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이 글은 말 그대로 감정적으로 쓰였습니다.
논리적이고 지적인 글을 좋아하시는 독자께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최근 드라마화 된 ‘치즈인더트랩’은 여대생 홍설의 스쿨라이프를 그린 웹툰이 원작이다. 홍설을 사이에 두고 일종의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두 남자, 유정과 백인호는 서로 상반되는 매력으로써 독자에게 어필한다. 유정이 냉철하고 지적인 냉미남이라면, 백인호는 합법적이고 논리적인 루트보단 ‘육감’이나 순간의 ‘감정’에 의해 일을 처리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일처리는 어딘가 허술해 보이며, 때때로 뒤에 일어나는 또 다른 소동의 불씨가 되곤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독자는 치밀하지 못한 백인호를 보며 왜 저렇게밖에 못 할까, 라고 생각한다.순간의 화를 참으면 더 좋은 방법을 통해, 더 성공적으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물어보고 싶다. ?한 치의 틀림없는 논리적인 대처. 그러니까, 더 적은 손해를 보고 더 많은 이익을 취하는 이성적인 방법이란 게, 과연 가장 좋은 방법일까?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그렇게 불필요해?
지극히 감정적인 글인 만큼,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로써 시작하고자 한다. 나는 대학생 때 동아리를 했었다. 2학년이 되고 나서 선배들의 일을 물려 받을 만큼, 꽤나 애착을 가졌던 동아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 중 한 명이 돌연 자기는 그만 쉬고 싶다고 선언했다. 당황스러웠고 화가 났지만, 일단 참는 것을 선택했다. 그때는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는 강령을 따를 때였으니까. 이유? 모른다. 단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게 올바른 대처 같아 보였다.
확실히,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감정을 참으니, 현실적인 조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아리의 대내외적인 평판이라던가, 공석은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것들. 선배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후배들의 시선도 신경써야 한다는 다소 속물적인 문제도 있었다.
무엇보다?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사실 겨우 한 사람의 빈 자리가 생기는 것뿐이었다. 그 정도는 남은 사람들끼리 어떻게 커버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일을 모범적으로 처리하고 싶었고,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자. 그런데 그 후에는 어떻게 됐었던가?
다들 이성적인 성인인 척 했지만 실상은 갓 스물을 지난 어린애들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생각보다 별 거였던 거다. 결국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주어진 것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동아리에 대한 애정도 식게 만들었다. 약속된 임기가 끝나자마자 미리 맞추기라도 한 듯이 일부는 휴학을 선언하고, 일부는 동아리를 떠났다.
다 지난 일을 굳이 다시 꺼내는 이유
다시 ?‘치인트’ 얘기로 돌아가보자. 유정은 자신에게 해를 끼친 상대에게 섬뜩할 만큼 치밀한 계획을 통해서 복수한다. 유정의 완벽한 복수가 가져다 주는 카타르시스는, 이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 그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조용히 이성적으로 물밑작업을 해 왔는지 알고 있기에 가능하다.?하지만?유정의 행동은 어딘가 답답한 느낌이 든다.
한편, 백인호가 눈엣가시 같은 인물을 시원하게 갈길 때, 댓글창은 환호로 가득 찬다. 백인호의 직설적이고 계산적이지 못한 태도에 탄식하면서도, 동시에 쾌감을 느낀다. 그래, 좀 무식한 방법이면 어떠랴. 가끔은?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앞 뒤 안 재고 달려들 수도 있어야지.
동아리에서 그런 일이 있고, 벌써 3년이 지났다. 이제는 괜찮냐고? 글쎄. 그렇다고 대답하기엔, 그때 내가 겪었던 감정들은 여전히 엉킨 채로 밑바닥에 끈덕지게 남있다. 그리고 이따금씩 되살아나 나를 몸서리치게 만든다. ?왜냐고??나에게 이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나에게는 비슷한 사건이 몇 번 있었고, 그때마다 무성의하게 잘려나간 감정들만 남겨졌다. 그러나 이런 감정 따위에 휘둘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매번 이들을 억눌렀다. 불필요한 것들로 여겼기에 미련 없이 잘라냈으나, 결국 끝까지 눌러붙어 있는 건 이 감정들이었다.
아무리 잘라내고 억누르고 무시하려고 노력해 봐도, 감정이 깃든 기억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남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3년 전에 소리라도 지르며 깽판을 쳤어야 했다는 건 아니다. 대신,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었다. 내가 너무 쉽게 내 감정들을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제아무리 이성적인 태도라도, 항상 가장 완벽한 결과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는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고.?미안하지만, 정답은 나도 모른다. 다만 이것만은 말해 줄 수 있을것 같다. 이성적이고 싶어 아등바등했던 그때의 나에게, 지금 네가 느끼는 감정들이 전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너는 어설픈 게 아니고, 철이 덜 든 게 아니며, 지금 네가 힘들어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거라고. 우리가 열렬하게 믿고 의지하며 지키고자 하는 이성만큼이나, 감정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에게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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