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언론포럼 ‘독박’을 다녀오다

8월 말에 열린 대학 독립언론 포럼 행사를 보름이 지나서야 올린다.

여기가 독립언론 포럼이라는 데가 맞습니까요?

Twenties Timeline은 20대의 누군가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글을 받고 쓰고 가끔은 인터뷰도 나가는그런 웹진이다. 딱히 저널리즘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는 ‘언론’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도 썩 틀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편집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얘, 관악도서관 대회의실에서 내일모레 일요일 낮에 독립언론 포럼이라는 것이 열린다더라.”
“독립언론 포럼이라굽쇼? 그것이 무어래요?”
“학보도 교지도 아니지만 학교 안팎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발행하는 것을 요새는 독립언론이라고 한다더구나. 너 성균관대 고급찌라시라든가 중앙대 잠망경 같은 것 못 들어보았니.”
“어이쿠, 소문이야 익히 들었읍지요. 그이들이 무슨 회의 같은 것을 주관한답니까요?”
“그렇단다. 우리도 20대 매거진이란 것을 하고 있고, 그분들도 20대인 자기네 학교 학생들 이야기를 한다니 신경이 좀 쓰여야 말이지. 그들이 뭘 고민하고 뭘 자신있어하는지를 살펴보아 기사로 쓰면 좋겠다. 그러니 네가 좀 살펴보고 오지 않으련.”
“뉘 명이라고 거역하겠습니까요.”

왼쪽 발목에 깁스를 두른 지 3일차 된 그 일요일에, 필자는 팔자에도 없는 6511번 버스를 타고 관악도서관 방면 언덕을 올랐다. 4층 대회의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포럼은 20분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가뜩이나 약속 장소에 늦게 가서 쭈뼛거리는 것 싫어하는 성미인데 양 옆구리에 목발까지 딸깍거리며 앉으려니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 싶은 심정이다.

자리에 일일이 붙어 있던 이름표.

앉아서 부채를 꺼내 땀을 식히고 침착을 되찾아 주변을 둘러보니 참가자 모두가 안내데스크에서 지급받은 명찰을 달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전국 팔도 대학교 교지 관계자 총회 같은 것에 온 줄로 착각할 뻔하였다. 아니면 무슨 기자회견인가 싶었다. 배치를 보면 꼭 그렇다. 정면에는 2인용 간이탁자 앞에 앉은 두 명의 발제자, 그 앞으로 오와 열을 맞추어 빈틈없이 자기 지정석에 앉아 노트북 자판과 취재수첩과 ‘발제자료’를 바라보고 있는 기자님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아, 이 자리. 삼삼오오 둥글게 모여 앉아 하하호호 웃으며 웰치스에 참크래커 찍어 먹는 식의 포럼은 아니로구나.

그리고 포럼이 진행되지만

게다가 웬걸, 오고가는 이야기도 학술적이고 고답적이기 짝이 없다. 고급찌라시 측 발제자님께서는 “최초의 독립언론은 1879년에 창간한 숭실대의 숭대시보로 알려져 있다” 하시며 미국의 학내 독립언론이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장황하게 소개하시는데 ‘어휴~ 쇤네는 그런 것 은 잘 모릅니다요’ 생각하며 꾸벅꾸벅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데스크에서 나눠준 유인물을 펼쳐서 보니 오잉? 거기 써 있는 발제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들 그대로 읽고 계시는 것이었지 않겠는가? 점점 더 겁이 나고 알쏭달쏭해졌다. 어… 이거?신방과?스터디나 토론 수업 같은 것 아니지? 나만 빼고 다들 발제문 읽어와서 이제부터 전공서적 꺼내들고 토론한다든가 그런 거 아니겠지?

당시 나눠준 자료 일부.

뭔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위화감은 자유토론 순서가 되자 절정에 달했다. 지금까지 발제를 한 네 명의 진행자가 앞에 앉았고, 그들의 뒤에 프로젝터로 비추어지고 있는 화면에는 두 개의 질문이 나와 있었다.

