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못”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뭘 잘 모르는 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하고 싶다.

왜 자꾸 걸핏하면 나보고 “알못”이래

겜알못. ‘게임 알지도 못하는 놈들’의 줄임말이다. 원조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허영무 선수다. 10-11시즌 성적 부진으로 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은 그는, 흑역사가 일어나기 가장 좋은 새벽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 짤막한 글을 남기고야 마는데…

불후의 명언이 탄생하는 순간

불후의 명언이 탄생하는 순간

이후로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알못’은 일종의 접미사처럼 바뀌어 여러 분야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야알못(야구), 영알못(영화), 패알못(패션) 등, 그 예시는 여기서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국문과 수업에서 졸면서 들은 기억이 난다. 언어는 전수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의미가 변한다고. ‘형체’ 그 자체를 의미하던 “얼굴”의 의미가 말 그대로 얼굴로 줄어든 것처럼, ‘-알못’의 의미도 원래 가지고 있던 유쾌함은 사리지고,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폭이 줄어들고 만다.

‘알못’으로 찍히는 순간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가려는 사람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특정 문화의 ‘상식’을 알지 못해 그러는 것이니 너는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배타성 가득한 비아냥만 떠돌 뿐이다. 하지만 궁금하다. 당신이 좋아하는 그 바닥에, 이런 비아냥이 대체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내가 힙합은 모르지만 뭐가 불편한지는 알거든?

일단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해 보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쇼미더머니 4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송민호의 여성 비하 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창 논란이 불거질 무렵, 일부 힙합 팬들은 “마초 장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송민호를 옹호했다. 그들은 힙합이란 장르의 속성이 본래 그런 것인데, 그걸 문제 삼는 것은 힙합 문화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이라며 맞섰다. 불편해할 것이 아니라 특색으로 받아들이라며 말이다. 그에게 쏟아지던 비판들은 그렇게 모두 ‘힙합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뭣도 모르면서 떠드는, 즉 ‘힙알못’들의 유난으로 치부되었다. 그래서 ‘힙알못’이면, 이런 불편함에 대해 정말 아무 말도 할 권리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방심위는 그들에게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렸다. ‘MINO 딸래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이 저속한 가사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소위원회는 만장일치로 5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송민호 여성 비하 랩 방통위 과징금 경향신문 기사

힙합을 알면 뭐해 방송법을 모르는데

누군가가 불편해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문제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힙알못이라 비난했던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고, 나는 그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알고 나면 불편하지 않을 거라고.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당신이 불편하지 않다고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문제가 없다는 말은 더더욱 될 수 없다. 오히려 불편해하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뭘 모르는 것은 아닌가.

 

‘알못’이라서 알 수 있는 것도 있는데?

이번엔 좀더 개인적인, 당신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생길 수 있는 사례를 얘기해 보려고 한다. 일전에 있던 한 국내 대형 게임사의 모바일 게임 비공개 테스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참여자는 10명 쯤, 대충 2시간 정도의 게임 플레이 후, 개발팀은 자유롭게 의견을 달라고 했다. 다들 게임 좀 하는 사람들이었는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단점 분석부터 개선 방향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 그림은 본문과 관계가 없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그런데 그 훌륭한 피드백을 듣고 있던 개발팀의 표정은 별로 밝지 않았단다. 조금 허탈하게, “다들 정말 잘 아시네요”라 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왜 그랬을까? 후에 해당 테스트를 주관했던 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다들 너무 전문적이어서 오히려 아쉬웠다는 것이다. 그는 게임을 잘 아는 헤비 유저도 귀하지만, 또한 그만큼 귀한 것이 게임을 잘 모르는 라이트 유저(그렇다, 말하자면 “겜알못”이다)의 의견이었다고 고백했다.

왜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그들은 그런 겜알못의 의견을 들으려고 했을까? 개발팀이 게임 장단점 분석을 할 줄 몰라서, 자기들 게임을 몰라서 테스터를 모집한 건 아닐 게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어차피 게임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그 게임을 만든 개발팀이었을 테니까. 개발팀은 바보가 아니다. 다만 알았던 거다. 알못들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겜알못 초딩들이 서든에 넋놓는 데는 이유가 있어… ⓒ고맹네

님아 겜알못 초딩들이 서든에 넋놓는 데는 이유가 있어여… ⓒ고맹네

이게 단지 게임 비공개 테스트 같은 특이한 경우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사실은, 어떤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다. 지구상 전체 인구 중 A라는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 많겠는가, “A알못”이 더 많겠는가? 확률적으로 자명한 이치이다. 그래서 ‘알못’들의 직관적 의견이 존중될 여지가 생긴다. “제가 A를 잘은 모르지만 그냥 뭔가 좋네요(나쁘네요)”라는 소감은, A의 전문가들의 생각보다 더 일반적인, A에 대한 진실이다.

 

명심해, 너도 어딘가에선 알못이야

물론, 그런 알못들의 지적 중에는 실제와는 다른 사실관계를 갖거나 속사정을 알지 못해 생겨난 오해인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사람은 모든 분야에 대해 깊은 지식 수준을 가질 수 없고,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라면 당연히 모르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만큼 오해는 발생하기 쉬워진다. 하지만 이런 오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저 잘 모르는 사람에겐 사실을 알려주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군가의 문제제기에 반응하는 바로 그 방식이다.

더럽고 치사해서 앞으로 전시 안 본다고 합니다 담당자 내려주세여

이 모든 것들은 그저 특정 분야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담론과 이야기할 바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알못’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들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 바닥에 익숙한 이들은 문제 제기에 거부감을 드러낼 것이다. 나는 잘만 즐기고 있는데, 왜 딴죽을 거느냐고 말이다. 그저 문제를 외치는 알못들의 입을 막는 것으로 일을 끝낼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도 당신에게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저 그들의 입을 막고 당신의 귀를 막는 것으로 당신은 편해질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으면, 좋다. 대신, 당신 역시 살다 보면 어느 영역에서인가는 불편함을 느낄 것인데, 그때 절대 아무 문제도 제기하지 마라. 왜? 당신도 알못이라서 그런 거니까. 원래 그런 건데 말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사람들을 당신이 참지 않은 이상, 당신도 떠들면 안 되는 거다.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골칫거리다.” ― 아이작 아시모프, 세계 3대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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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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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졸리면 밥먹고, 배고프면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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