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돌을 좋아하는 나는 오늘도 괴롭다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어쩜 그럴 수 있을까

"당신은 평생 이 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을 알지 못할 거야"

한 아이돌을 사랑하는 덕후의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 <환상통>에 나오는 대사이다. 그깟 아이돌, 뭐가 그렇게 좋냐고? 좋다. 바라만 봐도 좋다. 쓰는 시간과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덕분에 힘든 현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 만큼 좋다.

그러나 애정을 쏟는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덕질이 언제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가 덕질하는 상대가 여자아이돌이라면? 멘탈이 쿠크다스처럼 산산조각 나는 일이 부지기수다.

1. 웃으면 여우, 안 웃으면 태도 불량

방송에 집중해도 여우짓이라니, 뭐 어쩌라는건지...

간만의 예능 출연이었다. 친한 동료 연예인이 함께여서 그런지 예전보다 편해 보이는 내 새끼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방송 후, 몇몇 댓글이 눈에 띈다. 억지로 눈웃음을 짓는다며 끼를 부린다고 했다. 불과 몇 달 전엔 방송 중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며 인성 궁예질을 당한 내 새끼였다.

방송태도에서 자유로운 여자아이돌은 거의 없다. 너무 열심히 웃으면 가식적인 여우가 되고 , 혹시나 눈물을 보이면 오바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나치게 열심히 하면 어떠냐고? 억척스럽거나 기 세다는 소리가 대번 날아온다. 그렇게 난무하는 궁예질 속에 팬들의 멘탈은 오늘도 부러지고...

2. 열애설, 전쟁의 서막

아이돌 열애기사에 달린 충격적인 댓글

검색어 1위를 했다. 활동도 안 하는데 지금 왜? 불안해진다. 좋지 않은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열애설이 터졌다. 그래, 다 큰 성인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애써 멘탈을 잡아본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격하기 그지없다. 양쪽?팬덤들의 방향 잃은 분풀이가? 쏟아진다.

갑작스러운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쟤도 결국 남자 조건 보고 만난다는" 말을, 정말 팬이라면 할 수 있는걸까? 알지도 못하는 남의 사랑을 왜 이리 쉽사리 매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 새끼가 저런 말을 보기라도 할까 걱정이다.

3. 성형외과 학회에서 나오셨나봐요?

와우...뭘 그렇게 집요하게 분석하시는지.....

오랜만의 컴백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사를 확인한다. 맨날 봐도 어쩜 이렇게 매번 예쁜지 모르겠다. 뿌듯한 마음으로 기사를 끄려는 찰나, 실수로 댓글을 봐버렸다. 대번 기분이 나빠진다. 눈 집고 코를 다시 했다니, 완전 다른 다른 사람이 됐다는 반응들이 가득하다.

무슨 성형외과 케이스 스터디를 보는 기분이다. 울적한 마음에 이번 신곡을 스트리밍한다. 고민 끝에 발표했을 앨범 컨셉과 노래들이 더욱 선명하게 들려온다. 노래하는 사람인 만큼, 사람들도 이런 부분에 더욱 집중해주면 좋겠다. 그건 너무 큰 욕심일까?

4. 내 새끼 굶는것도 마음이 찢어지는데

사람의 식단이 아니다

신곡 활동을 시작되었다. 내 새끼 볼살이 쏙 빠졌다. 건강은 괜찮은걸까? 마음이 너무 쓰인다. 하지만 기사 제목에는 ‘리즈 갱신’, ‘역대급 비주얼’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칭찬은 듣기 좋지만, 건강과는 거리가 먼 '다이어트 식단'을 보면 또 마음이 아프다. 아니, 사람이 이것만 먹고 어떻게 살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불만이 많다. 가슴이랑 엉덩이가 다 사라졌다니, 살 빠지니 얼굴이 늙어보인다는 품평이 이어진다. 분명히 활동 전에는 다리가 두껍다며 아이돌 몸매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당사자는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5. 나는 직캠이 두렵다

여돌 직캠의 흔한 댓글

비가 많이 왔던 날 야외무대에서 진행됐던 공연이었다. 영상 속에는 비에 젖어 속옷이 비치고, 안 그래도 짧은 치마가 접혀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눈이 오고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열심히 웃어 보이는 내 새끼가 있다.

유튜브를 본다. 척박한 환경에서 프로정신을 뽐낸 내 새끼의 모습은 없다. 직캠이라는 영상은 아름다운 춤선을 잡기보다는, 저급한 각도와 부분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있었다. 좀만 더 하면 보이겠다거나, 오늘은 너로 정했다와 같은 소름끼치는 반응들이 인기 댓글을 차지하고 있다. 아무리 오래 덕질을 해도, 이 광경은 조금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되는거 아닌가요"

팬미팅이 있는 날이다. 어떤 썰이 올라왔나 서치를 하다 깜짝 놀랐다. 누가 멤버 한 명을 억지로 꽉 껴안고 놔주질 않았다고 한다. 공연을 해도 팬미팅을 해도 팬들의 근심과 걱정은 끊이질 않는다. 유독 여자 아이돌에게 ‘일부’ 팬들의 ‘갑질’이 심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과 애정을 쏟았으니 이런 행동쯤은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얼마나 오래 좋아했든, 얼마나 많은 돈을 썼든 사람이 사람에게 함부로 대해도 될 권리를 갖는 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인데. 사람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어째서 이런 일은 반복되고야 마는 것일까.

 

실제로 아이돌 중에선 정신 건강으로 연예 활동을 중단한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6월 걸그룹 AOA 탈퇴를 선언한 초아를 비롯해 오마이걸 멤버였던 진이, 크레용팝의 소율 등이 우울증과 거식증,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팀 활동을 중단했다. 초아는 팀 탈퇴 당시 “불면증과 우울증을 치료하고자 약도 먹어보고 2년 전부터 일정을 점점 줄여왔지만, 피로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모든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화려한 무대 뒤... ‘마음의 병’에 멍드는 아이돌>
한국일보 17년 12월 20일 기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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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주

박헌주

Twenties Timeline 에디터. 채우고 쌓는 중입니다. 가볍지 않은 진짜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