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받은 주인공들, 알고보니 나의 미래?

‘부산행’은 재난 영화가 아니라 다큐였던 것이었다…

* ?영화 <부산행>과 <터널>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아하는 영화는 혼자 극장에 가서 챙겨본다. <부산행>과 <터널>이 그랬다. 좀비들과 함께 부산행 기차를 타거나, 갑작스런 터널 붕괴 때문에 자동차 안에 고립되는 설정부터가 흥미로웠다. 거기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등장하고, 감독의 이전 작품도 믿을만 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지금, 나는 아직도 어두운 영화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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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재난영화로 <해운대>가 있다. 거대한 천재지변의 분노 앞에서 인간은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 하지만 <부산행>과 <터널>에서 벌어지는 재해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재난 속에서 당연히 작동될거라고 믿었던 시스템은 붕괴되고, 구조는 여러가지 ‘어른의 이유’로 지체되거나 실패한다.

그 와중에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알지 못한다. 뉴스에서는 폭동을 성공적으로 진압 중이니 안심하라는 앵커의 멘트가 앵무새처럼 나오고,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좀비의 습격을 받고 만다.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친구를 향해 야구베트를 내려치거나, 개밥을 주워먹으면도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 개인들이다.

아무도 구해주지 않기에, 모두가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영화 '부산행'

아무도 구해주지 않기에, 모두가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영화 '부산행'

하지만 <부산행>과 <터널>이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까닭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처절한 묘사가 충격적이라서가 아니다. 이 영화들은 몇백분동안 격렬한 재난을 치열하게 비추다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재난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극장에 불이 켜지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시즌 2는 관객들의 몫이다. 주인공을 대신해서 영화의 후유증을 대리해서 겪어야 한다.

인천행 1호선을 타던 도중 기차의 전기가 잠시 차단된 일이 있었다. 그 잠깐의 순간 동안 창밖에 좀비가 날뛰는 광경을 상상했다. 추석에 큰집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수많은 터널들을 거쳤다. 주황빛 불빛이 괜히 깜빡거리는 상상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만약에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진다면, 과연 누가 내 이야기를 주목할까??

그리고 지난 9월 12일, 관측 이래 최고 수준의 지진이 전국을 울렸다.

경상북도 지방을 비롯, 전국에서 느낄 수 있는 큰 지진이었다.

경상북도 지방을 비롯, 전국에서 느낄 수 있는 큰 지진이었다.

여름 내내 사소하게 울려대던 재난문자는 5.8의 진도 앞에서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연착한 KTX열차에 치여 작업자 2명이 숨진 것이다. 작업자들은 코레일 외주업체 직원들로, 시스템에 따라 연착 사실만 제대로 공지 받았어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사고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 조용히 움직일 뿐이다. 접속되지 않는 국민안전처 홈페이지 대신 먼 동쪽의 도쿄도에서 발행된 <도쿄방재> 메뉴얼을 찾아보고, 지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정규 방송을 송출하는 지상파를 끄고 구글에서 생존키트를 검색한다.

더 이상 주인공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으로는 이 영화들에 대한 감상을 끝낼 수 없게 되었다. 은막 속에서 ?펼쳐진 주인공들의 몸부림은 일종의 예언이 되었다. 다만 남은 바람이 있다면, 예고편이 지나가기 전에, 실제로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누구라도 본편에 대한 상영을 막아줬으면 좋겠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니까.

아마,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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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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