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수명이 너무 길어서 직장 생활을 견디는 건가?”
갓 직장에 들어간 친구와 나는 평생을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을 위해 ‘내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건 물론, 아무리 친구와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내 몸을 쪼개고 나누어 봐도 회사의 삶과 나의 삶을 사이 좋게 이어가긴 쉽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는 시간의 1/10 정도를 겨우 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런데 그마저 급한 일이 생겨 포기해야 할 때, 그땐 내가 뭘 위해 살고 있는지 회의감이 몰려왔다. 이런 기분을 털어놓았을 때 약속이나 한 듯 사회 선배들은 같은 말을 했다
“직장은 원래 다 그래. 그냥 다들 참고 다니는 거지.”
나만 이걸 이상하게 느끼는 건가? 내가 어린 건가? 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걸까? 출근을 하면 할수록 그런 고민들이 몰려 왔다. 모두가 선택하는 취직이 나에게도 답이 될 줄 알았는데 선배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취직’에서는 절대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인간으로 태어나 행복하게 사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나는 매일 현실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때 ‘광운대 인문대 수석 졸업’을 하고 학교 앞에서 토스트 가게를 한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관심받고 싶었나?’ 라는 말을 뱉지만 나는 인문대 수석 졸업을 하고 쪽팔림 없이 학교 앞에서 토스트 집을 할 수 있는 그 용기가 내심 부러웠다.
광인수를 차린 사람도 원래 직장에 다녔다고 했다. ‘유능하기보다 위대하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토스트 집을 시작했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엄청 멋있어 보였다. 내 삶은 지금 답도 없는 것에 비해, 저 사람은 답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당신은 답을 찾았느냐’고, ‘삶에 답이 있더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고, 인터뷰를 하겠다는 답이 왔다.
이준형. 28세.
어쩌다 보니 2014.02.19 광운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부 수석 졸업.
청소년 진로 컨설팅 회사에서 2년간 근무 후
2015년 3월부터 광운대 후문 골목길에서
‘광운대 인문대 수석 졸업자의 집’ 토스트 가게 운영.
(이하 ‘광인수’)
나도 이렇게 살 줄 몰랐다
‘광운대 인문대 수석 졸업자가 토스트집을 한다.’이렇게 살 거라고 상상해봤어요?
몰랐어요. 토스트 집을 할 줄도 몰랐지만, 일단은 수석 졸업자가 될 줄 몰랐으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
원래는 신학과에 가려고 했어요.
교회 오빠시네요?
네, 교회 오빠.
어쩐지.. 그래서 드립을 통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욕구를 푸시는…?
드립? 아, 계이득(계란 토스트), 계치득(계란 치즈 토스트) 이런 거요?
네, 그런 드립이 쉽게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ㅋㅋㅋㅋㅋ
처음 광운대엔 학부제로 들어와서 ‘인문대’학생이었어요. 영문과 가서 영어를 공부하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문예창작 소모임’에 가게 됐어요. 거기에 가서 처음으로 시를 쓰고, 보고, 서로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아, 이게 진짜 대학이구나!’ 뭔가 예술과 낭만이 살아있는. 제가 멋있는 걸 좀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시에 빠져서 국문학과로 가게 됐죠.
그럼 처음 입학했을 때의 꿈은 뭐였어요?
일단 취업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별 생각이 없었어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 3학년이 끝나서 일단은 군대를 갔다 왔고. 갔다 와서는 ‘일단 졸업을 해야겠지’ 하다 보니 졸업 상태가 됐고, 취업은.. 일단 토익을 하기 싫었어요. 잘 못하기도 하고 한다고 해서 남보다 더 잘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결국은 하셨네요. 청소년 진로 컨설팅 회사?
제가 학교 다닐 때 라디오를 했어요. 함께 라디오를 하던 누나가 먼저 청소년 진로 컨설팅 회사에 취업했고, ‘자기 회사에서 인턴을 뽑는데 오겠느냐’해서 별 생각 없이 갔는데 인턴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인턴이 끝나고 팀장을 달게 됐죠.
인턴이 끝나고 팀장이 됐다고요?
아뇨, 그게, 그 땐 제 선배가 3명밖에 없을 만큼 회사가 작기도 했고, 제가 중학생 때(2001년)부터 YMCA에 다녀서, 나중엔 그곳에서 꽤 오랫동안 청소년 대상 강의를 했거든요. 그걸 인정해주셔서. 빨리 팀장을 달고 강의를 시작했죠.