“독립언론이 독자나 제작자에게 무용(도움이 안 됨)한 현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지와 학보, 독립언론은 서로 어떻게 차별화해야 하는가?

어..그러니까 뭐 이런 게 대토론회 포럼의 핵심 주제인가? 필자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열이면 열 모두가 그 준비되어 제시된 주제를 가볍게 건너뛰고 가자는 분위기였다. 첫째 질문에 대해서는 패널 네 명이 하나같이 “뭐, 그걸 어쩌겠어요, 원래 언론이 다 힘들어요” 하는 정서적 합의를 보여줬고, 두 번째 질문은 아예 논의를 심화하지 않았다. “이미 차별화가 충분히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파이를 키우는 거겠죠.”

상황이 이쯤 되었는데도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독박’ 주최측은 “아뇨, 근데 어떤 문제가 있느냐면, 저희가 이거(독립언론)를 하는 게 저희 장래에 도움이 안 돼요. 막말로.” ?라는 말로 제시한 질문에 답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었고, 진행자는 패널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한 다음에야 청중석에 ‘자유토론’의 기회를 넘기는 대본대로 진행하려 하고 있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참가자들이 손을 들고, 일어나고, “진행자님 죄송한데 자유토론이니까 전체적으로 자유롭게 발언을 하면 안 될까요?” 제안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자기를 “평범한 독자”라고 밝힌 한 여성분이 “솔직히 매체 종류를 떠나서 다들 독자가 궁금해하는 학교 주변 월세 시세 같은 것은 알려주지 않는다”라고 발언하는 말에 이어 나도 엉겹결에 손을 들어버렸다.

조심스럽게 한 말씀 올리자면 말입니다

이 단락에서는 그때 필자가 뭐라고 발언했는지 꼼꼼히 옮겨 적기보다는, 대본도 없이 2분간 이 말 저 말 들먹이면서 피력하고자 했던 의견을, 좀 침착을 되찾고, 제대로 다시 전해 보고자 한다.

필자가 “하다못해 용도의 차원에서도 세 가지는 서로 완전히 차별화가 돼 있어요. 학보는 동아리방에서 짜장면 먹을 때 깔개로 쓰이고, 교지는 냄비받침으로 쓰이고, 독립언론은 뭐 잡담할 때 얘깃거리고요. 딱 떨어지잖아요.”란 말로 본의 아니게 웃음을 드린 것은 사실이나, 그 한 마디 때문에 나머지 제언과 당부가 다 잊혀질까 그게 걱정스러울 뿐이다. (사실 이 기사를 굳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저널리즘”의 문제. 용어상으로는 대학 독립‘언론’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사실 규칙적인 발행 주기를 가지고 일반 대중을 향해 발송되는 모든 매체는, 언론이기 이전에―그러므로 이것은 학보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결국 하나의 ‘콘텐츠 생산 조직’이다. 그런데 그들이 생산하는 콘텐츠나 그들의 소속 자체가 어떤 학교와 크게 관련이 될 때 그게 학내 언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조직의 특수한 정체성이 어떤 특수한 콘텐츠를 다루어야 할 때는 잡지의 프로덕션 방식보다 신문의 저널리즘 방식이 더 적절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런 차이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어서, 콘텐츠의 문제. 기존 ‘독박’ 포럼 관련 보도에서 나가지 않았지만 꼭 전하고 싶었던 일화를 다시 옮겨 본다. 필자의 동생이 학보사에서 문화부장이라는 것을 맡은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필자는 동생이 ‘문화면’ 소재 괜찮은 거 없느냐고 졸라대는 통에 곤욕을 치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대체 학보에 문화면이 왜 필요하지? 학보라는 것은 교내 소식만 빼곡하게 전해도 지면이 모자라야 되는 매체 아닌가? 그런 매체가 굳이 마지막 페이지를 문화면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건 그저 학보사라는 콘텐츠 생산 조직이 자기들의 타겟과 포지션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뜻밖에 안 되는 것이다.

