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간호사 A가 ‘오프’날 들려준 이야기

간호사 친구가 오프때 당신을 만난다면 진짜 친한 친구인 거다

간호사 A는 특정 병원의 단 한 명 누군가가 아니다

A는 7개월차 신입 간호사다. 그가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 짬을 내어 하는 통화 속에서 A는 언제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내용의 경험담을 쭉 풀어놓으며 항상 ‘이만큼 하면 됐으니, 때려치고 집으로 내려가고 싶다’라고 말한다. 나는 침대에 누워, 떠지지 않거나 혹은 금방이라도 감길 것 같은 눈을 하고 A의 푸념 섞인 이야기를 흘려 들어왔었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비춰지는 간호사들의 실상들을 보고, “오열하면서 퇴근하느라” 전화를 못 했다는 A의 카톡을 확인해서는, 좀 진지하게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형식적인 질문을 조금 준비해서 A를 만났다. 이것은 지금도 탈의실 구석에서 마음 졸이고 있거나 응급환자를 보러 급박히 뛰어가고 있을, 수없이 많은 “간호사 A”들의 이야기다.

용어 정리

데이, 이브닝, 나이트
3교대 근무에서 나뉘는 근무 시간대를 일컫는 말. 구체적으로는 병원마다 조금씩 다르나, 1달에 한 번씩 작성하는 편성대로 근무하는 것이 거의 보통이다. A가 근무하는 병원의 경우 ‘데이’는 07:00~14:00, ‘이브닝’은 14:00~22:00, ‘나이트’는 22:00~07:00 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프
쉴 수 있는 날. 주로 나이트 근무 다음날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3일 연속으로 쉬는 것을 ‘쓰리오프’라고 부른다.

인수인계
담당 환자의 현재 상태 등에 관하여 다음 근무자에게 현황을 체크하고 진행해야 할 진료 사항 등을 전달하는 것. 하루에 3교대로 담당 병실 혹은 담당 환자들을 관리하므로 매우 중요하다. 신입 간호사의 경우, 이전 간호사로부터 받는 인계와 이후 간호사들에게 주는 인수를 제대로 하기 위해 한 시간 더 일찍 출근, 한 시간 더 늦게 퇴근하는 것이 다반사다.

임신순번제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차례대로 임신을 하는 것.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동시에 임신을 하면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것을 이유로, 임의의 순번을 정해 각자의 임신 시기를 조정하는 것을 일컫는다.

태움 문화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에게 “긴장감”을 이유로 행사하는 폭언이나 폭행을 뜻한다. 재가 될 때까지 활활 태운다 하여 이 이름이 붙었다.

 

“이런 여유 너무 오랜만이다 너무 좋아”

여름

얼마 만의 오프날이야, 얼마만에 제대로 쉬는 거지?

A

그래도 전보다는 자주 쉬어, 요즘엔 (웃음).

어… 언제 쉬었더라? 부분 부분 쉬기는 하는데 길게, 연속적으로 쉬는 날이 거의 없지. 주로 나이트 근무 끝나고 쉬는 날이 있어서 잠만 자, 쉬는 날에도. (웃음) 내가 원하는 날에 쉬는 것도 아니고. 아니, 원하는 날에 쉴 수가 없지. 난 신규니까 정해준 날짜에 쉴 수 밖에… 흑흑흑…

여름

헉… ㅠㅠ

A

이번 쓰리오프도 벌써 이틀밖에 안 남았어… 서울 가기 싫다 으아아아 ㅠ

여름

집에는 또 얼마 만에 내려온 거야? 지난 추석 때는 오지도 못했잖아.

A

세 달… 나 진짜 죽을 뻔했어. 광주 딱 내려왔는데, 많이 바뀌어 있어서 깜짝 놀랐어. (웃음) 버스 노선도 바뀌어 있고. 새로 생긴 것들도 많고. 몇십 년을 살았던 곳인데, 겨우 몇 달 만에 내려왔다고 괜히 생소하고 그렇더라.

우리 여름에 서울에서 만나고 그 이후로 보는 거잖아. 이런 여유, 너무 오랜만이다… 너무 좋아…

라떼 한잔

여름

따로 서울에서 안 놀았어?

A

서울에서 쉬어도 혼자 할 게 없으니까, 다른 친구들 오프 시간이랑도 안 맞고. 피곤해서 집에서 잠만 잤지, 뭐… 오프날이 겹친다 해도 딱히 뭘 할 수는 없어, 왜냐면 너무 피곤하거든. (웃음)

추석날 못 왔을 때는 완전 슬펐지… 나 추석 때 5일 동안 일했어! 믿기냐?

여름

진짜?

A

말도 안 되지?! 그게 너무 슬펐어, 명절인데 고향도 못 가고 가족들 얼굴도 못 보는게. 그래도 서울이나 이쪽 근처 사는 동기들은 “집”에 가는 거고, 가족들도 보는데, 나는 (친)언니도 집에 내려가 버려서 완전 혼자였어. 진짜 우울했어, 하필 쉬는 날도 전혀 없어서, 쉴 틈 없이 바빴고.