그때까지도 창업 생각은 별로 없었던 거죠?
안 했어요. 일이 잘 맞았거든요. 월급 받는 게 미안할 정도로 재밌었어요. 나한테는 학생들 만나는 게 노는 건데, 놀면서 돈 받으니까. 그냥 어릴 때부터 하던걸 하는데 돈까지 주니까, 놀라운 일이었죠.
그랬는데 왜 창업을…?
일이 너무 많았어요. ‘내가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고민을 많이 했고, 시스템을 고치고 바꿔보려는 시도도 많이 해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은 게, 이건 원래 이런 게임인 거예요.
회사라는 거 자체가?
네. 사기업이라는 거 자체가. 돈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했으면 좋겠고, 받는 사람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하고, 그것보다 더해야 성실하다는 소리를 듣고, 유능하다는 말을 듣고. 실제로 저는 집에도 잘 안 들어가면서 일을 했어요.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은 일이 끝나야 퇴근인. 회사에서는 빨리 퇴근하라고 하는데, 퇴근 할 수 없는.
저도 요즘 회사에 다니면서 좋아하는 일을 해도 개인 시간이 없다면 내가 이 일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제일 바빴을 때가, 일요일에 제주도에 가서 월요일에 캠프를 하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서 삼척으로 갔다가 화요일에 캠프를 하고, 화요일에 서울에 와서 충북, 충남 찍고 서울 왔다가 다시 익산으로 갔다가 김천으로. 그렇게 일주일 동안 전국 8도중 5도를 돌고 왔어요.
가장 크게 ‘이건 아니다’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남자들은 회사에서 ‘성실하다, 유능하다’소리를 들으면서 존재감을 찾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논리가 회사 안에서는 이게 다 이해가 돼요. 사실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걸 버티는 게 모두가 하는 일이니까. 버티는 게 당연한 거고 못 버티면 패배자가 되는 거고, 그게 싫은 거죠.
못 버티면 패배자가 되는…
아는 선배가 있어요. 너무 일이 바쁘고 힘든데, 아무도 ‘힘들다’는 말을 밖으로 못 내뱉는 거에요. 내가 말하는 순간 이 집단에서 패배자로 낙인 찍히는 게 두려워서. 그전엔 ‘성실하다 유능하다’는 말을 듣다가 그렇게 되는 게 두렵죠. 버텨야 쎄 보이니까.
오히려 조직 안에서 ‘잘하고 인정받았던 사람’이라 그 틀을 깨고 나오는 게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걸 깨셨어요? 늘 ‘필요를 받는 사람’이고, ‘난 여기서 없으면 안될 존재’로 인정을 받다가 그걸 박차고 나오기가…
제가 여자친구를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게 제일 컸고, 가족들이랑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보내는 정도였으니까요. 가족들, 내 친구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친구를 못 만나고, 여자친구 마음이 상하고, 이게 풀리지 않고 계속 쌓이기만 하고 그랬을 때 미래가 보이는 거예요. 여자친구가 이해해주지 못하면 함께하기가 어려워지겠구나. 그런 상황도 많이 겪고. 이건 좀 무섭다.
제 주변 친구들도 대학교 때는 잘 사귀다가 취업하고 나서 많이 깨지더라고요. 아무래도 만날 시간이 없으니까.
진짜 맞나? 이렇게 사는 게 진짜 맞나?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 행복하지 못한데 내가 여기서 커리어를 쌓아서 직급이 높아진다고 한들, 그 미래가 맞나?’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거, 그게 가장 큰 이유였네요.
그런 사건도 있었고, 또 세월호 사건도 되게 컸는데. 사실 회사에서 단원고 진로캠프 입찰도 진행했었거든요. 뉴스를 보고, ‘우리가 만날 수도 있었던 학생이었는데…’라고 생각하니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한쪽으로 배가 기울어지면 반대쪽으로 나와야 한다는 게 너무나 당연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방송에서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 때문에 아이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 누가 한 명이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법을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그게 내 모습이고, 한국 사회의 모습 같았어요.
아아
동시에 이건 잘못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고. 또 내부적으로 회사가 점점 커가는 상황이라 부담도 있었어요. ‘내가 여기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중간관리자가 되면 굳어져버리겠구나. 그 안에서 내가 더 빠져나오지 못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작년 12월 31일까지 일하고 나오는 거로 얘기했죠.
