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 1. 그리고 땡. 연말 카운팅이 이렇게 암울한 건 처음이었다. 그렇다. 나는 해가 바뀌고 무려 24살이 됐다. 이십 대 중반으로 진입,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둔 진짜 취준생이 된 것이다. 이불 속에서 귤을 까먹으며 맘껏 TV 보던 시기는 끝나 버렸다. 아직 번듯한 자격증 하나 없는 내가 벌써 취준생이 됐다니.
마음이 급했다. 당장 토익 학원을 검색했다. 신촌에 있는 한 유명 학원에서 ‘한 달 끝장 반’을 일시불로 긁었다. 그제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안정됐다. 그렇게 겨울방학 동안 내내 아침 6시에 일어났다. 꼬박 한 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긴 줄을 서가며 토익을 배우러 다녔다.
“수업 중에 질문 하지 마세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질문을 마다하는 선생님은 처음봤다. 강사는 수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질문도 토론도 없는 수업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빨리 감기 2배속을 한 속도로 말하는 선생님의 강의. 묵묵부답으로 칠판과 책상만 쳐다보는 학생들. 닭장 속의 닭처럼 빽빽하게 강의실을 채우고 있는 책걸상들과 검은 정수리들을 매일 보면서 지냈다.
학원을 다니는데 돈이 많이 들었다. 여러 번 봐야 성적이 오른다는 토익은 시험 응시비가 5만원에 가까웠다. 토익 학원비와 교재비는 말해봐야 입이 아프다. 취준이라는 미명 아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르바이트를 안 한지 오래였다. 염치없지만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 자연스럽게 친구와의 만남도 줄였다. 시간도, 돈도, 마음의 여유도 사라져만 갔다. 모든 계획은 ‘시험이 끝나면’ 으로 한 발짝 미뤄뒀다.
"너 문과에다 여자잖아"
최소한 950 정도는 되어야 붙을 수 있다고, 대기업에 취직한 사촌 오빠는 말했다. 폄하나 멸시가 아닌 건조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내 성적은 900점은커녕 800점 언저리에서 맴돌기만 했다.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취업이라는 게임에서 고작 스테이지 1단계에서 죽어버린 기분이었다. 스펙에서도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토익을 깨지 못하다니.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앞으로 취준을 하면서 겪을 수많은 문제들을,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자꾸 '헛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게 공부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강사님이 알려준 스킬대로 정답을 찍고, 정답률이 높은 보기를 외울수록 마음이 허했다. 영어 실력과는 너무 멀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당연히. 재미도 없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고,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배우던 전공수업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 그럴때마다 토익을 붙잡아봤지만 제대로 공부했다 말할 수 있는 날은 손에 꼽았다.
“토익을 포기하면, ?취업을 포기하는거죠"
같은 토익 학원을 다닌 후배가 한 말이다. 그렇다. 여전히 많은 회사들은 토익 점수를 지원 필수 요건에 포함하고 있다. 당장 일주일 전 채용공고가 뜬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탈출하고 싶다고? 그러면 토익을 해야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멈추기로 했다.
토익이 아닌 다른 것들이 생각났다. 친구들과 읽기로 한 책들이 아직 많이 쌓여 있다. 올해 보기로 한 영화 리스트들이 노트에 빼곡히 쓰여 있다.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을 담은 글들이 남아 있다. 어차피 고만고만한 토익 성적을 취득할 바에, 많은 콘텐츠들을 보고, 글을 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이다. 24살을 먹고도 내세울 영어 성적 하나 없다는 사실이 날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데미안>에서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모든 인간의 삶은 각자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토익을 그만두는 지금의 선택이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모두가 나를 위한 길이 될 것이다. 지금의 선택이 내 꿈을 이루는 데 훌륭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일단은 좀 더 믿어보고 싶다.
주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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