 

“마스크 쓸 시간이 어딨어? 모두가 날 부려먹는데”

카페에 앉아 아이스 라떼를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라는 A가 연신 외치는 ‘너무 좋다’는 말이 날아와 마음에 콕 박혔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면 카페에 앉아있을 뿐인 것에 이렇게 기뻐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짠했다. 지금까지 A는 어떤 고단함과 외로움을 느낀 걸까. 만약 나였더라면, 버틸 수 있었을까.

우울한 이야기만 이어지는 것 같아, 딴에는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A가 잘 말할 수 있을 만한 일 얘기를 꺼냈다.

여름

요즘 담당하는 환자들은 어때? 응급 환자들도 많다며.

A

안 좋지, 이번에 바뀐 병동에 응급 환자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어. 얼마 전에도 응급 환자 생겼는데 환자가 숨을 안 쉬는 거야. 발견한 의사나 간호사가 가슴 압박하고 조치 취할 때, 옆에서 계속 공기주머니 짜고 있어야 해. 진짜 무서워.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닌데, 응급 환자는 생길 때마다 무섭고, 두렵고 그렇다?  정신 없이 바쁘니까 마스크도 거의 못 쓰고 들어가. 마스크 쓸 정신이 어딨어?

어제도, 인수인계 하고 담당 환자 확인을 했는데 마스크도 안 끼고 병실에 들어가서 윗선생님들한테 엄청 혼났어. ‘니 몸은 니가 지켜야 하는 거’라면서. (웃음) 근데 진짜 마스크 쓸 시간도 없어~ 마스크 쓰면 공기도 안 통해서 답답하고, 불편하고, 환자들 보는데 걸리적거려서 쓸 수도 없어.

여름

그래도 쓰긴 써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떡해.

A

어유~ 마스크 쓰는 거 귀찮고 힘들어, 괜찮아 나 튼튼해서.

여름

이번에는 불편한 환자 없어? 전에 이상한 환자들도 있었다며.

A

이상한 사람들이야 어딜 가든 있지, 진상들. 괜히 간호사들한테 짜증내고 욕하고.
몸이 아프니까 마음도 힘들어서 그러는 거다 하고 이해는 하는데, 힘들지. 감정 쓰레기통이 된 느낌이야. (웃음)

낭만닥터 김사부

후… 우리한텐 이런건 있을 수가 없어… ⓒKBS ‘낭만닥터 김사부’

여름

부려먹는 사람은?

A

모두가 날 부려먹지. (웃음) 그래도 나는 아직 신입인 편이라, 많이는 안 시켜. 거의 윗 간호사 선생님들이 대신 처리하시지.

아, 욕 하는 사람은 드물긴 한데, 말을 쎄게 하는 환자들은 되게 많아. 나이 많은 아저씨나 할아버지 환자들은 우리를 간호사라고 부르지도 않아. 거의 ‘야’, ‘아가씨’ 이렇게 부르고.

여름

도대체 왜들 그렇게 늙어가지. 그럼 너가 뭐라고 해?

A

그냥 ‘왜요’ 하지. 대꾸도 하기 싫으니까. 가끔 도가 지나치게 부를 때는,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싶을 때도 있어. (잠시 침묵) 허허.

여름

짜증나게 구는 선배는 없어?

A

(말 떨어지기 무섭게) 위험한 발언이야. (웃음) 있어도 말 못하지, 말하면 나인거 다 알 텐데. (공포, 웃음) 좋은 분들도 많아,, ^^

여름

다른 사람들은 어때? 동기나 의사들.

A

의사들은 의사 소통 자체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 급한데도 전화 받지도 않고 일이 안 되면 무조건 성질부터 내고. 딱히 동료라는 생각은 안 들어.

우린 의사들이 내리는 오더대로 해야 하는 거니까, 내가 의사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의사들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다들 바쁘다 보니까 그런 거겠지.

 

“그냥 이 일 자체가 너무 힘들어”

A의 표정은 가끔 당황하긴 할지언정 그림자가 드리워지지는 않았다. 그게 당혹스러웠다. 아직 정말 힘든 게 뭔지 내가 짚어내지 못한 걸까. 밤낮을 바꾸고 끼니를 걸러 가며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부분도 아니고, 사람 관계도 결정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A를 이렇게 힘들게 한단 말인가.

더 참을 수 없어서, 더 돌려 말하지 못하고 가장 궁금했던 질문들을 그대로 던지기로 했다.

여름

그럼 요즘에 제일 힘든 건 뭐야?

A

일 자체가 그냥 너무 힘들어. 항상 관두고 싶다는 생각만 들고. 아직 큰 보람을 못느껴봐서 그런가? (웃음)

얼마 전에 엄마 교통사고 나셔서 입원하셨을 때는 근무 중이라 당연히 가보지도 못했고. 그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싶었어. 아픈 엄마 옆에서 엄마만 보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전화도 제대로 못 하다니. 내가 힘든 건 그냥 그렇더라도, 아무래도 가족들이 아프거나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많이 안 좋지.