토스트가 일이 되니, 사는 게 놀이가 됐다
나올 때는 뭐라고 하시고 나왔어요?
세 번 정도 말씀을 드렸는데, 첫 번째는 여자친구 때문에, 두 번째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렸어요. “좀 더 위대한 일을 하고 싶다. 이 회사 안에서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난 좀 더 내 정답을 찾고 싶다.” 제가 말하는 정답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돈을 벌어나가고, 그러면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그런 거거든요.
부모님이 당연히 반대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토스트 집도 아버지랑 같이 인테리어 하셨다면서요?
부모님 반대는 있긴 있었어요. 회사를 그만뒀을 땐 어머니도 놀라셨어요. 왜냐면 아버지도 그때쯤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셨어요. 어머니의 꿈은 공무원과 결혼하는 거였는데. 갑자기 꿈을 잃어버리게 되니까 멘붕이셨죠. 거기에 외아들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아이고 어머님..ㅠㅠ
그래서 아버지랑은 죽이 잘 맞았어요. 아버지는 평생 직장인으로 같은 일을 반복해오셨으니까, 얼마나 지루하셨겠어요. 기업에서 월급쟁이로 사는 삶의 끝을 아시니까. 저도 아버지 보면서 제 끝이 보였고. 그래서 저를 많이 지지해 주셨어요.
학교 근처에 자리잡으신 이유는 뭐에요?
장사할 자리를 찾다가 다른 곳은 값도 너무 비싸고 해서 학교 앞을 찾았죠. 제가 학교를 너무 좋아했거든요. 학교 앞에 찜질방 30일권 사서 다닐 정도로. 집이 머니까. 처음엔 지금 자리가 되게 험했어요. 그때 어머니가 보시고 반대하시고 그랬는데. 저는 지금을 놓치면 너무 후회할 거 같았어요.
아이고 어머님..X 2
하하. 어머니는 외진 자리보다는 좀 더 큰 자리로 알아보라고 하셨는데. 큰 자리는 장사가 잘 되는 만큼 위험도 많고.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니, 제가 모은 돈으로만 시작해 보고 싶었어요.
’광인수’ 차리기 전까진 뭐 하셨어요?
뭘 창업할까 생각을 많이 했고. 한 3개월 놀려고 했는데, 사실 잘 못 놀았어요. 한 달 내내 불안하더라고요. 돈을 안 벌고 사는 게 맘 편하진 않고. 여자친구를 만나서 ‘뭘 할까’ 고민도 많이 하고, ‘내가 실제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쇼핑몰도 못하고, 장사를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1인 가구를 위한 쇼핑몰은 생각하셨다면서요.
아, 컴퓨터를 못해서.
ㅋㅋ
ㅋㅋㅋㅋㅋㅋ
그럼 토스트는?
특별히 기술이 있는 게 아니니까. 먹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장소를 먼저 정하고 아이템을 정했어요. 가장 크게 고려했던 건 학교 앞이니까 싸고, 남자가 많은 학교니 양이 많아야 하고. 참고하려고 노량진 같은 노점의 성지들을 많이 돌아다녔죠. 또 제가 지방을 다니면서 웬만한 맛집은 다 돌아다녔었고. 그런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됐죠.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언젠가 하나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진짜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청소년 교육’ 관련 활동을 많이 했었고.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하나의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예요. 모든 일에는 복선이 있는 거랄까. 일부만 보면 토스트가 전혀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 이야기 안에서 이어지는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창동의 토스트가게를 운영하시는 할머니를 만나고, “사람들 배부르게 하려고 장사를 하는 건데 가격을 올릴 순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네. 그 얘기 듣고 바로 울었어요. 사실 그때까지 제게 있어 장사는 ‘생존’에 가까웠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그걸 넘어서 ‘어떻게 하면 남의 배를 안 주리게 할까’라는 철학이 있으셨어요. 그때 음식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배우고, 토스트 맛을 더 열심히 연구하기 시작했죠.
결심을 했어도 시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근데 또 하니까, 내가 왜 그동안 창업을 안 했지? 생각할 정도로 잘 흘러갔어요. 이게 정말 웃긴 거예요. 물론 스스로 영업에 대한 자신도 있었어요. 사람을 많이 만나봤던 경험 덕분에 상대가 뭘 원하고, 무슨 얘기를 했을 때 상대와 친해지는지 아니까.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또 하나로 연결됐네요.
