상을 쓰시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시는 그 모습에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한 번 몰아쉴 수밖에 없다. 교수님의 조각 같은 턱선과 미간 주름, 그 다음에 이어질 한 마디를 우린 알고 있다.

교수님

제가 오늘 가야 하는 회의가 있어서, 이 다음 부분 설명하다가 중간에 끝날 것 같네요, 그럼 별로잖아요? 그냥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수강생 일동

아아~~~아쉬워요!!!

교수님

죄송해요 여러분, 그럼 다음 시간에 봅시다, 점심 식사 즐겁게 하세요.

심, 쿵, 심, 멎. 그렇게 우리 모두는 퇴장하시는 교수님의 등에 연모의 눈빛을 던지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14. 연인

내가 가르치는게 1순위입니다. 알겠어?

첫 주부터 불안하다. 교수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자부심이 서려 있다.

교수님

아마 이 분야에서는 제가 대한민국 최고로 많이 연구했을 거예요. 요즘 뭐, 인문학 인문학 하면서 뜬구름 잡는 과목들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그때부터 과목에 대한 교수님의 프라이드에 비례하는 양의 퀴즈, 레포트, 팀플레이를 동반한 발표가 폭풍 같이 밀려온다. 그 가운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은근히 자기 과목을 다른 과목보다 가치 있다고 여기는 듯한 교수님의 언사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것뿐.

세상에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어째서 한 학기 내내 당신의 것에만 매달려야 한단 말인가!

물론 속으로만 골백번 외친다.

 

15. 바보

허물 없고 권위 없이 담백하신, 친구같은 분

교수님

오늘 불금인데 나만 약속 없음?ㅠㅠ 심심한 사람 6시까지 XX역으로 오삼.

친한 친구 사이에서나 주고받을 것 같은 위의 카톡은 50대 중반의 전공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교수님과는 여름방학 때 세미나를 함께 하면서 친해졌는데, ‘탈식민주의 세계 여성문학’이라는 딱딱한 주제의 세미나가 지금껏 기억에 남는 것은, 교수님의 뒤풀이 하드캐리 덕분이다.

당시 교수님은 카톡을 처음 배우고 계셨는데, 우리는 교수님께 카톡 문구 옆에 달린 “1”이라는 숫자의 의미, 이모티콘 쓰는 법 등을 열심히 가르쳐드리곤 했다. 그리고 한창 뒤풀이가 진행되던 중, 모든 학생들의 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폰에 뜬 카톡 창에는 앙증맞은 오리 이모티콘과 함께 ‘파닭 한 마리 더 시킬까?’라는 교수님의 카톡이 와 있었다. 졸귀 그 자체다.

이뿐만 아니다. 공부하는 게 재밌으시냐고 묻는 학생들의 물음에는 “어휴, 미친 소리지.”라고 대답하시고, 자기는 지금 태어났으면 교수는커녕 밥벌이도 제대로 못했을 거라는 자학개그를 선보인다. 또 아들과 카톡한 내용을 보여주시며, 아들의 입장에서 좋은 아빠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하나씩 물어보신다. 그게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술값의 전부다.

가르치는 아빠, 교수가 아니라 아들의 입장에서 좋은 아빠, 학생의 입장에서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 교수님이라고 하면 늘 다가가기 어렵고, 차가울 것이라고 생각하던 나의 편견을 깨준, 담백한 친구 같은 분이셨다.

 

16. 심판

발표수업 100%, 그러나 깨어 있으라!

첫날부터 수상했다. 강의계획서를 칠판에 붙여놓고 주제를 골라 팀을 구성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그 강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학생의, 학생에 의한 수업이 되었다. 물론 교수님의 피드백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발표가 진행되는 내내 교수님은 꾸벅꾸벅 헤드뱅잉을 하셨고, 무안해진 발표자가 입을 다무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발표가 끝나면 우리는 교수님이 마치 좀비처럼 일어나 먼 곳을 노려보는 듯한 눈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듣게 되었다.

교수님을 어떻게 깨울 것인가가 역할 분담 다음으로 중요한 회의 내용이 되어갈 무렵에는 우리 모두가 같은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발표 내용을 기준으로 출제한다고 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출제를 하실까? 중간 시험 이후 그 미스터리는 풀렸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출제됐던 것이다. 발표 ppt에 손을 갈아넣고 C+를 받은 친구는 강의평가에 이렇게 적었다고 했다.

친구

교수님께선 마치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 같으셨습니다.
(※디케는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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