여름

간호사들 처우에 대해서 말이 많잖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많고. 어떤 점이 제일 고쳐졌으면 좋겠어?

A

말 한다고 고쳐질까, 과연? (웃음)

이런 보호자가 있었어. 내가 그때 5일을 연속으로 일했을 때 어떤 보호자가 나한테 하는 말이, 도대체 언제 쉬냬. 내가 병동에서 계속 보이니까, 도대체 언제 쉬는 거냐고 묻더라고. 웃으면서 “제가 계속 일해서 그런가 봐요?” 그랬더니, 요새 간호사들 힘들다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고, 안 힘드냐고 묻는 거야. 근데 진짜로 힘들다고 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그냥 “괜찮아요~” 그랬어.

여름

너네 병원도 임신 순번제 같은 것들 있어?

A

우린 없어. 그래도 우리 병원은 그런 거 잘 되어 있는 편이야. 그래도 진짜, 우리는 괜찮아.

여름

아 진짜? 그럼 다른 병원은?

A

다른 병원은 다 있어. 정말 순서가 다 있어. 순서 안 지키면 난리 나.

SBS 간호사 임신순번제

ⓒSBS

여름

어… 그래? 그러면, 진짜 결혼도 신입이 맨 나중에 해야 하고 막 그런 거야?

A

그러니까~ 다들 제 나이 때 들어가려고 하는 거지, 간호사는. 내가 진짜 느낀 건데, 무조건 제 나이에 들어가서, 제 나이에 일하는 게 좋아. 안 그러면 버티기가 힘들지, 여러 모로.

여름

버틴다고?

A

응.

여름

그럼, 간호사 일을 계속 버틸 수 있으려면, 이런 모든 문제들 중에 어떤 게 제일 먼저 고쳐져야 된다고 생각해?

A

모든 게 고쳐져야지. 그런데 그 중에서도 ‘태움 문화’, 그게 일단 고쳐지는 게 중요할 거 같아.

여름

태움 문화?

SBS 스페셜 사람을 재로 만드는 태움

ⓒSBS

A

일 하면서 제일 많이 느낀 게 있어.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말 한 마디라도 예쁘게, 상대를 배려해서 말해야 한다는 거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관계인데, 어쨌든 그 관계를 결정짓는 게 ‘말 한 마디’잖아. 똑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말 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게 달라지니까.

생각보다 그게 정말 크거든. 무심코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군기를 잡는다”, “이래야 정신 차리고 일을 한다” 하면서 하는 말들이나 행동들이, 막 들어온 신입들한테는 정말 상처거든. 한시가 급한 게 병원이니까 항상 마음 졸여야 하는 건 당연한데, 조금만 더 따뜻했으면 좋겠어, 서로에게.

 

“다들 그렇게 2년 3년 버티는 거겠지?”

인터뷰를 정리하는 지금 관련 뉴스를 다시 훑어보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친다는 것을 깨닫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라며 일을 그만두고 삶을 그만둔다. 그런데 그들의 직종은 비슷하다. 하루하루 버티면 어떻게든 계속해낼 수 있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그래서 ‘교대’를 돌리고 사람을 “태워야” 하는 일일 때가 많다.

그래서, 그들은 흩어져 있을지언정 전혀 다르지는 않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A는 비슷하게 있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제 나이’에 일을 해서 ‘버티는’ 게 최선인 업계. 얼만큼 버텨야 비로소 평범하게 살 수 있을지조차 가늠되질 않는 곳. 지나가는 말로 “아직 뺨은 안 맞아봤다” 하는 말이, 사실은 언젠가 조만간 뺨 맞는 차례나 때가 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바닥.

간호사 게시판 태움 글

“너희는 태움 어디까지 당해 봤어?”

‘윗분들 중에 좋은 분들도 많다’라면서 말 조심하라던 A는 정작 윗분들로 인해 경험하게 되는 ‘태움 문화’에 대해서 제일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초탈함이 느껴져, 잠시 감탄을 할 뻔했다. 마지막으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아주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아니.” 그 짧고 굵은 대답에 당황해서 다시 물었다. “그럼 최~대~ 몇 년까지 할 수 있을 거 같아?”

A

너무 힘든데, 지금은. 일어나면 병원 갈 생각에 힘도 안 나고, 매일매일 관두고 싶어. 정말 최대 1년. (웃음) 일 년만 채우자, 이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거지. 그렇게 2년, 3년 매년 버텨 나가는 거겠지, 다들?

A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A가 어느 정도의 바닥, 얼마나 있을 만한 곳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올해는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다음 번 ‘쓰리오프’ 때는 이따위 것 물어보지 않고 그냥 재밌게 놀고만 와도 서로 마음이 편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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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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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