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PM 10:13
꺼벙이 형님을 거짓말처럼 그곳에서 다시 만난 것은 금요일 밤 열 시가 넘어서였다.
나는 점심 때 풀었던 한국사 기출 오답 노트를 거의 끝내고 있었고, 꺼벙이 형님은 내가 앉은 카페 구석자리에서 좀 떨어진 가운데편 자리에 혼자 앉아서, 최소 3년은 넘게 썼을 안드로이드 휴대전화를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꺼벙이 형님이 진청색 트렌치 코트에 장갑에 구두 차림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훌쩍 크고 나이 든 얼굴일 줄이야. 하지만 예의 그 10원짜리 ‘땜빵’과 항상 웃고 있는 듯한 얼굴 근육만은 예전처럼 선명해서, 나는 큰 의심 없이 꺼벙이 형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알은체를 할까 말까 하다 용기를 내어 소리를 내려는 찰나, 웬 남자가 꺼벙이 형님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걷어붙인 양 소매를 다시 펴는 걸 보니 방금 화장실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꺼벙이 형님은 그의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무표정에서 급히 환한 얼굴로―그러나 내가 어린이날이나 방학 동안에 보았던 꺼벙이 형 특유의 웃음은 아닌―그에게 연신 굽실거리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소매를 정리한 그 남자가 꺼벙이 형님 맞은편 자리에서 수트 자켓을 집어 입으면서 인사를 하는 듯했고, 꺼벙이 형님은 그가 한 걸음 뗄 떼마다 보조를 맞추어 연신 꾸벅꾸벅 절했다. 남자가 등을 돌려 카페를 나가기 직전 나눈 악수에서, 꺼벙이 형님은 아주 극진한 자세로 남자의 악수를 받았다.
그 이후를 모른 체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생각해 본다. 나는 참 근본적인 눈치가 없어서, 남자가 완전히 퇴장하고 꺼벙이 형님이 차마 다 못 마신 아메리카노를 마지막 한 모금 들이키려 할 때쯤을 기다렸다가 굳이 그 앞으로 찾아갔다. 꺼벙이 형님은 내 인기척에는 반응하지 않았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꺼벙이 형님?
나를 흘깃 쳐다보는 꺼벙이 형님의 눈빛은, 너무도 선명하게, ‘당신이 날 알아보면 안 되는데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저 어진이에요!
왜 예전에 꺼벙이 그림일기 하루에 두 번씩 보던…
이라고 내가 뒤이어 묻고 있는 동안에도, 사실 그는 처음부터 날 알아본 눈치였지만, 애써 기억이 잘 나지 않은 체를 했다.
-아- 너, 그, 어진이? 알지, 알고말고…
1월 30일, PM 10:22
꺼벙이 형님은 굳이 아메리카노 두 잔을 더 사서 하나는 내 앞에, 하나는 자기 앞에 놓았다.
-마셔.
-아, 네. 감사합니다.
꺼벙이 형님에게서 딱지, 팽이, 사탕을 받아 본 적은 있지만 커피는 처음이었고, 그것도 밤 열 시에 이런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밤 열 시라니? 꺼벙이 형님은 밤 9시가 되면 칼같이 자리에 누웠다. 숙제를 안 했으면 안 했지 밤 9시 이후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열심히 잠자던 그 꺼벙이 형님이, 지금은 무슨 회사의 영업부 대리가 되어 이 늦은 시간까지 클라이언트 미팅을 뛰고 있더란다.
-글쎄 자기는 시간이 안 나서 어렵다는 것 아니겠어? 그래서 내가 말했지.
저는 늦어도 좋으니까 오늘 꼭 좀 뵈면 안될까요?
그래서 만나고 방금 마쳤어. 하하!
꺼벙이 형님의 명랑만화 어투는 여전했다. 하지만 그 말미의 웃음은 더 이상 ‘낄낄’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이쿠! 역시 꺼벙이 형은 못말려! 와 같은 능청이 아니라 아… 그래서 계속 인사를 하셨구나 라고 받아야만 할 것 같은 힘없는 웃음이 딸려 오는, 토스 필수구문 같은 것이었다.
화제를 돌리려는지 꺼벙이 형님이 내게 먼저 물었다.
-요즘 너는 어떻게 사니?
내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따져봤는데 제 학점 평균 가지고는 서류를 못 뚫겠더라고요.
졸업은 다음 학기면 그냥 해버리니까, 그렇다고 대학원 갈 것도 아니고,
그냥 9급 준비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하고 한 모금 아메리카노를 머금은 꺼벙이 형님의 입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테이블의 컵과 컵 사이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그렇게 한참 말이 없던 꺼벙이 형님이 다시 물었다.
