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 처음으로 혼자 살다

서울의 방들은 모두 좁고, 무서웠다.

오랜 친구 A가 서울에 직장을 얻게 되었다

생각보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덕분에 집을 구하는 것부터 집 안을 채우는 일까지 모든 것은 급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A를 볼 때마다 나는 갑작스레 몰아치는 태풍 속에 있는 배를 떠올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A는 23년 동안 한 번도 부모님이 계신 집을 떠나본 적이 없는 친구였다. 알게 모르게 걱정이 되었다. 함께 4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쌀쌀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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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으며 방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떤 방은 큰 길가에 있어서 안심이 되었지만, A의 직장과는 너무 멀었다. 또 어떤 방은 차마 글로 풀어쓰기 힘들 만큼의 광경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단 한 번도 혼자 살아보지 않았던 A의 눈에 비친 서울의 방들은 모두 좁고, 무서웠다. 작은 수첩에 미리 꼼꼼히 적어 간 '자취방 구하기 팁'들도 큰 힘이 되지 못했다.

다만 흥미로웠던 점은, 잠시나마 들렀던 모든 방들에서 이전의 주인이 풍겼을 법한 특유의 공기가 느껴졌다는 것. 이를테면, 빛바랜 커튼의 캐릭터 속에 숨어있는 귀여움이라던가, 벽지 구석마다 묻어있는 농도 짙은 담배 냄새가 품고 있는 고민과 같은 것들.

그런 흔적들을 몇 십 번이고 지나쳤다. 슬슬 다리가 뻐근하고 눈이 뻑뻑해 질때였다.
어떤 방을 만났다.

그 방과 처음으로 만난 날

그 방과 처음으로 만난 날

그 방은 창이 넓었고, 빛이 잘 들었다.

정갈한 그 방을 보면서 언제나 따스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마주하던 A를 닮았다고 생각했다.?집을 구하는 내내 굳어있던 A의 표정도 풀리더니, 방문을 나서기도 전에 이곳에 살겠다며 웃음 지었다.

처음 혼자 살게 되는 A처럼, 그 방도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너무나도 낯선 서울에서 그것은 상당한 공통점이었다. 그렇게 긴 서울 여행은 끝이 났고, A와 나는 만족스럽게 내려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다시 그 방을 보게 된 것은 영상통화를 통해서였다. 한참 정리 중이라고 A는 말했다. 아무도 없는 텅?빈 방에 우리의 목소리만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높은 곳까지는 손이 잘 닿지 않는다며 곤란스러운 표정을 보이던 A는, 청소하는 내내 전화를 끊지 못했다.

“TV를 얼른 사야겠어. 방이 너무 조용하면 외로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향초도 사서 좋은 향도 나게 해야지. 그럼 좀 더 빨리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다른 전화가 걸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영상 통화는 끊겼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 너는 혼자 괜찮을까?

이 거대한 도시에서, 너는 혼자 괜찮을까?

미처 A를 생각하지 못한 채로 일주일이 흘렀다. 혼자 저녁은 챙겨 먹었을까. 불현듯 걱정이 되었다. 영상통화를 걸었다. 잘 지내냐는 내 말에 A는,?아직 아무것도 없고 딱히 즐거운 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피곤한 기색으로 웃는?그 얼굴 뒤로, 낯익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텅 비어 있던 창에는 A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커튼이 쳐져 있었고, 창 옆에는 A의 미소를 꼭 닮은 포근한 러그가 깔려있었다. 그 마음만큼이나 환한 조명도 참 예쁘게 켜져 있었다.?A는 어제 혼자 의자를 조립했다고 내게 자랑했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며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처음으로 엄마를 벗어났던 순간을 기억하려 애써본다. 최초로 겪는 그 서러움을 참지 못해서 나는 그만 응애, 하고 울어버렸을까. 그렇다면 ‘집’이라는 또 다른 배를 처음으로, 스스로, 외로이 찢고 나가야 했던 A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런 A를 차분하게 안아줄 수 있는, 정갈한 곳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A와 닮아있는 그 곳

이제 A와 닮아있는 그 곳

이번 주말에는 A의 집에 들를 것이다.

아마도, 그 방의 구석마다
A를 닮은 공기가 닿아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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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여름

문여름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