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겨울방학에 대하여

임금을 주지 않는 기간에 훈련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한국 프로야구의 스토브리그가 끝났다. 소년장사 최정은 역대 FA 최대 몸값을 갱신하며 SK에 남았고, 롯데를 떠난 장원준은 친정팀의 제시액보다 낮은 몸값에 두산의 품에 안겼으며, 영원히 푸른 피의 에이스로 남아있을 것 같던 배영수는 친정팀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곱씹으며 한화로 적을 옮겼다.

FA 시장 못지않게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꼴찌’ 한화의 마무리 훈련이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은 팀을 맡자마자 마무리 훈련에서부터 헬게이트를 오픈하며 한화 뿐 아니라 모든 야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만화 속 야구팀처럼 꼴찌 팀이 새로운 명장을 영입해 지옥훈련을 한다는 소식은 겨울의 야구팬을 후끈 달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년 한화가 얼마나 달라져 있을 지를 상상하는 일은 오랜 베어스 팬인 나에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약체였던 SK가 외부 수혈 없이도 2000년대 후반 한국 프로야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김성근식 지옥훈련이었다. 2014년, 어이없는 수비실책과 본 헤드 플레이 남발, 허약한 불펜, 집중력 떨어지는 타선으로 혈압이 높아진 한화 팬들이 김성근 감독 영입을 강력히 원했던 이유도 이해할만 하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김성근 감독은 마무리 훈련 뿐 아니라, 통상 휴식기간인 12월에도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꼴찌 팀의 패배의식을 날려버리고, 팀의 체질을 개선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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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쉬었잖아. 그치?

한화 이글스의 겨울 훈련 무산

그러나 이런 한화의 발목을 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활동기간’ 규정이었다. 비활동기간이란 재활 선수를 비롯해 그 어떤 정식 등록 선수도 팀에서 운영하는 단체훈련에 참가할 수 없는 기간으로 12월부터 1월 중순까지로 정해져 있다. 일종의 ‘강제휴식기’인 셈이다. 스타플레이어들의 경우 팀에서 훈련을 요구해도 이를 거부할 수 있지만, 부진한 성적을 거둬 비난을 받는 선수들은 구단에서 훈련을 요구할 경우 거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강제성을 통해 휴식기간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규정이다.

강제휴식기라고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일부 팀에서는 암암리에 이 기간에도 몇몇 선수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실시해왔다. 많은 훈련량을 강조하는 김성근 감독의 경우 SK 시절에도 벌금을 감수하고서라도 비활동기간 훈련을 진행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에 부임해서도 비활동기간 훈련을 진행하려던 김성근 감독의 계획이 알려지자 프로야구 선수협회(이하 선수협)는 벌금 징수 및 해당 구단 공개 등을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한화는 비훈련기간 훈련 계획을 전면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헤헤..이것만 잡으면 방학이다…. ⓒMK스포츠

헤헤..이것만 잡으면 방학이다…. ⓒMK스포츠

김성근 감독의 훈련계획이 무산되자 야구계 뿐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김성근 감독은 “과연 비활동기간이 선수들에게 유리하기만 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쳤고, 많은 야구팬들 역시 왜 선수협이 훈련이 필요한 선수들의 훈련을 막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FA 시장의 과열로 50억이 넘는 몸값을 받는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실력에 비해 몸값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과 맞물려 모든 비난의 화살이 선수협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꼴찌한 팀의 ‘휴식할 권리’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더라도, 비활동기간 설정에 대한 비난이 선수협을 향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비활동기간을 설정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선수협이 아니라 구단들이기 때문이다.

선수협의 역사

비활동기간이라는 규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선수협의 성격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선수협은 수차례의 노동조합 결성 시도 끝에 만들어진 단체다. 그러나 여전히 정식 노동조합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선수노조 결성 시도는 구단들의 집요한 방해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첫 시도는 1988년이었다. 롯데의 무쇠팔 에이스였던 최동원이 중심이 되어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의회’가 출범했다. 하지만 구단의 반발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각 구단의 사장들은 선수협이 출범하자 회동을 갖고 프로야구가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수협 가입 시 전원 제명을 결의했다. 결국 많은 선수들이 눈물을 머금고 선수협을 속속 탈퇴했고, 끝까지 남은 선수들마저 프로야구가 폐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수협 활동에 관여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고서야 재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즌 후 롯데의 영원한 레전드였던 최동원과 삼성의 에이스 김시진이 트레이드되었다. 두 선수 모두 각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는 점, 그리고 선수협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누가 봐도 괘씸죄에 의한 보복성 트레이드였다. 각 구단들에게 선수노조 결성은 에이스마저 내 칠 정도로 ‘있어선 안 될 일’이었던 것이다.