짧게나마 풀어 보자면, 타겟이란 ‘소비해 줄 사람들’을 뜻하는데 이것이 뚜렷한 콘텐츠는 군대에서의 MAXIM 잡지와 같이 적어도 그 타겟들에게는 분명히 팔린다. 포지션이란 ‘이 콘텐츠가 독점적으로 점유할 특정 위치’를 뜻하는데, 포지션이 분명하고 의미가 있을 때 그 콘텐츠는 드링크계의 비타500처럼 사회적 맥락을 부여받아 존속할 수 있다.

나는 신방과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양에서 미디어 수업을 들은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이것들은 뭔가를 생산(product)하는 모든 분야에서 너무도 기초적으로 점검하는 요소라고 들어 알고 있다. 콘텐츠 생산 집단이라는 사람들이 이것조차 해놓지 않았다는 걸 현장에서 그런 방식으로 목격해야 했다는 것, 사실은 그게 이날 필자가 느낀 곤혹감의 80%를 차지한다.

도착하자마자 찍은 전경. 행사 막바지에는 참가자가 더 많았다.

예를 들어 보자. ‘학교 내 소식이 궁금한 사람들’이라는 불 보듯 뻔한 타겟이 있는 학보가 어정쩡하게 요즘 뜨는 뮤지컬 같은 걸 소개하는 문화면을 내놓으면, 그 타겟이 과연 문화면을 소비할까? 학내의 A사안에 대해서 학보도 논평을 내고 교지도 특집으로 다루는데 독립언론마저 A사안에 대한 다들 아는 이야기를 드립 반 진담 반으로 빽빽하자면게 적어 놨다면, 이 독립언론의 포지션은 무엇이란 말인가? 요컨대, 왜 굳이 뒷북이란 말인가??결말은 자명하다. 무용해지는 거다. 달리 말하면, 그러니까 소비가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의 당위성 문제, 말하자면 “독립”의 문제. 독립이 존재의 도덕적 자긍심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존재의 당위마저 책임지지는 않는다.?‘학내 독립 언론’이란 요컨대 ‘학내 독립 콘텐츠생산조직’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적어도 독자들이 보기에 학내 독립 콘텐츠생산조직이 존속할 이유의 방점은 (그러니까, 존재의 당위는) 학내에도 찍히지 않고 독립에도 찍히지 않으며 다만 콘텐츠생산조직이라는 대목에 찍힌다.?기사라고 하는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라면, 하여튼 흥미롭고 심층적이며 매력이 있고 볼 일이지, 그들이 독립을 해 있느냐 거대 자본과 권력에 복속해 있느냐 하는 문제는―한없이 안타까운 점이지만―결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필자는 자본의 논리 혹은 신분제 또는 예속주의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뭔가를 만드는 작업에서, “내가 독립해 있다!”라는 의식은 종종, 사실은 몇십 퍼센트의 확률로 “나 하고 싶은 것만 맘대로 하면 그만이다!” 또는 “내가 독립해 있겠다는데 뭐 보태준 것 있냐?”로 빠지는 것을 보아 왔다는 이야기다.

시장은 냉혹하고, 독자들은 독립출판의 자금 부족이나 독립언론의 익명 컨셉이나 독립웹진의 치열한 내부 회의 따위를 일일이 알아주지 않는다.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간하는 숱한 독립 콘텐츠 제작자들의 SNS를 살펴보면, 자기들이 얼마나 열심히 or 재밌게 뭔가를 하는지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을 때가 많다. 이 얘기가 왜 나왔는지 알겠다면 당신은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아주 거칠게 말해서, 독립해 있는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은 실존하는 자아를 제외하고는 없다.

독립해서 콘텐츠 생산을 하고자 한다면, 독립하지 않은 채 콘텐츠 생산을 하는 사람들만큼은 해야 하지, 별 내용이나 소비자 피드백 없이 저 하고 싶은 대로만 해서는 피차 곤란하다. 포럼 당시에 나왔던 “선비질(=‘탁상공론식 아이디어 회의’)”이 되기 쉽고, 도덕적 우월감만 내세우는 일개 동인 활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지막으로 포지셔닝의 문제. 대학교 내부에는 읽을거리가 넘쳐난다고 하지만 사실 그게 아직 과포화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본다. 애당초 대학이란 곳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잔뜩 읽고 배우자고 만든 기관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문제는 읽을거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의 글감에 골몰해 주변을 살피지 않을 때 발생한다.