-그래, 사는 건 좀 재밌고?
재밌긴 개풀이 재밌나요, 라고 말하자 마자 아차 싶었다. 당황스러워서 재빠르게 우왕좌왕 뒷말을 이었다. 솔직히 꺼벙이 형님이랑 집 나와 놀 때가 재미있었지 지금이야 뭐, 다들 맨날 스마트폰으로 웹툰이나 보고 무슨 고양이 동영상이나 보고 그러죠, 누가 형님처럼 발 밑에 용수철 달고 뛰어다닐 생각을 해요? 요즘 그런 세상 아니에요. 되게 재미없어요.
어영부영 마무리짓고 내가 다시 컵에 손을 뻗을 때까지 내내 가만히 들으며 쓴웃음을 지어 보이던 꺼벙이 형님이, 내가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삼키고 있을 때 되물었다.
-아니 글쎄 내 말은, 너 사는 건 어떠냐구.
이번에는 내가 쓴웃음을 지을 차례였다.
ㅡ 저도 뭐 재미없어요. 맨날 일어나서 카페 가서 기출 풀고 오답노트 만들고 외우고 풀고 틀리고 커피값 내고 집 가서 자고 그게 다니까. 노량진 수업 딱 들어가면 계단에 줄 서서 수업 기다릴 때부터 학원 나올 때까지 아무도 안 웃어요. 그냥 가끔 강사가 무슨 대첩 무슨 제도 말장난으로 외우라고 시킬 때 다들 되게 억지로 웃는데 저도 좀 그렇지요. 그렇게 팍 웃기는 건 없고 그냥 피식피식하다 마는 거 같아요. 웃어봐야 다 어디 무슨 패러디고 뭐 따라한 거고 그러지.
막판에 좀 가라앉은 분위기를 옛 추억으로 좀 추스리고 싶어서 굳이 낄낄거렸다.
-ㅋㅋ 솔직히 형님만큼 익살 떠는 애들 또 나오기 어려울 걸요?
소싯적에 그렇게 놀았던 게 남아서 거의 뭐 그 추억으로 버티죠.
하지만 꺼벙이 형님은 그걸 듣고 소싯적에 뽐내던 솜씨대로 엣헴!~ 그렇단 말이지? 여봐라~ 웃음대장 꺼벙이님 나가신다~! 같은 꽁트를 하거나 눈에 번쩍이는 별을 달고 뭐!?!?! 정말???”이라고 크게 외치며 자리에서 튀어올라 카페 천장을 뚫고 나가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너무도 뜬금없이, 그러나 너무도 익숙하게 어른스러운 억양으로 말을 꺼냈다.
-저녁 안 먹었지? 삼겹살 괜찮아?
1월 30일, PM 11: 02
우리는 뒷골목의 아무 삼겹살집으로나 들어가서 일단 자리를 잡았다. 고기를 굽는 건 꺼벙이 형님의 몫이었다. 집게는 당연히 내가 먼저 잡긴 잡았는데 그걸 한사코 뺏는 것이었다. 나는 두 손 모아 잠자코 앉아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어색해서 운을 떼어 보았다.
-그… 이제 명랑만화는 안 하시나요?
-…….
고기 익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다. 말없이 한참을 불판만 바라보다가, 꺼벙이 형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가족이 사우디에 갔었던 건 기억나니?
-아, 네 그럼요. 전 그때 태어난 건 아니고 그냥 예전 만화 보니까 1977년에 가셨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버지 연세도 있고 해서 94년에 돌아와서 바로 만화일기를 했지.
아마 내가 그때 널 만났을걸?
-아 그러네요
잠시 한숨을 쉬고, 형님이 대답했다
-근데 어쩜 IMF가 그렇게 터져 버렸는지 원.
생각해 보면 꺼벙이 형님을 필두로 한 숱한 만화일기 친구들의 ‘좌충우돌 대활약’은 딱 1997년까지였다. 그렇게까지 세상의 분위기가 축 처질 수 없었다.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며?맙소사~~~?하고 기절하는 게 아니라, 정말 기절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었다.
내 또래 아이들이 그런 ‘재치’와 ‘유머’를 유치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사치가 되었다, 한때 꺼벙이 형님을 권장도서로 지정해서 읽던 시간은 끝났다. 이제, 차마 그렇게까지 티 없이 유쾌하고 명랑하기만 한 만화를 구해서 읽으라고 권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꺼벙이 형님 같은 명랑만화 주인공들은 그저 시립도서관 어린이 열람실 맨 구석에 앉아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올림포스 가디언.