네. 덕분에 뭐든지 팔겠지’하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창업이 좀 더 쉽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토스트를 굽는 게 막상 일이 되니 싫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토스트가 잘 구워졌을 때 진짜 감동이에요. 아직도 아침마다 하나씩 먹거든요. 안 먹고 시작하면 점심쯤에 이게 너무 맛있어 보여서 침을 흘려요.
ㅋㅋㅋㅋㅋ
진짠데…매일 먹어도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 말 하나로 진짜 좋아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사실 전에 회사 다닐 때는 ‘일 안하고 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되게 ‘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심지어 군대에서 일할 때도 일한다는 생각을 안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상했어요. ‘내가 이 일이 싫은가?’ 생각도 들고.
왜 그럴까요?
생각을 해봤더니, 일과 삶의 분리가 되는 거예요. 가게 문을 닫는 순간 저는 일에 대해 아무 생각도 안 하거든요. 기자도 그렇지만 잘 때까지 생각이 나잖아요. 일은 항상 하는 상태인데 잠깐 자는 거잖아요.
좋은 의미의 ‘일’인 거구나.
네. ‘나는 지금 일과 삶이 분리되어 있구나’ 그런 느낌을 느껴요. 일과 노동과 놀이가 있는데, 전에는 일이 노동이 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건 ‘일과 삶이 분리가 안돼’서 그런거거든요. 심지어 나한테 너무 재밌는 일인데도 노동이 되고. 그런데 내 삶에 충분한 쉼이 있으니까 ‘일이 놀이’가 되는 거에요. 일하면서도 매일 노래 틀고 춤추고.
‘일이 놀이가 됐다’고요? 확실히 잘 모르겠어요.
왜냐면 이 일로 인해 내가 삶에서 영양분을 얻으니까요.
아, 삶을 계속 고갈시키는 게 아니라 채우고 돌아와서 일하니까
놀이가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아요. 놀이의 원래 뜻은 ‘여가’인데, 사회적으로는 일을 제외한 여가활동을 놀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놀이는 일도 놀이가 될 수 있고, 삶도 놀이가 될 수 있고, 여가도 놀이가 될 수 있어요. 모든 것의 원형은 놀이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어느 순간 그렇게 일이 일 자체로도 재밌어지더라고요.
놀이.
일이 놀이가 되기 위해서 또 하나의 단계가 필요했는데, 돈이었어요. ‘오전에 몇 개 팔아야 하는데. 손님이 왜 이렇게 안 오지?’ 그러다가, 이젠 좀 맘을 놨어요. 하루에 내가 팔 수 있는 양, 벌 수 있는 돈이 정해져 있다 보니까. 오전에 안 팔리면 오후에 팔리겠지. 그런 생각으로 지내다 보니 더 놀이가 되기 시작했어요. 또 그렇게 있다 보면 실제로도 많이 와요. 오히려 오전에 많이 만들어 놓고 쌓아두면 다 버리게 돼요.
토스트로 말하는 인문학
처음 학교 이름 쓸 때 쫄지 않으셨어요?
광운, 광운대, 광운대학교 엄청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광운대 인문대 수석 졸업자의 집’이 연결됐을 때 가장 힘이 커지더라구요. 그게 가장 명확히 제가 말하고 싶은 걸 보여주는 거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이름을 통해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셨잖아요.
광운대는 사실 공대가 유명한 학교예요. 그런데 ‘광운대 인문대’, 그 중에도 ‘수석 졸업자의 근황’을 알아보니 ‘토스트집’을 한다. 사실 굉장히 웃긴 일이잖아요. 유머사이트에 올라 갈 정도로.
저도 봤어요. 관심이 엄청나던데요?
그런데 사실은 또 ‘광운대 인문대 수석 졸업자’를 간판으로 내세우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도 생각했어요.
왜요?
사실은 별 게 아닌데. 그거에 목매잖아요.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어요.
토스트랑 인문학은 어떻게 연결되는 거예요?
인문학은 ‘물음표를 던지는 일’이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거든요. 사람들이 생각하겠죠. “왜 인문대 수석 졸업자가 토스트집을 하지?” 어떤 사람들은 “요새 인문계가 취업이 안돼서 그래”, 어떤 사람은 “인문학이랑 토스트랑 무슨 상관이 있지?” 그런 질문들을 계속 만들어 내는 거죠.
