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명작열전 : 취인훈, 《대강당》

연애, 결혼, 출산이 3포라고 했던가. 거기에, 일상을 지킬 능력조차 없었다

채용설명회 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게 인사담당자들이 앉아 있고, 졸예자는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네 사람의 중소기업 인사담당자와, 취업과목 강사와, 세미 정장을 입은 컨설턴트와 올블랙 수트를 입은 임원이 한 사람, 합쳐서 일곱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인사담당자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학생, 앉으시오."

구직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학생은 어느 직렬에 지원하려고 하고 있소?"

"공무원."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인담이,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학생, 공무원 사회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사회요. 쿼터빨 지방대생과 능력없는 꼰대들이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공기업."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패기와 열정을 발휘해 볼 수 있는 곳을 왜 포기하는 거요?"

"협회."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임원이 나앉는다.

"학생, 지금 우리 회사에서는, 구직자들을 위한 정규직 전환 인턴쉽을 냈소. 지원자는 누구보다도 먼저 실무를 배우게 될 것이며, 능력대로 평가받고 초고속 승진의 로망으로 존경받을 것이오. 본사는 원서 지원을 기다리고 있소. 학생의 능력을 반길 거요."

"롯동금."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인담이, 다시 입을 연다.

"학생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사람인 눈팅과 독취사 생활에서, 재벌기업들의 간사한 꼬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본 회사는 학생의 하찮은 학벌과 영어성적을 탓하기보다도, 학생의 진취적인 패기와 열정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채용전제라 해놓고 없던 걸로 하는 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학생은……"

"정규직."

새파랗게 젊은 임원이,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인사담당자는, 증오에 찬 눈초리로 취준생을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취준생에게 옮겨 버렸다. 아까부터 그는 담당자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천막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넨 어디 출신인가?"

"……"

"음, 분교군."

담당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대기업 정규직이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분수를 파악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대기업 가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큰 데 가봐야 50대는 커녕 40 전에 목 날아가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걸 안다구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대한민국의 중소기업들이 문과 잘 안 뽑고 야근 많이 시키고 박봉인 것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우리에겐 사람인 히든스타 인증이 있고 이노비즈 인증이 있으며 중진공 으뜸기업 인증이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주제 파악이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은 분교 생활과 취준생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공단."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나라 내 민족의 한사람이, 뻑하면 중소기업 갑질이나 하는 대기업과 세금먹고 하는 거라곤 없는 공기업에 그것도 정규직 아니면 안 간다고 나서서, 인사담당자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곳에 중소기업 노동자 1306만 명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와 고용노동부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산업보국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공사."

"당신은 고졸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당신의 지원을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은 취업을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마저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진흥원."

"지방대일수록 컴플렉스가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 몸을 없애 버리겠습니까? 연봉 3천만원 받을 길 없다고 말이지요. 당신 한 사람을 잃는 건, 잉여 주제에 이직 궁리나 하는 대리 과장들 열을 잃은 것보다 더 큰 민족의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본 회사에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약간 더 먹었다는 의미에서, 친구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중기의 품으로 돌아와서, 한강의 기적을 재건하는 일꾼이 돼주십시오. 낯선 대기업에 가서 고생하느니, 그쪽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인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정규직 전환 인턴쉽에 합격하는 경우에, 개인적인 호의를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취준생은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막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9급."

인사담당자는,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임원을 돌아볼 것이다. 대표 아들인 임원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 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책상 위에 놓인 취업프로그램 참가증명서와 결석사유서를 챙겨 대강당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중략)

 

 

이것이 돌아갈 수 없는 정말 까닭이었다. 그렇다면? 히든챔피언을 택할 것인가? 취준생의 눈에는, 히든챔피언이란 취업과목 강사식으로 말하면, 신입따위 안 뽑는 연봉 2500에 '공식적 주5일제'도 아까워하는 그냥 벤더들의 쇼맨쉽이었다.

미친 믿음이 무섭다면, 숫제 믿음조차 없는 것은 허망하다. 다만 좋은 데가 있다면, 대기업에는, 저축할 수 있는 연봉과, 당하는 성추행을 고발할 감사팀이 있었다. 정말 그 곳은 자유 마을이었다.