-뭐?
-아, 아니에요. 그냥 딴 생각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별 거 아니에요.
-맞아, 그래. 그 만화. 올림포스 가디언.
꺼벙이 형님이 집게를 갑자기 테이블에 탁 내려놓자 옆의 소주잔과 젓가락이 달싹였다. 그 소리에 괜히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 다시 되물어볼 새도 없이, 꺼벙이 형님은 소주 한 병을 먼저 자작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1월 30일, PM 11: 32
ㅡ 너도 기억하겠지만 나는 거의 흑백이었잖아. 난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뚱딴지도 따개비도 맹꽁이 서당 학동들도 따옥이도 꾸러기도,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했어. 내가 컬러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엄청 잘생기고 늠름하고 훤칠하고 그러지 않아도 여름에 매미 잡고 겨울에 눈사람 만들고 공 차고 노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단 말씀이야.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밀레니엄이라는 게 오자마자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게 나왔는데, 그림이 올컬러에 무슨 몸들은 다들 그렇게 울퉁불퉁 굉장한지, 난 내 친구들이 그걸 보고 겁을 낼 줄 알았어. 왜 갑자기 우리한테 이렇게 어른스러운 걸 보여주느냐고 말이야. 옳지, 그러면 이제 나도 요즘 친구들이랑 다시 연 날리고 새총 쏘면서 놀 수 있겠구나 했지. 그런데 그게 서울방송에서 ‘올림포스 가디언’이란 제목으로 만화영화가 되고 1천만 부 넘게 팔리더만. 그때야 알았지. 아, 많은 것들이 바뀌었구나.
그걸로 그만이었겠니? 천만의 말씀. 이제 아이들은 해리 포터를 읽고 마법천자문을 보고 메이플스토리 만화를 사서 보더구나. 이제 애들은 올컬러가 아니면 만화책을 쳐다도 안 보게 됐어. 영화 해리포터 정도의 특수효과가 아니면 재미없다고 화를 내게 됐다고.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어. 엄청 심각하다는 거야. 난 맨날 집 못 찾아서 미아 되고 배탈 나서 끙끙 앓고 교장실 유리창을 깨서 하루 종일 도망다니고 그랬잖아? 기억나지? (네.) 근데 마법천자문의 손오공도 그렇고 다들 뭐 하나 실수해서 야단을 제대로 맞더만. 어, 띠용~?! 하고 끝나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뭔가 실수를 하면 바로 침울해지고 슬프고 심각해. 그걸 어떻게든 극복하고 싸워서 이겨야 다시 밝아지고 희망이 생겨.
그래 좋다 이거야. 새로운 것들 때문에 내가 버려졌다는 얘기는 아니야. 누구 탓을 할 생각은 없어. 근데 나는 그거야. 좀 뛰어놀면 안 돼? 좀 유치하면 안 되냐고. 요즘은 사람들이 명랑한 거 보면 막 못견뎌 하는 것 같아. 그게 무슨 금기인가 봐. 반드시 무슨 더 심오한 뜻이 있어야 되고 엄청난 뒷이야기가 있어야 되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냥 재밌게 놀면 안 될까? 그냥 다같이 깔깔 웃고 끝나거나 한번 혼나고 끝나는 건 어리숙한 걸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의 일장 연설을 듣는 동안 내가 뒤집어서 썰어서 익혀서 그의 앞접시에까지 담아 놓은 삼겹살들이 거의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직 이야기가 다 끝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냥 취업했어. 회사 일은 매일매일 심각해. 매일 무슨 용을 무찌르고 괴물을 무찌르고 퀘스트? 인지 뭔지를 해치우는 기분이야. 끝나면 사람들이랑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물약'도 먹으러 가고. 근데 진짜, 지금 애들한테, 그리고 딱 너 또래 애들한테 진짜 진지하게 그런 얘기가 하고 싶어.
너네가 자꾸 게임에서, 만화에서, 소설책에서 뭔가 심각한 이야기 찾고 자꾸 싸워서 이겨야 되는 어른스러운 주인공들의 화려한 모험을 찾는데, 어릴때부터 굳이 그럴 것 없이 그냥 취직하면 하게 되어 있다고. 그러면 그런 심각하고 싸우고 어른스러운 거 직접 실컷 할 수 있으니까. 돈 왕창 벌어서 슈퍼 가서 군것 잔뜩 사먹을 수도 있고.”
