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서점이 있었다] ② 서점에 대한 아주 사소한 기억들

기억 어딘가에 숨어있는, 서점이란 공간의 매력.

가끔은 아찔해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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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그때는 지금보다 어렸고, 지금보다 오래 헤맸다. 늦은 밤 학교를 마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길, 내일까지 준비해야하는 문제집을 사러 동네 서점에 들렀다. 두꺼운 문제집을 버겁게 안고 계산대로 향하다, 파란 표지의 그 책을 만났다. 그 책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던 어린 나를 제목만으로 붙잡아줬다. 홀린 듯 집어들어 문제집과 함께 계산했다.

빡빡한 학교 수업에 쉬는 시간을 쪼개 그 책을 읽었고, 다 읽은 후에는 며칠이고 두근거렸다.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 저자를 만나 참을 수 없는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고나서야 나는 비로소 조금 덜 헤매게 되었고, 조금은 자라게 되었다. 만약 내가 그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애초에 그 서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을까. 아니, 지금의 내가 될 수는 있었을까.
(글 / 문여름)

그 서점을 읽고 싶었던 그때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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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발견한 시장을 무심코 걷다가 빨간 간판을 발견했다. ‘헌책방’ 이라는 무심한 세 글자가 나를 붙잡았다. 시장골목에 있는헌책방이라니! 너무도 낯선 광경에 무언가 이끌리듯,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책방으로 들어갔다. ?겨우 한 평이 넘는??오래된 한옥집. ?그 좁은 공간에 나와 함께 간 후배와 가게 주인까지 세 명이 들어서 있으니 책방은 꽉차버렸다.

책방을 만난 기쁨도 잠시, 좁은 책방 뒤편으로 낯익은 말다툼이 들렸다. 이윽고 아들은 뛰어나와서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며 돈을 달라고 하다가, 이윽고 다시 뛰어 나갔다. 어떻게 책방을 운영하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운영해왔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었지만, 이런 분위기에 손님을 달가워 할리 없을 거 같아 책방을 조심스럽게 나왔다. 책방과 삶의 공간이 뒤섞여 있는 그 오래된 한 평짜리 한옥집 헌책방은 오래된 가족의 무수한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글 / 한지선)

나의 목마름은 다른것이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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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금보다 더 좋아하던 시절, 사흘에 두어 끼 정도는 점심을 참아야 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한계가 있고, 대형 서점의 책들은 내 주머니를 언제나 가볍게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몇만 원으로 일주일을 버텨야 했던 대학생에게 책을 산다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같이 밥을 먹자는 친구들에게 습관처럼 바쁘다고 말해야 했다. 그때마다 마음 한켠이 쓰려왔다.

그러던 어느날, 알바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운명처럼, 동네 골목에서 중고서점을 발견했다. 호기심으로 문을 열었다. 복잡하지 않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처음 집은 책에 적힌 가격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배보다 마음을 곯던 나에겐 그렇게 위로가 되었던, 어린 날의 아련한 나의 기억.
(글 / 이찬영)

내 어린 날의 두려움을 달래던,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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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 먹는 게 싫다. 8살 때부터 그랬다. 9살이 되는 게 너무 싫었다. 시간이 흐르는 게 너무 아쉬웠다. 흘러가는 세월을 그 작은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순간, 차오르는 억울함에 배겟솜을 눈물로 적셨다. 두 손 모아 하루가 천천히 가게 해달라고 빈 적도 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 서러움의 이유만은 아직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냥 끝이 있다는 걸 막연히 알게 된 순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도 짧을 거라는 불안이 컸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동네 서점에서 친구를 만나게 된다. 시간에 집착하지만,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 그들과 같은 시간을 가졌지만, 그것에 구애받지 않았던 '모모'가 모든 사람들의 시간을 구하는 내용의 책이었다. 시간에 그렇게 집착했던 어린 아홉살은, 꽤 두껍던 그 책을 항상 책걸상 밑에 넣어두고 몇 번이고 다시 읽곤 했다. 그러던 꼬마가 어느새 스무 살이 넘는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흘러가는 시간은 ?불안하다. 하지만 그 어린 날의 책방에서 발견한 모모의 말 처럼, 비록 시간은 흐르지만, 그 시간을 그려가는 능력이 생겼다고 믿는다.
(글 / 임아연)

내 기억 속의 당신은 그렇게 남아버렸네

img_2912361_1230594_14취업은 힘들어도 사랑 앞에서는 당당하자고 결심하던 대학 시절, 우연히 간 모임에서 그를 만났다. 자소서를 쓴다고 밤을 샜는지 피곤한 기색이었다. 마침 나도 어느 기업의 자소서를 쓰느냐 매일 밤을 새던 중이었고, 우리는 원래 알던 사람처럼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우연이 우리를 운명으로 묶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직도 ‘노팅힐’을 떠올리면 그가 생각난다.?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남자 주인공이 자신이 운영하는 책방에서 유명 여배우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던 그 영화 말이다.?단순히 그가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몇번이고 ?영화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노팅힐’을 참 좋아한다고 얘기하고 싶은 그는 이제 곁에 없다. 다만 그렇게나 닮고 싶었던 영화 속의 달콤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시작되었던 서점이 내 맘 속에 여전히 남아 있을 뿐이다
(글 / 한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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