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 매치가 뭔데 자꾸 재밌을 거라는 거야?
“축구는 지루하고, 단순하다. 스물두 명이 90분 동안 공 하나만 쫓아 다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이유로 축구를 선뜻 가까이하기 어려워한다. 반쯤은 사실이다. 많은 골을 넣은 팀이 이긴다는 축구의 기본 룰은 무척이나 단순하니까. 양 팀이 모두 수비적으로 나와 슈팅이 잘 나오지 않기라도 하는 날엔, 경기는 쉽게 지루해지곤 한다. 혹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축구에 대한 당신의 지금까지의 생각을 바꿀 좋은 계기가 있다.
이번 주말, 당신을 축구 팬으로 만들 경기들의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바로 더비 매치가 그것이다. ‘더비(Derby)’는 라이벌 간의 경기를 뜻하는 말이다. 본래 같은 지역 내의 팀들이 벌이는 시합을 뜻했지만, 의미가 확대됐다. 더비 매치는 뜨겁다. 라이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라이벌로 만든 역사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번 주말 펼쳐지는 더비들의 역사를 알아보자. 다음 주, 당신이 “축덕”들의 대화를 휘어잡는 것도 이제는 시간의 문제.
(※편집자주: 이제 소개하는 각 더비 매치의 시작 시각은 모두 한국 기준입니다.
머지 않았습니다! 다이어리를 열어 일정을 체크해 두세요.)
1. 머지사이드 더비(Merseyside Derby)
에버튼(Everton) VS 리버풀(Liverpool)
구장: 구디슨 파크(Goodison Park)
일시: 10월 4일 (일요일) 21시 30분
이번 주말 당신을 찾을 첫 번째 더비 매치는 머지사이드 더비이다. 잉글랜드의 두 명문 구단, 에버튼과 리버풀 간의 경기. 머지사이드 주의 구단이 펼치는 경기로,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벌 매치이다. 그런 머지사이드 더비가 ‘일가친척’ 더비인 이유가 있다. 머지사이드 주에서는 한 가족 안에서도 서로 응원하는 팀이 갈리기 때문. 리버풀의 캡틴이었던 스티븐 제라드의 외삼촌이 에버튼 팬이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더비의 역사는 구단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에버튼은 1884년 그들의 홈구장 안필드(Anfield)에서의 첫 경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안필드가 재력가 존 하울딩에게 넘어가면서, 에버튼은 더욱 더 높은 임대료를 요구받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없던 에버튼은 새로운 홈 구장을 찾는다. 그것이 지금의 에버튼의 홈구장인 구디슨 파크이다. 존 하울딩은 안필드를 사용할 새로운 축구 클럽을 창단했고, 바로 그 팀이 리버풀인 것이다. 에버튼 서포터들은 리버풀을 곱게 볼 수 없었고, 이때부터 그들은 라이벌이 되었다.
두 팀 간의 경기는 라이벌 매치이기는 해도, ‘일가친척’들끼리의 더비였기 때문에 친선전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1985년 리버풀의 훌리건들로 인해, 축구 서포터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부상당하는 헤이젤 참사가 일어났다. 그 결과 그 시즌 리그를 우승한 에버튼은 같은 잉글랜드 클럽이라는 이유로 유럽 대항전에 진출할 수 없게 된 것. 클럽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쌓이기 시작한 악감정은 돌이킬 수 있을리 만무. 그 후, 이 머지사이드 더비는 어느 경기보다도 많은 레드 카드가 나오는, 뜨겁고 치열한 매치가 되었다.
2. 마드리드 더비(Madrid Derby)
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eletico Madrid) VS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
구장: 비센테 칼데론(Vicente Caldern)
일시: 10월 5일 (월요일) 3시 30분
스페인의 수도에서 펼쳐지는 두 빅클럽 간의 경기. 양팀의 역사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레알 마드리드가 기득권층을 상징한다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에 반하는 반항정신(sentimiento de rebelda)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ATM과 레알 마드리드 간의 경기는 보수-진보 간의 더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팬들이 정치 성향이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는 마드리드를 점거했고, 이윽고 정권은 레알 마드리드를 홍보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스페인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렸다. “레알 마드리드는 우리가 가졌던 최고의 외교관들이다.” 외교부 장관이었던 페르난도 마리아 카스티야의 말이다.
팬이 선수에게 담배 라이터를 던진 일도 있었다… 작년 11월 사건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들은 독재 정권의 힘을 받는(것으로 보이는)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악감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마드리드 더비가 돌아오는 날이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들은 이런 노래를 부른곤 했다. “마드리드 만세, 마드리드 만세, 정부의 팀, 국가의 수치(Hala Madirid, Hala Madrid, El equipo del gobierno, La verguenza del pais)” 라 리가는 오랜 기간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두 팀이 지배하는 리그였다. 그러나 최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국제 대회 및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마드리드 더비 역시 가장 뜨거운 매치업 중 하나가 되었다.
3. 데어 클라시커(Der Klassiker)
바이에른 뮌헨(FC Bayern Munchen) VS 보루시아 도르트문트(Borussia Dortmund)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Munchen Allianz Arena)
10월 5일 (월요일) 밤 10시 30분
아마 독일 분데스 리가에서는 이런 말이 성립할지도 모른다. “축구는 22명이서 공을 차며 뛰어다니다가 결국엔 바이에른 뮌헨이 승리하는 스포츠다.” 그러나 위르켄 클롭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지휘봉을 잡으며 양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도르트문트는 바이에른 뮌헨 독주 체제의 분데스 리가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축구를 선보이며 성공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1-12 시즌, 도르트문트는 뮌헨을 누르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도르트문트는 그 자리를 잃고, 우승경쟁은 커녕 강등권을 해메는 등 어려운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이랬다. 도르트문트의 성공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 마리오 괴체를 라이벌 바이에른 뮌헨이 돈으로 빼앗아 버린 것. 한국의 축구 팬들은 라이벌 팀으로의 이적을 택한 두 선수에게 '배반도프스키', '괴통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지에서는 비난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화가 난 팬들은 괴체의 유니폼을 불태우고, 그에게 온갖 협박을 퍼부었다. 도르트문트의 팬들이 그렇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단순한 라이벌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라이벌 의식 속에는 독일의 역사와 문화가 숨겨져 있었다.
도르트문트가 자리한 베스트팔렌은 온갖 세력들이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던 곳이었다. 결국 이곳을 손에 넣은 것은 프로이센 왕국. 반면 바이에른 뮌헨이 자리한 바이에른 주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던 독립된 왕국이었다. 그러나 후에 프로이센 왕국이 독일을 통일하게 되면서, 바이에른 왕국은 프로이센에 사실상 '강제적으로' 합병되었다. 바이에른 주의 사람들은 통일된 이후에도, 예술, 문화적 자긍심을 앞세워 그들을 다른 지역 사람들과 구분하려 했다. 그렇게 독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두 지역 간에 쌓인 묘한 의식이 축구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 이 매치가 재밌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듣고 보니 나쁘지 않은데? 한번 보기나 보지 뭐!
당신 자신은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의 친구, 애인, 가족 때문에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싶다면, 더비 매치로 축덕의 길에 들어서기를 추천한다. 이번 주말에 있을 경기들부터 곰곰이 관전해 보자. 가장 뜨거워서 재밌는 경기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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