듣고 보니 인문학과 토스트가 매우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토스트 집에서 계속 인문학을 하고 싶어요. 실제로 회사 그만두신 분들이 많이 와요. 특히 작년에는 미생부터 해서 ‘취업’ 이슈가 많이 떴잖아요, 그런데 취업하고 보니 이게 별 게 아닌 걸 알게 된 거에요. 그래서 올해는 취업하고 그만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취업이 다가 아니더라고요.
저는 이 가게가 공간이 좀 더 넓어지면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광운대 인문대’가 불모지인데,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고 ‘광인수’가 인문학의 성지가 되고.
오, 반전이다.
저는 잘 노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인데, 저한테 노는 건 세 가지예요. 토크, 플레이, 콘서트. 이렇게 이야기하고, 진짜 재밌게 놀고,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 그런걸 만드는 게 제일 큰 목표고. 토스트가 참 좋은 주제가 되는 것 같아요. 토스트 먹으러 와서 얘기를 듣고.
토스트라는 매개가 굉장히 쉬운 것 같아요.
쉬워서 좋은 것 같아요. 2천 원이잖아요. 어린애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은퇴하신 분부터 입사한 사람, 남녀노소, 일용직 근로자부터 대기업 사장까지 모두 관심을 갖는.
진짜 인문학이네요. 모든 사람이 모이는.
사실 인생은 노답이거든요
카톡 프로필 상태가 ‘광인수’였잖아요. 현재는 ‘’이준형’보다 ‘광인수’로 살고 계신 것 같은데, 이준형이 원하는 삶과, 광인수로 살아가는 삶은 일치하나요?
제가 저한테 붙인 별명이 원래 ‘이시망’이었어요. ‘이 시대의 희망’ 처음엔 그냥 웃기려고 했던 말인데, 어느 순간 ‘내가 이 시대의 희망이 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진짜 ‘이 시대의 희망’이라고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청춘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 그래서 학교 앞으로 온 거기도 하고요. 지금은 누구한테나 ‘광인수’로 불려요. 지금은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인문학을 즐겁게 공부했던 것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해요.
이준형이 원하는 삶과 광인수의 삶이 일치하는지에 대해선?
사실 현재는 안 일치하는 것 같아요. 고민이에요 실제로. 이준형이 원하는 삶은 벌 수 있는 만큼 벌고,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시간 보내고 행복하게 사는 거인데, 광인수로 사는 삶은 미디어에 계속 노출되어가고, 유명해지고 그런 방향이니까. 둘 다 하고 싶기는 한데,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니까. 지금 인터뷰 하면서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이준형으로서의 삶일까, 광인수로서의 삶일까. 나도 헷갈리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느끼는 게, 나는 자유롭고 싶어서 회사를 나왔는데, 또 다른 틀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또 다른 사람들의 시선. ‘어, 저 사람 광인수다. 저 사람은 이렇게 살겠구나. 되게 멋있다.’ 이러니까 또 거기에 신나서 그 시선들에 다시 갇히고. 이게 맞나 싶어요.
어느 때보다도‘유명해지기 쉬운 시대’인 것 같아요. 조금만 특별하면 모든 매체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니까.
맞아요. 정말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니까. 그런데 사실 이런 식으로 성공하다 보면 이게 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겨요. 그리고 청춘들은 답을 찾으려고 하죠. 답답하니까. 인터뷰 전에 주신 질문 중에 저는 그 질문이 제일 좋았어요. “삶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런데 사실 인생 노답이거든요. 어떻게 신도 아닌데. 그런데 마치 이게 답인 양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오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답이 나오고. 청춘들은 ‘취업할 땐 이게 답’이고, 또 ‘성공하려면 이게 답’이라고 찾아다니고. 그런데 답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답인 것 같아요.
과정이 답이다.
저는 진짜 매 순간 답이 중요하거든요. ‘필승법’이라고 저는 부르는데.
군대에서 제 목표는 ‘건강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거였어요. 말년병장처럼 살지 않는 거. 처음에 군대 갔을 때 사람들이 상점에 목숨을 거는 거예요. 저는 열심히는 하되 상점을 받으려고 안달하진 않았어요. 초코파이 같은 거 받아도 친구들 나눠주고.
무엇을 위해서?
나. 내가 변하지 않기 위해서. 이기적으로, 나를 위해서만 살고 싶지 않아서. 그게 저의 군대에서의 필승법이었어요.
왜 하필 '필승법'이에요?