최동원과 김시진은 선수협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청춘을 바쳤던 팀에서 선수생활을 마치지 못한다.

최동원과 김시진은 선수협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청춘을 바쳤던 팀에서 선수생활을 마치지 못한다.

이후에도 선수들은 몇 차례 선수노조 결성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 중 가장 파장이 컸던 것은 2000년의 시도였다. 앞서 선배들의 좌절을 지켜보았기에 선수들은 조용히 많은 준비를 해왔고, 무엇보다도 고액연봉을 받는 에이스급 선수들이 제명 등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번에는 기필코 선수협을 인정받겠다며 앞장서자 중간에 이탈한 삼성과 현대 선수들을 제외한 6개 구단 75명의 선수가 모여 선수협을 창립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구단의 반발은 알레르기 반응에 가까웠다. KBO는 창립총회가 열린 당일 긴급이사회를 갖고 선수협 총회에 참석한 75명 전원을 방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론이 선수협을 살렸다. 시민단체의 도움과 압도적인 선수협지지 여론에 의해 구단들은 이듬해 정부의 조정에 의해 선수협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이들의 희생으로 선수들은 단순한 소모품이 아닌 노동자로서 대우받을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이들의 희생으로 선수들은 단순한 소모품이 아닌 노동자로서 대우받을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특히 선수협 대변인이었던 두산의 강병규는 1999시즌 타고투저에도 불구하고 13승 5패의 호성적을 올렸음에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SK로 강제이적하게 되고, 선수협 탈퇴 각서 요구 등의 이유로 서른 살의 나이에 은퇴해 방송인의 길을 걷는다. 지금은 도박, 폭력사건 연루 등의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선수협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팀에서 내쳐지지 않았다면 우리 곁에 야구인 강병규로 남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비활동기간이 선수협 때문이라고?

우여곡절 끝에 선수협의 존재는 인정되었지만,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구단들이 끝내 선수협을 노동조합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선수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순간 골치 아픈 일이 잔뜩 발생하기 때문이다. 4대 보험에도 의무적으로 가입을 시켜야 하고, 메이저리그처럼 은퇴 시 퇴직금도 챙겨줘야 할지 모른다.

또한 선수협이 노동조합이 되는 순간, 선수들의 요구가 있을 경우 구단은 단체협상에 임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지금처럼 선수들의 처우개선 요구를 그냥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쟁의권도 갖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현재로써 구단을 압박할 수 있는 공식적인 루트는 하나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구단은 선수협을 노조로 인정하는 순간 마주하게 될 불편한 현실 때문에 기를 쓰고 선수협의 노조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구단들은 선수협을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선수들과 근로계약이 아닌 용역계약을 맺는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10개월짜리 연봉이다. 흔히 연봉으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연봉을 한 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 매 달 나누어 받는다. 그런데 구단이 연봉을 12개월로 나누어 지급할 경우 근로계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12개월이 아닌 10개월로 나누어 지급하는 꼼수를 부린다. 즉, 12월과 1월을 제외한 10개월 간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즉, 비활동기간은 임금을 받지 않는 기간이기에 설정된 것이다. 선수협 입장에서 임금을 주지 않는 기간에 노동(훈련)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혹자는 고액 연봉을 받는 프로야구선수들에게 노동조합이 과연 필요한 것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로야구에는 수 십 억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KBO에 정식으로 등록된 선수만 600명에 가깝다. 최저 연봉 2400만원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프로야구계의 비정규직인 신고선수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그들 대부분은 부상이라도 당하면 계약해지에 내몰려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는 신세가 된다. 발전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은 선수라면 치료도 알아서 해야한다.

2군들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신 더 열악하다. 사진은 수동으로 점수판을 고치고 있는 2군 경기 모습.

2군들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신 더 열악하다. 사진은 수동으로 점수판을 고치고 있는 2군 경기 모습.

또한 프로야구 계약의 특성 상, FA가 되기 전까지 연봉 협상에서 선수들은 철저한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구단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 선수협이 구단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었다면, 얼마 전 롯데 구단의 CCTV 사찰 파문 같은 몰상식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예전에 비해 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값도 많이 올랐고, 처우도 훨씬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할 합당한 사유가 되지는 못한다. 만약 비활동기간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야구팬이 있다면, 선수협을 비난하는 손가락은 구단을 향해야 옳다.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라고,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시민의 권리인 ‘노조할 권리’를 인정하라고 주장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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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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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흑석동을 좋아하는 밥버러지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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