포럼 자유토의 때 계속 나왔던 주제어가 ‘파이’ =독자층의 확대 문제였는데, 사실 이 문제도 그렇고 차별화 문제도 그렇고 해결은 썩 간단하다. 각자 월례 회의 때 다른 매체의 최신호를 가져다 놓고 이번에 어떤 내용들을 다뤘는지 살펴보는 순서를 가지는 것이다. 설마 거기서 다룬 것(이나 다음 호에서 다루리라고 짐작되는 것)을 아이템으로 덜컥 제안하는 눈치 없는 멤버가 있겠는가 말이지. 그러면 교지, 학보, 독립언론 세 매체의 토픽이 서로 점점 차별화(또는 자연 분배)가 되고,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한 명의 독자가 관심 있는 사안에 따라 최대 3개 매체까지 다 관심을 갖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 학교에 진정한 읽을거리 공급자는 우리 하나뿐’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 돋는 사명감을 가진 매체들이 저마다 코끼리 코만 그리겠다고 더듬더듬 캔버스 특정 구간에서 서로 붓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과연 현명한가. ‘학교 학생이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들’이라고 하는 분야는 필자가 보기에는 한 마리 코끼리처럼이나 선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코끼리 코를 그리고, 누군가는 다리를 그리고, 누군가는 코끼리 꼬리를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면 된다. “대학독립언론, 학보사, 교지는 어떻게 차별화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결국 이 간단한 코끼리 그리기 하나를 못 하고 있는 서로의 근시안만 반증해 주었을 뿐이었다.

다음번엔 독자님도 봤으면 좋겠사와요

예정 종료 시간을 30분이나 초과해서 겨우 끝난 포럼은 이후 뒤풀이로 이어졌는데, 결국 절룩거리는 다리로 다시 어찌어찌 버스를 타고 서울대입구역까지 따라가서 고기를 5천원어치 먹고 왔다. 명함도 주고받았고, 돌아가면서 모두 자기소개도 한 번씩 했는데 정말로 각 학교에서 학내 언론계의 내로라하는 분들뿐이었다. 학보도 교지도 독립언론도, 그렇다고 신방과도 아닌 무관계자는, 쉰 명이 넘는 전체 참가자 중에서 필자를 포함해 서넛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되돌아오는 길에 아차 싶어 급히 찍은 안내 표지 인증샷.

그저 나 같은 잡놈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분간만 제대로 차려서 그 자리를 적당히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주최측의 페이스북에 접속해보고 싶어져서 들어가 보았다. 한창 포럼이 진행중이라는 업데이트가 사진 한 장과 함께 올라가 있었다. 다음 포럼을 알리는 페이스북 게시물에서는, 학보사나 교지 편집위원들보다는 실제로 독립언론을 읽고 기분이 좋았던 사람들, 나빴던 사람들, 영향을 받은 사람들, 영향을 받지 않았던 사람들 위주로, 다시 말해 실제로 독자들(소비자들)의 의견을 듣고 같이 토론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실제로 포럼 막바지에 진행자가 전체 요약을 하려고 꺼냈던 이야기도 “다음 번엔 독자와의 시간을 좀 가져야겠네요”였기도 하고, 그게 발전과 성장과 정체성 확립에 는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어김없이 날아오는 편집장님의 톡.
“그래 포럼은 잘 다녀왔더랬겠지?”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아무 일 없이 잘 끝났습니다요.”
“욕봤네. 그래 혹시나 또 무슨 쓸데없는 소리는 아니하였겠다?”
“어, 그, 그것은… 쇤네는 모르겠습니다요. ^^;;;”

※ 2014.9.18 추가

본 게시물은 이승한 독자님의 항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답변드린 바 있습니다.
독자분들의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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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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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디렉터. 상식이 모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