만화 ‘라이어 게임’ 아세요? 거기에 필승법이 나와요. 게임에서 어떤 사람은 ‘이기는 방법’을 말해요. 그런데 거기서 한 여자애가 ‘모두가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말해요. 그게 필승법이에요.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모두가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 그게 저한텐 창업이었어요. 저도 학교 다닐 때 150만 원짜리 마이크 잃어버리고, 그거 갚느라고 많이 굶어봤거든요. 친구들한테 라면 얻어먹고 다니고. 그래서 현재 제 필승법은 ‘학생들을 굶기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광인수 다음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행진’. 광대 반란군(Crown Army)을 만드는 것. 광대는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면서 놀아버리고, 꼬집고, 물음표를 던지고, 대안을 만들어내잖아요. 그 모든 걸 놀이의 형태로 만들고. 춤추고, 예술하고, 놀이하면서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요. 그 시작이 토스트고. 토스트로 사람을 모으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왔나보네요ㅋㅋㅋ
ㅋㅋㅋㅋㅋ
‘최 게바라 기획사’나 ‘인간 실격패 알고보니 부전승’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강드림씨랑도 생각이 비슷한 것 같아요.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들은 자기 사람을 모으고 싶어하거든요.ㅋㅋ 저도 저만의 광대 반란군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도 토스트를 통해 사람을 많이 모으고, 함께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고요.
내 답이 네 답은 아닙니다
다시 취직할 때로 돌아가면, 취직하실 건가요?
네. 취직한 건 너무 좋았어요. 세림씨도 취직 안 했으면 여기 안 왔을 거예요.
맞아요ㅋㅋㅋ
취직하면서 일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창업에도 도움이 됐고. 처음부터 창업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인생은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거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 불행해질 거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말씀하셨잖아요. 그럼 어떤 걸 직업으로 택해야 할까요?
직업이라고 함은 돈을 버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 일 자체가 범죄가 아니면, 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토스트를 구우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맛있는 걸 주고, 상담을 해주고. 공장에서 옷을 만들어도 충분히 의미가 있거든요. 일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고, 의미를 느낀다면 직업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자신이 재미를 느끼고 의미를 느끼는 일.
네. 각자가 자기가 가진 장점이 있잖아요. 하루에도 직업이 몇 개씩 생기고 사라지는 세상인데, 자신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직업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놀이컨설턴트’가 될 수도 있는 거고, ‘토스트 소믈리에’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직업보다도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각자가 타고난 색깔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유능한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위대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사람. ‘유능하다’는 건 정해진 길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 대한 칭찬인 것 같아요. 회사가 제시하는 ‘선’을 실행하는 것. 그런데 그런 답 말고, 내 가족과 행복하면서도 내 일을 즐겁게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신만의 ‘필승법’을 제시하는 사람이 제게는 위대한 사람인 것 같아요.
사장님을 보고 토스트집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해줄 거예요?
저는 답이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오시지만, 정답은 ‘추구하는 방향성’에 있는 것 같아요. 누구도 정답은 못 찾아요. 얼마나 내가 정답을 향해 가고 있는가, 고군분투하고 있느냐에 따라 정답에 가까워져 가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저와 제 답을 따라해도 소용이 없는 거죠. 저는 제 방향을 찾기 위해 들인 시간이 있고, 또 각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있는 거니까요.
마지막 질문! 인문대 1학년의 이준형이 지금의 광인수를 봤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요?
우선 ‘왜 저럴까’ 궁금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
그러면서도, 어쩐지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분명 어렸을 때의 나도 내 생각을 들으면 멋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ㅋㅋㅋ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할 때 많거든요. 멋있으니까.
‘내 선택은 답이 아닌 것 같은데, 네 선택은 답이니?’ 라고 그를 만나 묻고 싶었다.
만약 그가 ‘응 나는 답이야’라고 했으면 인터뷰 하고 돌아오는 길이 많이 허망했을 것이다. 또, ‘나는 정답도 아닌데 뭐하고 사는거지?’ 라고 생각하며 슬펐을 것 같다. 그래서 이게 답인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것은 당신의 답이 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주는 그가 참 고마웠다.
답을 찾으러 가서, ‘인생 역시 노답’이라는 소리만 듣고 돌아오는 길, 그 말이 꼭 내가 듣고 싶던 ‘넌 틀리지 않았다’는 말보다 더 좋아서, 오랜만에 기분 좋은 웃음이 헤헤, 하고 나왔다. 집에 가면서 ‘인생엔 답이 없다’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던 그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곱씹다가 ‘내가 있는 곳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도, ‘정해진 답을 찾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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