오늘날 중소기업이 인기 없는 것은, 눈에 보이는, 한 마디로 가리킬 수 있는 월 200 정도는 챙겨줄 연봉과 확실한 정규직을 취준생에게 가리켜 줄 수 없게 된 탓이다. 원조 각하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시던 때에는 그렇게 뚜렷하던 실질임금 상승의 적이 오늘날에는, 원자 탐지기의 바늘도 갈팡질팡할 만큼 아리숭하기만 하다.

공단과 공사의 서류 합격을 위하여, 나누어지고 얽히고 설킨 토익과 토스의 미궁(迷宮) 속을 헤매다가, 불쌍한 취준생은, 그만 팽개쳐 버리고, 예대로의 신림동 중고서점으로 달려가서 로스쿨 기출문제를 사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정신적 공황을 표출한다.

일류 학자의 분석력과 직관을 가지고서도, 현대 사회의, 탈을 쓴 부패 조직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드는 판에, 취업과목 강사와 싸가지없는 인사담당자 놈을 트위터로 욕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하다. 대기업에는 풍족한 연봉과 경력 인정의 수월함이 있다. 반도의 영세 중소기업에겐, 이것이 없었다. 게으를 수 있는 자유까지도 없었다.

연애, 결혼, 출산이 3포라고 했던가. 3포따윈 애저녁에 한 지 오래였고, 일상을 지킬 능력조차 없었다. 남한의 정치가들은 천재적이었다. 들어찬 술집마다 들어차서, 울랴고 내가 왔던가 웃으랴고 왔던가를 가슴 쥐어 뜯으며 괴로워하는 취준생들을 위하여, 더 많은 자격증 장사를 차릴 허가를 내준다. 이력서에 사진 못 넣게 하는 법률을 만들라는 인권 단체의 부르짖음은 그 날 치 신문 기사거리를 만들어 주는 게 고작이다.

그들의 정치 철학은 의뭉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런 데로 풀리는 힘을 막으면, 물줄기가 어디로 터져 나올 지를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에겐, 진심으로 미생 일독을 권유하고, 학벌은 의미가 없으니 CPA 정도는 따고 오기를 권유한다.

이런 기업. 그런 기업으로 가기도 싫다. 그러나 둘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형기가 끝난 죄수가 더 있겠다고 버티었자 안 될 말이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짐승이었다. 그 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서로 사이에 말이 맞았다. 막다른 골목에서 얼이 빠져 주저앉을 참에 난데없이 밧줄이 내려온 것이었다. 그때의 기쁨을 그는 아직도 간직한다. 졸업유예. 인사담당자들 앞에서처럼 시원하던 일이란, 그의 지난날에서 두 번도 없다.

방 안의 생김새는, 인사담당자와 취업 컨설턴트가 마주 보고, 책상을 놓은 사이로, 졸예자는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순서는 임원 쪽이 먼저, 네 사람의 중소기업 인사담당자와, 취업과목 강사와, 세미 정장을 입은 컨설턴트와 올블랙 수트를 입은 임원이 한 사람, 합쳐서 일곱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컨설팅 대표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학생, 앉으시오."

취준생은 움직이지 않았다.

"학생은 어느 쪽으로 가겠소?"

"졸업유예."

그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앉으라고 하던 컨설턴트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학생, 졸업유예도 마찬가지로 취업은 해야 하오. 14학번에 15학번까지 나타날 곳에서 어쩌자는 거요?"

"5학년!"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학생의 부모는 정년퇴직이 언제요?"

"남자라면 로변사!"

이런 모든 것이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리라 믿었다. 그래서 졸업유예를 골랐다.

 

 

(중략)

 

면접관은 도어를 두드리는 소리에 사장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얼른 손목에 찬 세이코시계를 보았다. 면접자의 집합 시간이 다 됐다.

"무슨 일이야?"

"면접자 한 사람이 지금까지도 없습니다."

"응?"

"지금, 합숙면접 같은 조에 있는 사람이 인원을 파악해 봤습니다만, 회사 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면접관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물었다.

"누구야 없다는 게?"

"그 음침한 새끼 말입니다."

이튿날.

XX사의 합숙면접 A조의 일정은 바보같은 운동복을 입고 면접관들조차 자기가 뭘 봐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바보같은 레크리에이션과 함께 진행되면서. 한 사람이 없는 채 물채처럼 빼곡이 들어찬 취준생의 원서 시즌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 간다.

K씨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건보공단에도, 인국공에도. 아마, 공공도서관에서, 다른 데로 가 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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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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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전) 피처 에디터. 모든 것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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