말을 마친 꺼벙이 형님이 별안간 핫, 하하하, 깔깔깔깔, 취기 오른 웃음을 터트리더니 잔을 들어 내게 ‘짠’을 하고는 비우고, 다시 소주병을 기울여 잔을 채우더니 내가 말릴 틈도 주지 않고 그걸 원샷한 다음 접시에 모셔져 있던 삼겹살들을 천천히 들기 시작했다. 확실히 취기가 올라 보였다.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꺼실이 누님은 요즘 뭐 해요?
-꺼실이 말이니? 꺼실이는…
저기 강원도 쪽에서 레크레이션 강사를 하는데 오늘은… 아마 안산 갔겠다.
-왜요?
-왜냐고? 사실은 말이야, 오늘이 울 아부지 기일이었어.
분위기를 바꾸기는커녕 더 심각해지고 말았다. 내가 송구함과 당혹감에 말문이 막힌 동안 꺼벙이 형님이 드디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ㅡ 아버지 제삿날인데, 나는! 천하의 말썽꾸러기 꺼벙이는! 이런 개쌍놈이, 돌아가신 제 아버지 제사도 못 지키거든! 아주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미팅이 졸라 많이 잡혀 있거든! 동네 유리창을 깨도 안 되고 슈퍼에서 300원 깎아달란 말도 못 하고 방학이 끝날 때까지 미뤄놓을 수 없는 일들이 아주 63빌딩처럼 쌓여 있거든! 야! 이 새끼들아! 어떠냐! 이게 니들이 원하던 주인공 아니냐! 왜, 이젠 뭐 니네들은 재벌들끼리 바람 피는 얘기거나 다 치고박고 죽이는 얘기만 안나오면 그냥 다 애들 만화고 건전 드라마야? 어? 아가리가 있으면 좀 씨부려봐! 이제 진짜 그래? 진짜 그러냐고?
1월 30일, PM 11: 57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사실 꺼벙이 형님은 진작부터 만취 상태였다. 삼겹살 집 주인에게 호되게 혼나 가며 계산을 치르고 나와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형님을 뒷좌석에 눕히고 지갑을 뒤져 ‘대리운전 1577-****’ 메모 옆에 적힌 집 주소와 카드를 찾아 택시 기사에게 전달한 다음 몸을 일으켜 나오려는데, 그 인사불성의 상황에서 꺼벙이 형님이 문득 눈을 조금 떠서 느리게 주변을 살펴보고 피식 웃었다.
침이 흘러나와 턱에서 말라 붙으려는 그 얼굴을 환하게 웃어 보이며―그 웃음은 방금 전 VIP에게 보인 웃음이 아니었다, 그 해맑은 웃음 앞에서 나는 그만 울컥할 뻔했다―인사를 건넸다. 내가 한사코 가 보겠다고 하는데도, 나를 붙잡아 가며 구태여 마지막 마무리 멘트를 하려고 했다.
-야~ 내가 오늘은 너 봐서 반가웠다.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마~ ‘
맙소사~~~’ 하고 기절 한번 하고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그~게 명랑 만화 정신이지 별거 있어~?
좀~ 그렇게 좀 살아. 그리고 너 나중에 공무원 돼서 장가 가게 되면
니 애들도 좀 그렇게 명랑하게 좀 살게 해 주렴~ 알겠니~?
예 예 맞습니다 예 잘 들어가세요 예 예 하고 문을 간신히 닫고 택시를 보냈다. 7호선 막차에 간신히 탔다. 사람들은 취기 혹은 졸음을 쫓기 위해 그 와중에도 애써 ‘웹툰’과 뉴스와 SNS 댓글들을 보고 있었다. 환승역마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갔다. 9시부터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어린이도 실수로 새총을 잘못 맞혀 트로피나 도자기를 깨지 않았다.
그날 밤에 올라온 웹툰마다 9.8의 평점과 혹독한 댓글이 함께 우르르 쏟아졌다. 달은 흐릿하게 떠 있었다. 모래사장 하나 없는 놀이터에서는 아무도 놀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마도 부모님의 아이디로 로그인된 최신 유행 게임으로 학원 공부의 스트레스를 달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와중에 내일 아침부터 진행될 영어 기출 총정리 특강에 줄 설 것이 생각나 순간 머리가 띵해 왔다.
2015년 그 날 밤, 더 이상 어떤 것도 명랑하지 않았다.
In memoriam 길창덕
吉昌悳
1930. 1. 10. ~ 2010.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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